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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명의 동산에 고이 잠들어라”

호국보훈의 달 특집 인물 / ‘향로봉 전투’ 참전 노재실씨

2012년 06월 05일(화) 13:23 64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요즈음에는 좀 전진해서 현재는 화포리에 주둔했다. 향로봉전투는 요즈음은 전과도 대단히 양호하다. 바다에서는 함포, 공중에서는 비행기폭격, 육지에서는 용감무쌍한 육군 보병이 각종의 대포, 이것으로써 지상에 있는 적을 바다로 물리치고 있다. 아 전우여, 용감히 싸우자.’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29일, 군번 11041
3번을 달고 향로봉전투에 참가하고 있던 수도사단 제1연대 소속 수송부 노재실 선임하사는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도 틈틈이 일기를 썼다.
‘진을 치고 있는 고지에서는 모닥불만이 용사의 심사를 더욱 심란케 한다.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 이것이 민족을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 싸우다 쓰러진 용사의 눈물인가. 전우여 염려마오. 전우가 못다 한 일은 우리가 하오리다. 아~ 무명의 동산에 고이 잠들어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먼저 죽어간 전우들의 넋을 기리며 고지를 지켜내던 노재실씨(85세, 사진)는 이제 어느 덧 팔순을 넘긴 노인이 되었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였지만,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노씨는 아직도 못 다 한 일이 많다고 했다.
노씨는 고성군 토성면 용천2리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가 194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일제로부터 해방됐으나 고향이 공산치하에 속하게 되자 20세 되던 해 월남해 태능에 있는 국방경비대(나중에 수도사단으로 변경) 제1연대에 입대한다. 당시 양양군 현북면에 38선이 있어서 그의 고향인 용촌을 비롯한 고성군 전역은 북한에 속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모를 꺼에요. 나라가 없어서 만주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소련군의 군정 아래 공산치하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다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죠.”
태능에서 훈련을 마친 그는 동두천에서 근무하던 중 6.25 한국전쟁을 일으키고 남쪽으로 공격해 내려오는 북한군을 만났으나, 철저한 준비를 한 북한군에 비해 열세였던 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노씨가 속한 부대는 포항까지 후퇴해 안강전투에 참여했다가,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을 시작했다.
북진을 시작한 부대는 두만강 아래인 함경북도 해산진까지 진격했다. 청진에서 주둔하고 있는데, 미처 후퇴를 못한 인민군이 뒤에서 습격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언제 어디서 인민군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전후방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한창 북진을 할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전쟁이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되면서 부대는 흥남에서 배를 타고 묵호로 후퇴했다. 그후 ‘2차 북진’에 합류한 노씨는 강릉 대관령 전투를 거쳐 원산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후퇴해 향로봉을 중심으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위에서 소개한 일기는 바로 이 때 쓴 것이다.
향로봉전투에서 포탄 파편에 왼쪽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상처를 입은 그는 휴전이 성립된 후 육군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부산 5육군병원에서 육군 상사로 명예제대를 했다.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쟁 전에 북한이었던 고향은 이제 남한으로 변했다. 공산치하에 있던 고향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되찾은 그는 현재까지도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다.
다리가 다쳐 불편한 몸이지만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그는, 폐결핵을 3년간 앓기도 했다. 그후 경향신문 속초지국장을 맡고, 안보교육 강사로도 활동했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빠 국가유공자 신청도 못하다 지난 2001년 4월 23일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그는 “아직도 못다 한 일이 많다”고 했다.
“요즘 우리 국군이 문제가 많아요. 장개석 군대가 왜 망했습니까. 미군이 원조해준 무기를 팔아서 아편을 피웠어요. 가끔 TV에 국방관련 비리가 보도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특히 장교들이 문제에요 모든 장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군인은 사리사욕을 챙기면 안됩니다.”

↑↑ 노재실씨가 6.25전쟁 당시 향로봉전투에 참전하며 쓴 일기.

ⓒ 강원고성신문


고향에 정착 한 뒤 부인 함상영씨(80세)와 결혼해 3남2녀를 두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그는 요즘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과 단둘이 오붓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밭에 가서 농사도 짓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한다. 전쟁 때 다친 상처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병원에 다닌다.
그는 요즘 청소년들이 6.25전쟁을 모르는 것에 대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또 최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종북세력’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적색분자들은 한번 물들면 그 색이 탈색되지 않아요. 대통령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한마디 했더니, 반욕질을 하는 국민들도 문제죠.”
노씨는 “우리 젊은이들은 만일 제2의 6.25가 터지면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물질적인 것보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먼저 간 전우들을 위로하고, 아직 살아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광호 기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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