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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에서 선정 베푼 관찰사·효녀 등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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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51>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
Ⅻ / 만경대 주변의 유적 비(碑)와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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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05일(화) 12:53 6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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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는 군사시설보호구역내 지번 54-10, 54-11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이곳에는‘만경대(萬景臺)’와‘청간정(淸澗亭)’두 개의 암각서가 남아있다. 군부대내에 있는 관계로 일반인이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현재의 위치에 옮기기 전 옛 청간정 터(址)가 있었던 장소였던 만큼 아직도 곳곳에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그 옆으로 여말선초(麗末鮮初)부터 사대부와 시인 묵객들에 사랑을 받아 왔던 만경대가 자리하고 있다.
만경대는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래 동안 사구(砂丘)에 의해 겸재 정선(鄭敾)의‘청간정도(淸澗亭圖)’에 나오는 모습은 완전히 파묻히고 머리 부분만 겨우 내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만경대에 모습이다. 필자는 몇 해 전에 이 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을 돌이켜보면 비록 나지막한 동산으로 변해지만 만경대를 올라와 보니 앞으론 펼쳐진 바다가 부서진 파도에 하늘로 오르는 듯 신비감이 저절로 감도는데 옛 시인 묵객들이 관망했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지금도 위에는 평탄하고 아래는 절벽으로 현재의 청간정에서 바라보는 정경과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만경대 절벽 1.5m정도의 아래 석벽에는 봉래 양사언의 필적인‘萬景臺’초서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풍화작용으로 인해 많이 마모되어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쉽게 확인 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런 대로 글씨의 운치가 있었다.
만경대 앞으로 또 다른 석벽 하나가 하늘로 솟아 있는데 행서체‘淸澗亭’이라 종(縱)으로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러한 절승지 만경대를 앞에는 관찰사 조석여 영세불방비(觀察使曺錫輿永世不忘碑)와 효녀 김해김씨 정려각(孝女金海金氏旌閭閣)이 세워져 있다. 청간정과 만경루가 1893년(고종 30)7월, 퇴파(頹破)하고 사구(砂丘)가 생긴 이후에 세워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와 정려각(旌閭閣)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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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석여 영세불망비 | ⓒ 강원고성신문 | |
1. 조석여영세불망비(曺錫輿永世不忘碑)= 조석여(曺錫輿) 영세불망비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51-10번지 현재 군부대내의 만경대 암석의 절벽 아래에 있으며, 바로 우측에 김해김씨 효녀각이 위치하고 있다. 비는 약간 검은색을 띠는 현무반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갓이 없는 형태이고 상부는 중앙의 좌우를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방부원수형(方趺圓首形)에 가깝다. 기단은 장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98.5㎝, 너비 37.0㎝, 두께 12.0㎝이다.
비의 앞면에는 “관찰사조공석여영세불망비(觀察使曺公錫輿永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계묘십일월일(癸卯十一月日)”이라는 건립연대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과 관련된 전언(傳言)에 의하면, 1958년 당시 부대장인 김동석(2009년 3월 26일 별세)의 “꿈에 흰 수염의 노인이 현몽하여 너의 비석이 땅속에 묻혔으니 찾아서 세우라고 하여 땅을 파본 결과 검은 돌비석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1920년경의 관동팔경 사진자료를 보면, 현재의 위치에는 효녀각은 있었으나 조석여 영세불망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앞서 언급한 전언내용으로 보아 다른 곳의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을 찾아내어 이곳으로 옮기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의 건립 시기는 1903년으로 추정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2권「간성군편」에 따르면 전 관찰사 조석여가 선정을 베푼 일로 청간리에 세웠다고 적고 있다.(前觀察使曺錫輿가 善政한 故로 竪立 淸澗里에 있다).”
조석여(曺錫輿, 1813~?)는 조선후기의 문신(文臣),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경(穉敬), 호는 하강(荷江)이다. 경상도암행어사를 거쳐 1866년(高宗 3)에 강원도관찰사 황해도관찰사, 1883년(高宗 20)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國朝榜目』,『國朝名臣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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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두현 기념비 | ⓒ 강원고성신문 | |
2. 김두현기념비(金斗鉉紀念碑)= 김두현 기념비는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89-1번지 청간정 매점 옆의 청간천 부근에 위치해 있다. 비는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갓이 없는 형태이고 상부는 둥글게 처리한 방부원수형(方趺圓首形)이다. 기단은 장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95.5㎝, 너비 37.0㎝, 두께 19.0㎝이다. 비의 앞면 중앙에는“숭정대부광산김두현기념비(崇政大夫光山金斗鉉紀念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그 우측면에 “수천재정(數千載亭) 효방기자(孝方其子). 그 좌측면에 오백연금(五百捐金) 위감사문(偉感斯門)”이라는 송덕을 기리는 내용을 새겼다. 뒷면에는 “경오년사월 일 입(庚午年四月 日 立)”이라는 건립연대가 새겨져 있다.
김두현은 1863년(철종 14)에 태어났으며, 1898년(광무 2)에 증직되었고, 1930년에 사망했으나 특별한 벼슬은 없었다. 현재 토성면 신평1리 138번지에는 1931년 문중에서 건립한 김두현 송덕비(金斗鉉 頌德碑)가 남아 있다. 『고성군지(高城郡誌)』에 의하면, 고성군 토성면 신평 1리 13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비석은 김용문씨의 고조부인데 1931년 문중에서 그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이다. 비좌는 매몰되어 있으며 비신과 비갓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갓에는 기왓골 조각이 되어있다. 이 기념비의 건립 시기는 김두현이 사망한 해인 193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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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귀룡처 김해김씨 정려각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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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귀룡처 김해김씨 정려각 현판글씨 | ⓒ 강원고성신문 | |
3.박귀룡처 김해김씨 정려각(朴貴龍妻金海金氏旌閭閣)= 김해김씨 정려각은 현재 군부대내의 만경대 암석의 절벽 아래에 있다. 정려각은 원형 주초석 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의 구조이다. 내부에 효행명정(孝行命旌)에 대한 현판(가로 111㎝×세로 31㎝) 이 걸려 있다.
현판 내용은 “효녀가선대부박귀룡처정부인김해김씨지문 명정 상지갑오팔월일 광무사년경자십월일 중수 본군수이정하서(孝女嘉善大夫朴貴龍妻貞夫人金海金氏之門 命旌 上之甲午八月日 光武四年庚子十月日 重修 本郡郡守李鼎夏書)”라 되어 있고, 그 옆에는 덧붙여 “개축 서기 일구칠십년칠월이십팔일 육군대령 소주영(改築 西紀一九七0年七月二十八日 陸軍大領 蘇珠英)”라 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기록이 없어 정부인 김해김씨의 효행사실에 대하여는 알 수 없지만, 현판의 간지로 보아 1900년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70년에 정려각을 개축하면서 정려 현판 역시 다시 제작하여 게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려각의 중수한 간성군수 이정하는 1899년 7월에 부임하여 1902년 9월에 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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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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