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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선정 베푼 면장·구장 공덕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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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61>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④ 고성지역의 금석문Ⅸ 간성읍 흘리지역에 남아있는 비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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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화) 11:07 8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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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지역 행정관청은 물론 주민이 합심하여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지역주민이 대대적으로 동원되는 큰 공역(工役)에는 그에 따른 기록을 비석에 새겨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에 반하여 선정비(송덕비)는 혜택을 베푼 인물의 은덕을 칭송하는 비석이다. 지방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관내 주민이나 관청의 관리들이 지방장관의 선정을 칭송한 선정비가 있고, 또 지방관원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선행을 하여 지역 주민에게 혜택을 끼친 인물이 있으면, 그 선행을 칭송하여 모범으로 삼고자 비석을 건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비석들은 대체로 관청으로 통하는 길목, 국가에서 관장하는 관도(官道) 곁에 혹은 마을 입구에 줄지어 건립되었다. 이들 송덕비를 보면 해당 지역 주민의 삶에 있어서 절실한 당면 요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고, 또한 지역 여론을 담당하였던 신분 계층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무렵에 흘리 지역에 남아 있는 이 비는 주민들이 선정을 베푼 간성면장과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 그리고 교육을 가르친 선생의 공덕을 찬양하여 세운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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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1) 면장 함동석 시은비(面長咸東錫施恩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 1리 55-10(GPS : N38˚14´10˝ E128˚29´17˝)
[연 대] 1932년, 10월
[크 기] 비신 높이 99㎝, 너비 42㎝, 두께 16㎝
[내 용] 진부령 정상에서 알프스 리조트 방향으로 가다가 콘도와 스키박물관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이 지역의 다른 비석 2기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군사보호구역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江原道)』,〈국립문화재연구소, 2000년〉에 따르면 1930년대 이 마을에 천재로 인하여 흉년이 들었을 때 식량난을 겪고 있는 마을의 실상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구호양곡이 지원될 수 있도록 당시 간성면장이었던 함동석(咸東錫(「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에 의하면 1929~1935년 간성면장을 재직하였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것을 높이 평가한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비는 화강암 재질로 비갓(碑首)이 없는 형태이고 상부는 중앙을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월두형(月頭形)에 가깝다. 기단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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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2) 구장김치원 자혜불망비(區長 金致元 慈惠不忘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 1리 55-10(GPS : N38˚14´10˝ E128˚29´17˝)
[연 대] 1932년, 10월
[크 기] 비신 높이 106㎝, 너비 45㎝, 두께 16㎝
[내 용] 진부령 정상에서 알프스 리조트 방향으로 가다가 콘도와 스키박물관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이 지역의 다른 비석 2기와 함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간성 면장 함동석(咸東錫)과 함께 1931년 흉년으로 인한 마을의 식량난을 해결 하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흘리 구장(區長,마을을 대표하는 사람, 이장(里長)을 말함)으로서 주민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한 점을 높이 평가하여 역시 1932년 주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는 화강암 재질로 비갓(碑首)이 없는 형태이고 상부는 중앙을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월두형(月頭形)에 가깝다. 기단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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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3) 나병규선생기념비(羅先生炳奎紀念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 1리 55-10(GPS : N38˚14´10˝ E128˚29´17˝)
[연 대] 1939년, 2월
[크 기] 비신 높이 116㎝, 너비 44㎝, 두께 14㎝
[내 용] 진부령 정상에서 알프스 리조트 방향으로 가다가 콘도와 스키박물관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비석 2기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무렵에 이 지역의 청장년들에게 구학문과 신학문을 교육하여 사회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가 컸던 나병규 선생을 기념하여 그 제자인 한도성(韓道成)을 비롯한 윤석순(尹錫順), 곽응화(郭應化), 윤운선(尹雲善), 김치원(金致元), 이화경(李華景), 김형봉(金衡鳳), 윤화선(尹華善), 곽응열(郭應烈) 9인(人)이 1939년 2월에 건립하였다.
비는 현무반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갓(碑首)이 없는 형태이고 상부는 중앙을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월두형(月頭形)에 가깝다. 기단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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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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