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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부딪치는 곳에 무지개가 생겨났다가 곧바로 없어져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48>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 Ⅸ 조선시대 기행문에서 살펴본 만경대

2012년 05월 08일(화) 11:51 60호 [강원고성신문]

 

↑↑ 이의성의 청간정도

ⓒ 강원고성신문


상고시대의 이름난 산천은 유람의 장소가 아니라 하늘과 인간이 교통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자연의 대상이었기에 대개 유람을 촉발하지는 않았다. 일찍이 신라 화랑들은 강과 바다뿐만 아니라 산에서 노닐며 풍류도를 익혔으며 심신을 단련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즐기게 된 연유라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에 선인들의 기행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이 기이한 경관을 구경하고 별스러운 유흥을 즐겨서 가슴속의 티끌을 죄다 씻고자 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조선시대의 기행문 또한 간성의 만경대와 누정에 관하여 적고 있다. 기행문은 雜記에 해당하는 글로 형식이 자유롭고 素材 또한 다양하다. 한 遊山記에서와 같은‘記’는 어떤 사물이 지닌 본질이나 특정한 현상에 대한 관찰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현존하는 대다수 기행문의 表題로 가장 많이 쓴 것은 ‘記’와 ‘錄’이고 체재 면에서 크게 분류하면 行文으로 되어있는 것과 漢詩로 되어 있는 것, 이를 혼용한 것으로 구별 된다, 기행문에서 ‘간성의 만경대’ 승경(勝景)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는 1485년(성종 16) 4월 15일부터 출발하여 5월 20일까지 총 35일간 금강산 일대와 동해안의 간성(杆城), 양양(襄陽) 낙산을 유람하고 인제(麟蹄)를 거쳐 홍천(洪川)으로 하여 상경한 기록이다.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문집『秋江集』권5에 수록되어 있으며 행적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계사일(13일) 비가 갰다. 출발하여 문암(門巖)을 지나고 바다를 따라 45리를 가서 청간역(淸澗驛)에 이르니, 물가에 임한 누각이 있었다. 누각 뒤에는 절벽이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누각 앞에는 많은 바위가 높고 험하였다. 내가 누각 뒤쪽 절벽 위에 오르니, 바라보이는 것이 더욱 넓었다. 서쪽으로 보이는 설악(雪岳)에는 빗줄기가 쏟아지는 듯하고, 하늘 남쪽에는 정오의 해가 하늘 가운데에 있었다. 바다는 앞에서 어둑하고 꽃은 뒤에서 환하여 기묘한 구경거리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절벽 위에서 밥을 물에 말아먹고 또 바닷가를 가서 모래 언덕과 바다굽이를 지났다. 이때에 동남풍이 급하게 불어 파도가 해안을 때리는 것이 마치 천병만마(千兵萬馬)가 몰아치는 듯했다. 바닷물이 부딪치는 곳에 붉은 무지개가 즉시 생겨났다가 생기는 대로 곧바로 없어지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죽도(竹島)를 바라보니 흰 대나무가 연기와 같다. 대나무 아래 바위 위에는 해달(海獺)이 줄을 이루어 무리들이 함께 우니, 그 울음소리가 물소리와 어우러져서 바다굽이를 진동시킨다.’

