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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니 팔경 가운데 으뜸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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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50>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 ⅩI 만경대 주변의 또 다른 정자(亭子) 운근정(雲根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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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2일(화) 16:59 62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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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겸재 정선의 청간정도 세부 | ⓒ 강원고성신문 | | 1710년(숙종 36) 간성군수 권익륭(權益隆)은 만경루가 무너지자 새로운 정자를 세우게 된다. 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유학자인 삼연(三淵) 김창흡 (金昌翕, 1653~1
722)은 신묘년(1711년) 봄에 강릉 오죽헌(烏竹軒) 거쳐 간성을 유람하게 되는데 이때 새로 지은 정자를 운근정(雲根亭)이라 명명한다.
운근이란 ‘돌의 이칭(異稱). 구름이 돌에 닿아서 생긴다 하여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시에 ‘移石動雲根之意(돌을 옮기니 운근이 움직이네)’ 라는 글을 인용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三淵集拾遺卷之』권23 기문(記文) 「운근정기雲根亭記」에서 밝히고 있다.
1738년 겸재 정선(鄭敾, 1676~175
9)의 「청간정도(淸澗亭圖)」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청간정보다는 화려함이 매우 커서 이곳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많이 애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경대 옆 만경루와 위치상에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만경대 주변으로 누정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삼연 김창흡의 ’운근정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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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심연 김창흡의 운근정 기문 | ⓒ 강원고성신문 | |
기문 운근정기(雲根亭記)= 관동의 절승경개를 꼽자면 이른바 8경인데 모두가 다 해변에 있다. 지대가 넓고 좁음에 따라 각자 모두 하나의 우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절경마다 특유의 기이한 장점으로 된 것 또한 하나의 공통점인 것이다.
하지만 간성의 청간정은 다른 절경과 견주어볼만한 것도 없고 그 처한 곳이 볼품이 없는데다가 다른데 처럼 빼어난 경관이 없다. 예로부터 유람객들이 바닷가를 따라 구경을 하면서 내려오다가 도도했던 흥이 이곳까지만 오면 그만 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은 이곳에 그럴듯한 구경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다 정각을 짓기 전에는 오래도록 안타깝고 부끄러운 생각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정각의 남쪽에 또 몇 칸의 누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것은 정사군 양(鄭瀁)이 지은 건물인데 세월이 오래 흐르다보니 퇴폐된 것을 권후 익융 아저씨가 읍의 수령으로 오신지 삼 년째 되던 해인 경인년(庚寅年, 1710년(숙종36)에 정각을 다시 세우고저 논의를 했고 논의 끝에 편지를 보내서 내 의사를 물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정각을 중수하는 일이라 관례대로 하면 별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좀 어려울 듯한 문제라면 이 역사의 설계를 멋지게 해서 그 가관이 신기루와 기이함을 다툴 정도가 되어야 유람객들의 조소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저씨가 이 고을을 다스리는 만큼 물론 되는대로 어설프게 일을 버무리려 하지는 않겠지만 좀 근심되는 것은 지혜로운 방략의 재정과 물자의 조달이었다.
그런데 매번 기이한 일이 생길적마다 관리와 백성들은 신의 조화로 간주하고 놀랜다고 하면서 나를 일깨워 주기에 나도 그이를 따라서 두루 돌며 좋은 터나 찾아볼까 해서 나섰다. 그러다가 정각 남쪽 백 여보쯤 되는 곳에 높고 큰 산이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기세가 구름을 뚫고 하늘로 당장이라도 치솟아 오를 것만 같아 보였다.
아저씨가 손뼉을 치며 기뻐서 하는 말이 내 마음에 드는 정자가 앉을 자리를 찾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각을 짓는데 수요 되는 나무와 돌을 어떻게 준비할까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서쪽을 바라보니 은봉산이 가까이 솟아 있었는데 수 만개의 돌들이 한데 쌓여있어 참으로 현보의 옥돌을 가리어 놓은 것 같았다. 대체로 6면 혹은 모가 네 댓 개씩 되는 돌들이라 가공을 하지 않아도 척수가 서로 맞물리게 되어 있었다.
아저씨는 또 그 돌들을 돌아보고 웃으면서 정각을 쌓을 석재를 얻었다고 말하였다. 영이 내리자마자 마치도 귀신이 호통치고 꾸짖은 듯이 잠깐사이 산위로 수 십개의 돌이 옮겨졌는데 모두가 다 질이 단단하고 푸른색이 났으며 폭이 한자 남짓해 세워 박으니 주춧돌로 쓰기가 딱 알맞았다. 게다가 대들보를 사방으로 날개 펼치듯이 넓히고 버섯모양으로 된 지붕을 씌워 놓으니 여덟 기둥 안에 십 여 명이 모여 앉아 술판도 벌일 만 하였다. 그 옆으로는 돌아가며 난간을 둘러 쳤는데 모두가 다 돌로 쌓아 이루어 진 것이다.
