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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 칼럼 / 저물어가는 가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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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0일(화) 12:07 83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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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수필가,토성면장) | ⓒ 강원고성신문 | 가을햇살이 따갑다. 한해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늘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온 시간을 잠시 되돌아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시작 때의 욕심 때문에 나름 한해가 저무는 것이 더욱 아쉬운 것이다. 항상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범부의 삶이란 본래 이렇게 후회의 연속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봄은 산을 오르고, 가을은 산을 내려온다. 먼 산에서 붉게 타는 가을이 내려오고 있다. 울창한 숲과 짙푸르던 나뭇잎이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있다. 황금빛 들녘도 사라졌다. 썰렁하고 허전한 마음만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찬바람이 휑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눈부신 억새꽃 넘어 지난 시간이 더욱 그립고 떠난 사람이 간절히 생각나는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떠난 사람이 간절히 생각나는 계절
어느 날 고교 동창생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30여년의 기억을 더듬었다. 갈래머리의 동그란 얼굴을 가진 소녀는 늘 함박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청순한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다. 언제나 그녀 앞에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말도 제대로 건네지도 못했다. 소년은 어떤 소녀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바보 같은 얄개였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소녀 곁에만 있어도 가슴이 콩닥거리며 안절부절 했던 것이다. 숫기 없는 소년은 그렇게 수줍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교졸업 후 동네인근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녀를 가끔 보긴 했지만 언젠가부터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다. 한참 후에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함께 자리할 수도 없었다. 그러한 그녀였기 때문에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선뜻 약속장소를 정하고 만날 곳을 찾았다.
그러나 거기엔 학창시절 긴 갈래머리 소녀는 없었다. 웬 아줌마와 동생 같은 젊은 여인이 함께 있었다. 학창시절 그녀만큼의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따뜻한 미소와 눈빛은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파마머리의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가 낯설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어, 아줌마잖아? 너무 많이 변했네.”
“너도 많이 늙었네.”서로 마주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대뜸 그녀를 학창시절 소녀가 아닌 아줌마로 본 것이다. 즉흥적으로 뱉은 말이지만 돌아선 내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담았던 고운 말들이 참 많은데도 생각 없는 말을 던지고 후회했다.
내겐 남을 배려하지도 헤아리지도 아니하고 허물만 보는 나쁜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어있었다. 그동안 내가 무심코 던진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늘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는 어리석음이 모처럼 만난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를 보는 순간 세상사의 무상함 느껴
아줌마와 아저씨는 정말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반가운 마음에 어색함을 금방 잊고 학창시절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밤이 깊어갔다. 고단한 일상의 시간들이 칠흑같이 어둔 밤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세월의 강에 떠밀려간 그녀의 엷은 미소가 왠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 오는 세월을 느끼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다. 세월을 잊고 산다는 표현이 옳다.
인연이란 말이 다시 생각난다. 본시 어느 날 생겨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또 그 연이 다하면 소멸하는 것이 인연이다. 그로 인해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우리네 일상의 삶이 아닌가.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세상의 이치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에 그토록 목을 매고 허겁지겁 살아왔는지 잠시나마 되돌아보는 묵상의 절기가 바로 가을인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언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아마도 매년 쳇바퀴처럼 반복된 계절만큼의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 세상에서 이만큼 떠밀려온 것이다. 인연의 굴레에서 세월이 흐르고 변하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세상사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다운 눈빛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훌쩍 떠나고 내 곁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이웃들이 먼 길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가을처럼 떠나고 세월은 먼지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우리가 인연의 끝자락에 서있는 것이다.
그냥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하늘은 파랗고 뒹구는 낙엽이 구르다 발밑에 머무는 시간이다. 마른 잎에 바람이 볼 부비는 소리를 듣노라면 세상을 잊는다. 가을빛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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