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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경치 구름처럼 달려 눈에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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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45>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Ⅵ - 고려 말에 남긴 만경대(萬景臺)의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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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10일(화) 13:42 5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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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축의 만경대 한시의 영인본. | ⓒ 강원고성신문 | | 1928년에 와서 토성면장 김용집(金溶集)을 주축으로 지금의 청간정이 중수되었지만 여말선초와 조선말까지는 만경대 ? 만경루 ? 청간정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시와 기행문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특히 지금의 위치에 자리한 청간정마저도 만경대와 떨어져 버린 이후에는 청간정 정명(이름)만이 남게 되었다.
이러한 여파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해순 교수의 논문「淸澗驛 옆 萬景臺와 外金剛 萬景臺」에 따르면 만경대는 금강산뿐 아니라 내설악, 외설악, 전주, 평양 등에도 있고, 서울 도봉구와 경기 고양시 경계의 만수봉을 만경대라고도 부른다. 금강산 만경대는 두 곳에 있다. 하나는 내금강과 마찬가지로 비로봉을 종산(宗山)으로 삼는 외금강의 최고봉이다.
김창협의「동유기」에 의하면 금강산 만경대는 유점사에서 구연동 선담을 거쳐 영은암을 지나 수백 보 떨어진 곳에 있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서쪽에서 북으로 이어진 봉우리들이 가로막고 있어 볼 수 없다고 적고 있다. 또 하나는 강원도 간성군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만경대는 여말(麗末)부터 사대부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시(詩)를 읊던 장소인 만큼 주옥같은 한시가 남아 있다.
여기에 수록된 6수(首)의 작품들은 고려 말 간성(杆城) 만경대(萬景臺)의 칠언절구로서 누제(樓題)는 대(臺)와 내(來)·배(杯) 세 자의 압운(押韻)을 써서 지었다. 시를 감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안축(安軸)의 ‘청간역 만경대에 제하며 허헌납 시에 차운하다’
海邊蒼石疊成臺(해변창석첩성대)
바닷가의 푸른 돌 첩첩이 쌓여 대를 이뤘는데
萬景雲奔入眼來(만경운분입안래)
일만 경치 구름처럼 달려 눈에 들어오네.
一葉漁舟向何處(일엽어주향하처)
한 조각 고깃배는 어디로 가는 건가
信風輕사似浮杯(신풍경양사부배)
바람을 등지고 가볍게 나부끼는 모습 잔이 뜬
것 같구나
또 한편의 시에
何代高賢舊釣臺(하대고현구조대)
어느 시대의 도 높은 현인이 낚시하던 대인지
坐看魚鳥去還來(좌간어조거환래)
앉아서 물고기와 새가 왔다 갔다 함을 보네.
可憐虛棄郵亭路(가련허기우정로)
가련하구나, 역사가는 길에 헛되이 버려져
登賞無人擧酒杯(등상무인거주배)
올라가 술잔 같이 들사람 없네. 하였다.
「題淸澗驛萬景臺 次許獻納詩韻 二首」(『謹齋集』권1) 關東瓦注
안축(安軸, 1282~1348)은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충혜왕 때 왕명으로 강원도존무사(江原道存撫使)로 파견되었다. 경기체가인「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어 문명이 높았다. 저서에『근재집(謹齋集)』4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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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만경대 주변을 구경하고 금강산 유람길에 행차하는 모습. | ⓒ 강원고성신문 | |
2.이곡(李穀)의 ‘만경대 시에 차운하다’
道傍奇絶石爲臺(도방기절석위대)
길옆에 절승이 있나니 바위가 바로 누대
過客何嘗特地來(과객하상특지래)
과객이 언제 특별히 찾아온 적 있으리오.
喜我閑遊登覽久(희아한유등람구)
기뻐라 나는 한유하며 오래 올라 구경하니
主人況復勸深杯(주인황부권심배)
게다가 주인이 술잔을 또 나에게 권함에랴.
時同年陸君爲杆城守(시동년육군위간성수)
이때 동년(同年)인 육군(陸君)이 간성(杆城)의
수재(守宰)로 있었다
「次萬景臺詩韻」(『稼亭文集』권19)
이곡(李穀, 1298~1351)은 고려 말의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동문선』에는 100여편에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죽부인전 竹夫人傳」은 가전체 문학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였다. 시호는 문효(文孝), 저서로는『가정집 稼亭集』4책 20권이 있다.
3.이달충(李達衷)의 ‘만경루승람을 보다’
觀海來登萬景臺(관해래등만경대)
바다를 구경하러 와서 만경대에 오르니
雲濤煙浪接天來(운도연랑접천래)
구름 안개에 쌓인 물결이 하늘에 닿아 들어오네.
若將此水變용酒(약장차수변용주)
만일 이 물이 술로 변한다면
何止日傾三百杯(하지일경삼백배)
어찌 하루에 3백 잔을 기울일 뿐이랴. 하였다.
「萬景樓 見勝覽 」(『霽亭集』권1)
이달충(李達衷, 1309~1385)은 고려 말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시호는 문정(文靖), 저서는『제정집 霽亭集』4권 1책이 있다.
4.정추(鄭樞)의 ‘청간역 만경대 시운에 차운하다’
淸澗東岡萬景臺(청간동강만경대)
청간의 동쪽 산등성이 만경대,
洪濤巨浪割天來(홍도거랑할천래)
집채 같은 물결이 하늘에 빼앗겨 오고.
丈夫鼓吻能如此(장부고문능여차)
장부의 호령 능히 이와 같으니,
將相侯王若擧杯(장상후왕약거배)
왕후장상 술잔을 들것 같네.
또 한편의 시에
佳節登臨海上臺(가절등림해상대)
가절에 바닷가 만경대에 올랐더니
冷然渾似御風來(랭연혼사어풍래)
서늘함이 모두 바람타고 오누나
若爲此水變春酒(약위차수변춘주)
만약 이 바닷물로 술을 빚는다면
喚取羽衣傾玉杯(환취우의경옥배)
신선 불러서 잔을 기울이리라
第二句 一作 ‘황如身與化人來(황여신여화인래)’
제2구‘마치 내 몸이 현인과 더불어 오누나’짓다.
「次淸澗驛萬景臺韻」(『圓齋文稿』권상)
정추(鄭樞, 1333~1382)는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추(樞), 자는 공권(公權), 호는 원재(圓齋) 또는 무형자(無形子)이다. 시호는 문간(文簡), 저서에 원재집(圓齋集) 3권 1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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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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