그 다음 아저씨가 나에게 정각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으면 좋겠는가고 물었다. 내가 운근이라 짓자고 하였다. 이것은 당나라 사람들의 돌을 옮기는 바람에 구름뿌리가 흔들렸다는 시구에서 따온 뜻이다. 시험 삼아 사방을 둘러보니 동쪽은 하늘과 잇닿아 벽이 없으니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서쪽은 면면히 이어진 산발들이 백리에 뻗어있고 금강산 쪽에서 내려오던 오만하고 험악한 산세가 우불구불한 뭇 산들이 가마를 탄 것처럼 설악산으로 다시 우뚝 솟아 있었다.
천후산은 남몰래 슬퍼하는 것 같은데 이곳은 바로 연무의 소굴이요 노을이 거처하는 집이다. 중간으로는 미시령 원암으로 가는 역참길이 가로 꿰지르고 나갔고 죽 내려 와서는 끊임없이 펼쳐진 넓은 벌판이 나진다. 부들과 갈대들이 무성한 물굽이도 있고 연못과 순채가 덮인 늪도 있으며 나무꾼들이 다니는 다리와 낚시터 그리고 물 가운데 있는 작은 섬들과 학들이 노니는 물녘 등이 역력히 다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아름다움을 다투고 제 나름대로의 기이함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정자의 소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저씨는 술잔을 들고 나에게 이 정자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터는 땅이 아낌없이 내 주었고 재료는 하늘이 마련해 주었으니 모든 게 다 하늘과 땅이 보살펴 준 덕분이다. 높은 산도 있고 넓은 들도 있으니 이 어찌 팔경의 으뜸이 아니리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아저씨의 말씀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내가 이때까지 보아 온 절경들을 대략 꼽아 볼까요? 고성의 삼일포와 삼척의 죽서루가 멋은 있지만 바다를 등지고 앉았고, 강릉의 경포대와 평해의 월송정은 넓은 맛은 있지만 산이 중간에 가리었고, 울진의 망양정은 언덕에 있으나 기이한 데가 없고, 양양의 낙산의 해돋이는 확 트인 데가 없고, 총석정이라고 해도 역시 돌만 잔뜩 모여 서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참 팔경가운데서도 으뜸이 옳습니다. 여러 절경의 아름다움을 모두 다 여기에 옮겨다 놓은 듯 하니 천하의 무쌍이라 해도 나무랄 데는 없습니다. 이젠 정자도 완공이 되었고 누각도 다 지었으니 좀 더 장식을 한다면 만경대와도 견줄만하니 등촉을 밝혀놓고 생황가락에 맞추어서 노래까지 부른다면 한결 더 어울려서 제 멋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죽장망혜를 신은 손이나 수레와 가마를 탄 양반들도 여기의 경치에 반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을 것이오니 다시는 더 예전과 같이 적막하고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정자가 이름이 없어서야 어디 될 말입니까? 정자가 너무 높으면 비바람에 견뎌내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할까봐 걱정도 되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뚝 솟은 여덟 개 기둥이 정각을 바치고 구름 속에 솟아 있으니 그 어떤 난관도 다 물리치고 이겨낼 것입니다.
또한 아저씨의 뒤를 이어 버섯 같은 지붕과 처마 그리고 기와까지도 모두 보강하고 수리할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허름한 대우에 사람이 무엇을 기대고 서겠습니까? 그러면 정자나 정각이라고도 부를 처지도 못될 터이니 아예 운근대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신명이란 칭호에 어울리게 돌로 쌓아서 모든 게 썩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이 어찌 극찬할 일이 아니라 하겠소이까고 하였다. 이 글을 운근정기로 삼는 바이다. 신묘년(1711년)에 씀
한시 운근정시운에 차하다(雲根亭次韻)
淸秋與子過(청추여자과)
그대와 맑은 가을 함께 지나더니
春夜又風령(춘야우풍령)
봄 밤 격자창 바람이 다시 부르네.
恍惚臨蛟鰐(황홀림교악)
황홀하게 교악에 이르러
허明步月星(허명보월성)
텅 빈 밝은 뜰에 별과 달빛 밟아보네.
僊應我輩近(선응아배근)
신선이 가까이 우리들을 응대하니
酒豈此間醒(주기차간성)
어찌 술이 깨겠는가.
澎湃簾鉤下(팽배염구하)
발거는 고리아래 들락날락 파도소리
崩濤未厭聽(붕도미염청)
부서지는 파도소리 밤새도록 정겹구나.
『삼연집三淵集』권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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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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