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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그린 풍경을 보고 시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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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47>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 Ⅷ 두 편의 어제시(御製詩)와 부자(父子)가 읊은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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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24일(화) 11:17 5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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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1>김홍도의 '해동명습첩'에 실린 '청간정도' 1788년. | ⓒ 강원고성신문 | | 고대로부터 산천을 존중하는 풍속이 있었던 우리 민족은 어떤 지역의 대표적인 산은 그 신령스러움으로 그 지역의 국가나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숭산신앙(崇山信仰)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 내내 대대적으로 행하여진 팔관회 중에 명산대천에 기원하는 절차가 지속된 것으로 보아 오랜 전통의 영향으로 유교적인 예치주의를 표방하였던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이 산천을 보는 기본적인 인식과 그들 토대로 산을 돌아보는 기행에서 얻고자 하였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문인들의 인생 여정을 담은 문집들에는 수많은 기행의 기록들이 나타난다. 그 기행의 자취들은 대개 승경으로 유명한 산들과 유적지, 연고지들을 돌아본 기록들이며, 시대를 만나지 못하여 뜻을 펴지 못하고 은거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여행을 하거나 산수에 파묻혀 세속의 티끌에서 벗어나고자 한 흔적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매월당 김시습, 추강 남효온 등이 있다.
정치적 사회적 안정기를 맞은 조선 사회는 문화적, 회화 분야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중국으로부터 각종 화보와 진응작(眞膺作)이 유통되면서 남종화풍이 크게 성하게 되었고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같은 새로운 성격의 그림들이 새로운 화법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겸재 정선을 위시한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란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의 대상으로 있는 점과 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독특한 화풍까지를 포함하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두 편의 국왕의 어제시는 화가들이 그린 풍경을 보고 지은 작품이다. 바쁜 국사 일정에 여행조차 하기 어려운 심정을 그림에서나마 승경을 감상하게 이르렀다. 직접 찾지 못한 숙종임금은 자신이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하고 있다. “좋아하는 완상물은 없지만 오직 유명한 그림은 즐긴다네, 이 때문에 그림을 많이도 모았는데 역시 뛰어난 것만을 모으는 버릇이 되었다네. 1711년 6월 하순에 적다.” 고 하였고,
정조임금은 “어떤 사람이 풍악(楓嶽)에서 돌아와 관동도(關東圖)의 병풍을 나에게 보여 주므로, 그 병풍에 8수(八首) 써서 돌려보냈다”고 시에 적고 있다. 여기서의 숙종임금이 즐겨 본 진경산수화는 누구의 작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 題名이 아닌 ‘만경대’로 제명을 써서 지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정조임금이 그림을 보았던 작품은 1788년 단원 김홍도가 그린 「해동명승첩(청간정도)」〈그림 1〉이다. 당시의 정조임금은 ‘청간정(淸澗亭)’ 제명을 한 그림마저도 ‘만경대’ 라고 시제(詩題)를 사용하였다. 두 임금 시대를 살펴보더라도 청간정 위치하며 진면목은 회화 속에서 잘 표현되고 있는데도 만경대 노래한 국왕의 마음은 오히려 자연적인 승경을 사로잡게 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두 편의 한시는 간성군수를 지낸 청백리 구음과 아들 구문유(具文游)가 남긴 작품이다. 시를 감상해 보면,
1. 숙종((肅宗; 1661~1720)의 어제시= 「관동팔경 만경대를 읊다(詠關東八景 萬景臺)」
秋日來登萬인臺(추일래등만인대)
가을날 만인대에 올라서 보니
可憐風景勝蓬萊(가련풍경승봉래)
가련하다 이 풍경은 봉래보다 뛰어나네.
時時水拍번成雪(시시수박번성설)
때때로 부딪치는 바닷물은 눈과 같이 흩어져
興到憑軒却忘廻(흥도빙헌각망회)
흥에 이르니 난간 기대어 돌아갈 것 잊었네.
조선 제19대왕.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순(焞), 자는 명보(明普). 시호는 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이고, 묘호는 숙종(肅宗)이다. 능호는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의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이 작품은『열성어제(列聖御製)』권9에 수록되어있다.