2. 「관동록(關東錄)」=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 1515~1554)의 「관동록(關東錄)」은 1553년(명종 8) 4월 9일부터 5월20일까지 친구인 허국선(許國善)과 남시보(南時甫)를 만나 옛 사람들이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즐기던 행적을 이야기하게 되어 의논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산행 장비를 갖추고 장비와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4월 9일에 모친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출발을 시작하였다.
40여 일 동안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의 명승지를 돌아보고 간성, 양양, 강릉으로 하여 서울로 돌아온 후 5월 27일에 쓴「관동록(關東錄)」에서는 간성(杆城)의 청간역정(淸澗驛亭)에 서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월 2일(정미) 아침, 또 호수 하나를 지나 소나무길 20리을 가서 청간역(淸澗驛)에 이르렀다. 역의 정자는 바다와 겨우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 약간 동쪽에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그 높이는 수십 길이나 된다. 위에는 구불구불한 소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는 흩어진 돌들이 들쑥날쑥하게 바닷가에 우뚝 꽂혀 있다. 바닷물은 굽어보니 맑기는 청동 거울 같은데 간혹 바람에 밀리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사방으로 날린다. 동쪽으로 바다 하늘을 바라보니 떨어지는 햇살이 밝고 고운데 서쪽으로 설악산을 바라보니 구름이 빗 기운 머금어 먹을 뿌려놓은 듯 검다. 해부(海夫) 네댓 명이 천 길 파도 속을 들락날락 하면서 전복을 채취하고 있었는데, 이는 김사문(金斯文, 간성군수 김면金沔을 말함)이 우리를 위해 대접하려는 것이었다.’

↑↑ 1020년대 만경대 주변 사진

ⓒ 강원고성신문


3. 「유산록(遊山錄)」= 잠와(潛窩) 이명준(李命俊, 1572~1630)의「유산록(遊山錄)」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지은 기행문이다. 이 작품은 강릉부사로 나갔다가 공무 중에 틈을 내어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것으로 여행에는 아들 현기(顯基)와 원기(元基), 박시창(朴時昌) 등이 동행하였다.
출발과 노정을 보면 1628년 4월 12일 강릉을 출발하여 관동 일대와 금강산을 유람한 뒤 5월 5일 강릉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3일간 여정을 기록하였다.
‘4월14일 청간정(淸澗亭)에서 점심을 먹고 만경대(萬景臺)에 올랐는데 또한 팔경중의 하나이다. 본 바가 잘못 듣던 바와는 같지 않았다.’ 강릉부사 이명준의 금강산 노정(路程)에 청간정에 들러 소략하게 기술하였다. 청간정보다는 만경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만경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4.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遊金剛小記」는 1631년(인조 8년) 가을 금강산을 유람 한 뒤의 기행문이다. 출발과 노정을 보면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되돌아 올 때까지의 주요 사건을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으며 여행 중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난 사람 및 그와의 대화, 명승과 유적에 대한 특징과 감회 등을 78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기행문에는 언제 금강산 여행을 함께 하였는지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고 다만 9월 13일에 청간정, 9월15일 경포호에 간 것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아래는 청간정에서의 노정이다.
‘9월13일 청간정(淸澗亭)에 도착하였다. 달빛이 파도와 함께 일렁거리고 하늘에는 새털구름도 없이 대낮과 같았다. 나는 이내(곧장) 만경대(萬景臺)에 올라 바위를 베고 누웠다. 밤이 깊어 차가운 이슬이 옷을 적시고 맑은 기운이 뼈까지 스며들었다. 종(奴)이 만경대 아래에서 피리를 불자 어룡(魚龍)이 뛰놀았다. 오늘밤의 달빛을 천하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지만 나처럼 득의양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간정은 바다에 아주 가까이 있어 성난 파도가 정자 자락을 때리는데 소리가 매우 장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파도 소리가 초행길 길손에게 매우 두렵네.(潮聲偏懼初來客)’라 한 것이 실상과 부합 되었다. 청간정의 기둥에 시 20자가 있는데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이 유람 할 때에 쓴 것으로 훗날 어떤 사람이 그것을 새겨 놓았다. 그 연대를 고증해 보니 23세 때에 쓴 것이다.’
‘만경대’와‘청간정’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17세기의 전반의 기행문 중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 역시 당대의 사대부로서 아름다운 비경인 만경대와 청간정에 대하여 세밀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청간정 한시 대부분 이 무렵에 많은 작품이 나오게 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청간정의 정자 역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만경루가 존재한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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