|
|

|
|
우리 사는 이야기 /영혼여행
|
|
2012년 09월 11일(화) 09:02 77호 [강원고성신문] 
|
|
|

| 
| | ↑↑ 남영선 칼럼위원 | ⓒ 강원고성신문 |
“갑장있오?”
“어서 오시게. 26년만에 우리 집을 방문했으니, 그동안 이승에서 어떻게 지내시다 오시었소.”
“말 마시게, 늘그막에 자식놈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오.”
“그래도 자넨 나보다 26년을 이승에서 더 사셨으니 어린자식을 나두고 떠나오지 않으셨잖소. 혼자 심심하고 적적했었오.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여행이나 떠나지 않겠소?”
“꼭 내가 올 때를 기다린 것 같구려. 어디를 가고 싶으시오?”
“자네와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갑시다. 시공을 초월하고 이제는 마음대로 갈수 있는 영혼의 날개가 있지 않소.”
“그래 떠나봅시다. 이젠 이승의 삶이 아니니 바쁠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으니, 옛날 화전놀이 가듯이 꽃놀이 삼아 떠나세. 자네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읍 남산동이었지.”
“그렇다네. 벌써 다 온 것 같으이. 두만강 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려. 하지만 더 지저분해졌구만. 스케이트도 타고 천엽도하고, 목욕도 하던 곳이었는데. 저기 보게나! 자네가 살던 99칸 한옥은 간곳이 없으니. 벌써 60여년이 지났으니 허물어진 건 당연하지. 무산읍장을 하셨던 아버님은 일찍 돌아 가셨으니 그리웁지는 않네만, 어머님 산소가 이 근방이었는데 이젠 야산이 되어 버렸구만! 누님 두분이 계셨는데 한분이 김씨 가문에 출가하셨지. 그런데 나는 김씨 가문에 의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네. 머리에 먹물이 들어가 있는 유학파였다는 이유로 해방 이후 나의 삶은 빨갱이로부터 미행과 경계의 대상이었지. 그렇지만 두 분 누님과 조카들을 꼭 만나고 싶으이. 어! 저기보게! 조카 몇분이 살아계시구만! 그런대로 좀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반갑구만. 명신동에 사시던 장인어른은 돌아가셨지만, 처남들이 몇 명 살아 있으니 이승에 있는 내처가 이 소식을 알면 기뻐할꺼요. 이제 자네 박서방 고향에 가보세! 청진시 송곡리가 당신 고향이랬지? 어떤신가! 이렇게 영혼이라도 고향에 올수 있는 것이 행복 아닌가? 위로 누님들과 밀양박씨 외아들로 태어나서 애지중지 자랐다며? 자넨 이승에서도 자네밖에 몰랐지 않았나. 고생하는 처보다는 미꾸라지 잡아서 당신 몸에만 쓰기에 바빴지.”
“맞네! 그래서 지금은 많은 후회가 되네만, 지금 후회하면 무얼 하나, 지나간 이승에서의 삶이니.”
“자네 이곳에 아들 둘 딸 셋이 있다고 했지? 찾아보세.”
“저기 보게. 두놈은 벌써 나보다 먼저 이승을 하직하고 3남매가 살아있구만. 어떻게 해서든 통일이 될 때까지 몸사리고 잘살기만을 바랄뿐이지.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좋은 날이 꼭 올 껄세. 해방이후 유학에서 돌아온 나는 빨갱이들의 등쌀에 청진교대를 입학했지! 북쪽의 경성에서 청진까지 자전거나 기차 통학을 하였고 와세다대 국문과를 나온 덕에 시나리오를 써서 연극반 연출을 만들어서 서울 한양에서 열리는 대학생 연극제에서도 상을 타기도 했지. 삶이 재미있고 막힘이 없었어. 그때가 새삼 그리웁다네. 지금 심정이 어떤가 고향방문이.”
“옛날 노자의 스승 ‘상용’이라는 분은 고향을 지날 때는 수레에서 내려서 걸어서 가라. 즉 어디에서 살더라도 고향을 잊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서 살아가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군.”
“이제 금강산에 잠시 머물다 가세. 고성에서 국어선생을 할 때 시국이 어수선 할 때마다 금강산에 올랐지. 봉급을 타서는 이 세월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술로 세월을 보냈다네. 한방 가득 서재에 질로 사놓은 책과 끄적거렸던 원고뭉치가 많았는데, 내가 쓰던 책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라네. 지금이라도 어느 도서관에 자리잡고 있으면 더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라 생각하련만. 자네도 전쟁나고 1.4후퇴때 내려왔지?”
“말 말게. 기차타고 청진에서 함흥까지 왔다가 철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피난을 갔지. 참 고생 많았네. 자 저기 보게. 거제도가 보이지 않나! 곧 국군이 고향까지 밀고 들어갈꺼라는 생각에 속초에서 정착했지. 고생의 시작이었지.”
“난 말일세. 선생하면서 처에게 말 한대로 내가 안돌아오면 이남 내려 간줄 알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지. 후에 아내와 두 딸을 다시 만날 수 있었어. 행운이었지. 다시 만나서 울진까지 피난 갔다가 곧 수복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속초에 정착했지. 이제 이남에서 난 자식들은 잘 있는지 궁금하네만, 자네 처와 넷째 아들이 돌아가셨구만. 우리 자식들은 딸 둘, 아들 둘이 하와이에 내처와 같이 이민 가서 잘살고 있고, 셋째 딸이 고향을 지키며 자네 산소를 잘 돌보고 있으니 행복하겠구만. 당신을 그리워하는 딸의 글 솜씨에 위안을 삼고 보지 못했던 손자손녀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오. 이제 자네 소원은 무언가?”
“나야 살아생전에 가족에게 못했던 것이 너무 많아서 소망이 있을 수 없지. 다만 소원이 있다면 막내아들 놈이 가끔 정신을 놓는 게 큰 걱정이라네. 다들 건강 했으면 싶으이. 어떤가, 26년만에 만나서 영혼여행 떠난 것이 기쁘지 않은가.”
“다음에 다시 만나면 넉넉한 노자돈 준비해서 내 처가 있는 하와이로 해외여행가세. 그동안 잘있게. 통일이 이제 멀지 않았으니.”
|
|
|
|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