2. 정조(正祖; 1752∼1800)의 어제시= 「만경대첩(萬景臺帖)」
層溟盡處最高臺(층명진처최고대)
깊은 바다 다한 곳에 최고의 대가 우뚝 섰으니,
吳楚東南궤案開(오초동남궤안개)
오초 동남으로 갈라져 책상 앞에 열렸다.
巨浸漫天天四蓋(거침만천천사개)
큰물은 하늘에 넘치고 하늘은 사방을 덮었으니,
風流太史可停杯(풍류태사가정배)
풍류 태사(太師) 술잔 멈추고 구경할 만하구려.
조선 제22대왕. 본관 전주(全州), 이름은 산,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왕(文成武烈聖仁莊孝王)이다. 능호 건릉(健陵) 정종(正宗)이며,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1900년에 황제로 추존되어 선황제(宣皇帝)가 되었다. 저서로는 홍재전서(弘齋全書) 184권 100책 있으며 이 작품은 『홍재전서(弘齋全書)』,권2 「춘저록」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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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2>강세황의 '풍악장유첩'에 실린 '청간정도' 1788년. | ⓒ 강원고성신문 | |
3.구음(1614∼1683)의 시= 「만경대(萬景臺)」
造化何曾容著力(조화하증용저력)
조물주가 무엇을 힘들여서 한다던가,
金鰲朽骨積滄심(금오후골적창심)
금자라 썩은 뼈가 바다에 쌓인 거지.
俯臨鯨浪千層上(부임경랑천층상)
천 층의 거센 파도 구부려서 본다 해도,
誰測鮫宮萬里心(수측교궁만리심)
만 길속에 있는 용궁 헤아릴 자 누구던가.
?惚陰陽朝暮態(황홀음양조모태)
음양은 시시각각 자태를 바꾸는데,
滄茫天地古今心(창망천지고금심)
아득한 천지는 고금 통해 한결같아.
就中景物難名數(취중경물난명수)
이 속의 풍경들은 형용하기 어렵지만,
但喜松風入醉吟(단희송풍입취음)
시 읊을 때 솔바람이 불어와서 기쁘다오
저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차산(次山)이며, 호는 명곡(明谷)이다. 1680~81년에 간성군수(杆城郡守)를 지냈다. 이웅징(李熊徵)이 쓴 묘갈명(墓碣名)에는 “간성고을 수령으로 재임 중에 선생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죄인과 일을 주고받은 일이 있었는데 언관(言官)이 선생으로 잘못 알고 추고(推考)만을 명하였으나 선생이 자진 출두하여 사실 규명하고서야 사건이 마침내 밝혀졌다. 선생이 이일이 계기로 벼슬을 버리고 몇 해 동안 몸조리 하다가 운명하였다.” 선생은 재임동안 많은 치적을 남겨 간성고을 백성들이 세운 ‘청백거사비(淸白去思碑)’가 현재 춘천지방법원 고성등기소 동쪽에 남아 있다. 이 작품은『명곡집(明谷集)』,권2』에 수록되어있다.
4. 구문유(具文游; 1644~1718)의 시= 「만경대 올라서 두수의 짓다. 登萬景臺二首」
疊石成臺立海邊(첩석성대입해변)
층층의 바위 만경대 이뤄 바닷가 섰나니
登臨可以暢幽연(등임가이창유연)
올라보니 가히 그윽한 근심이 사라지네.
鯨過漢帝彎弓日(경과한제만궁일)
고래가 노니니 한나라 임금 활을 당기고
龍閱秦皇駕石年(용열진황가석년)
용이 지나가니 진황이 돌을 탄 듯 하다오.
烟起島門猶有地(연기도문유유지)
연기가 섬 입구에 솟으니 땅이 있음이요
波窮雲外更舞天(파궁운외갱무천)
파도는 구름 밖 다하고는 하늘에 춤추네.
松陰獨坐橫吹笛(송음독좌횡취적)
솔 그늘에 홀로 앉아 피리 부노라니
沙畔行人望若仙(사반행인망약선)
백사장 행인이 신선인 듯 바라본다오.
저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사아(士雅)이며 호는 예곡(禮谷)이다. 아버지는 간성군수로 부임한 구음이며 1681년 임소를 찾아 남긴 이 작품은『예곡유집(禮谷遺集), 권1』에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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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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