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기이한 바위와 높은 절벽 … 완연히 금강산을 닮았다”
|
|
남·북 고성군 DMZ 인근, 어떤 역사·문화적 사연 있나
|
|
2013년 09월 10일(화) 14:14 105호 [강원고성신문] 
|
|
|
선사시대부터 이어오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고성군은 고성과 간성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반복하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지역이 양양군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반환되는 등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특히 6.25 전쟁으로 인해 본래는 하나이던 자치단체가 반반으로 나눠지는 아픔을 안고 있는데,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DMZ 세계평화공원’ 최적지로 꼽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 글은 6.25 전쟁으로 인해 둘로 나눠진 고성군의 남쪽과 북쪽에는 어떤 역사적·문화적 사연들이 남겨져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남북 고성군이 사실은 하나의 지역이었으며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의 최적지임을 재확인하는데 작은 논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봤다.

| 
| | ↑↑ 구선봉과 송도 | ⓒ 강원고성신문 | 구선봉(九仙峯, 187m)= 『고성군읍지(高城郡邑誌)』를 살펴보면 군의 남쪽 15리 감호(鑑湖) 위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암석이 우뚝 우뚝 솟은 모양은 기이한 덩어리들이며 금강산 1만2천봉의 끝자락에 금강산 봉우리인 구선봉이 잇는데 정상에는 수십 명이 앉은 만한 반석이 있다. 옛날에 아홉 신선들이 놀았다는 전설로 인하여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신선이 즐겨하던 바둑판이 그려진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속은 비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은 여기서 놀면서 이름을 구선대(九仙臺)라고 하였다. 최근에 와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낙타의 굽은 등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낙타봉’이라고도 한다.
자주 구선대에 오른 봉래 양사언의 한시가 전한다. ‘구선봉은 풍악산(金剛山) 동쪽에 있다. 손곡(李達, 1539∼1612)과 함께 놀면서 입으로 부르면 댓구를 답하기로 하니, 손곡이 사양하기를 이같이 놀라운 시는 상대할 수 없다’고 하였다.(峯在楓岳東 與蓀谷同遊 口號 對屬次之辭曰 如此得意驚句 誠不可敵己)”
九仙何日九天中
구선(九仙)이 언제 높다란 하늘 가운데
萬里來遊驚紫虹
멀리서 와 놀면서 무지개를 탔었나.
湖海勝區看未厭
바다의 좋은 경관 볼 때마다 싫지 않아
至今離立倚長空
지금까지 속세 떠나 하늘에 의지해 서있네
해금강(海金剛)=『고성군읍지(高城郡邑誌)』에 따르면 군의 동쪽 10리 산기슭에 있으며, 육지와 연결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기이한 바위와 가파른 절벽이 바닷가에 둘러싸고 있고 그 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있는데 마치 금강과 같다고 하여 이름 하였다고 한다.
《여지승람》에는 ‘바다 가운데 암석이 바둑처럼 놓여 있는데 돌은 모두 흰빛이다. 해안에는 석봉이 그림처럼 벌여 서 있다. 동쪽을 바라보면 5리나 되는 사이에 석봉이 병풍처럼 벌여 있고, 봉우리 아래에는 돌들이 있어서 용이 움켜잡고 호랑이가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물을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면서 구경하면 그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배에서 뱃사람이 전복 따는 것도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고성군편)》에는 ‘산자락이 땅에 연결되어 바다로 들어갔다. 기이한 바위와 높은 절벽이 해변을 빙 둘러 싸고 서있는데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있어 완연히 금강산(金剛山)을 닮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해금강은 옛날에는 그 이름이 없었다. 무인 3년(1458년) 남택하(南宅夏)가 산수를 좋아하는 벽이 도져 금강산 부근의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곳을 모두 다녀보고 칠성봉(七星峯)의 북쪽 산록에 이르러 이곳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금강과 같아 해금강(海金剛)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된 시초’라고 적혀 있다.
『금강산실기(金剛山實記, 1916년)』에는 ‘작은 섬에 있는 경치와 불암(佛岩)을 보면 바다 물결이 바위에 부딪쳐 일천 줄기 일만 폭포가 되어 떨어지며 일장풍파가 해상에 뒤집히더라. 우뚝한 석각이 바다위에서 벌려 펼쳐지는데 칠성암(七星岩), 수정동(水晶洞), 군옥동(群玉洞)이 되어 높은 것은 대(臺)가 되고 동남동녀(童男童女)가 들어있는 것 같고 표지 깃발과 홀(笏)을 세워져 있는 것도 같고 나는 새와 다 탄 버린 짐승의 형상이 장관이다. 해금강의 널리 뛰어남이 이러하다. 육지에 금강산은 또 어떠한가? 사람마다 당장에 이러한 평가를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감호(鑑湖)= 구선봉 아래에 있고 둘레는 5리(약2~3km) 이다. 서쪽에 연선봉(捐仙峰)이 있으며 동쪽으로 큰 바다에 닿아 있다. 둥근 모양으로 흰 모래가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고 푸른 소나무들이 울창하여 참으로 아름답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1546년(명종 19) 호수가에 봉래 양사언이 살던 감호당(鑑湖堂) 집터가 있다. 봉래(蓬萊)는 다음과 같이 ‘감호당’을 노래했다.
問余何事卜閑居
무슨 일로 여기에 사냐고 묻는다면
天下名區盡不如
천하의 명승지도 여기만 못하리라
沙白海靑松翠路
흰모래 푸른바다 소나무 사잇길에
芙蓉萬朶盡吾廬
연꽃만 떨기가 모두 내 집에 있다네
송도(松島)= 통일전망대에서 바닷가 쪽으로 보면 돌섬 하나가 떠있고 그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몇 그루가 해풍을 맞으며 서 있다. 소나무와 벗하여 떠 있는 작은 돌섬 이름이 송도이다. 시인이자 1552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낸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은 다음과 같이 송도를 노래했다.
平地今無數
평지가 그토록 없는데
松下海上生
소나무 무슨 일로 바다 위에 사나
應知明月夜
응당 달 밝은 밤
時有鶴來鳴
때때로 학 날아와 울기 때문이겠지
송도에 솟아있는 소나무엔 학이 내려앉아 노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군의 남쪽 2리 남짓에 있다. 모랫길이 육지와 닿아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보면 고종 무오(戊午, 1258년)에 동진국(東眞國)이 선단을 이끌고 와서 이 섬을 포위하자 전함들을 불살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 
| | ↑↑ 통일전망대 | ⓒ 강원고성신문 | 통일전망대(統一展望臺)=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明湖里) 산31번지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57,332㎡이다. 육군전진부대가 세운 것으로 사업기간은 1983년 7월 15일에 착공해 이듬해 2월 9일 준공하였다. 1984년 2월 1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새로운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 모두에게 통일의 의지를 심어주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분단 현실의 아픔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 공해 주고 있다.
1층은 ‘민족의 얼’,‘통일의 의지’,‘통일을 향한 전진’등 3실로 세분해 한국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각종 무기와 장비, 금강산의 대형 모형·사진, 북한의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120석의 좌석이 마련돼 편하게 쉬면서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배치하였고, 북쪽 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설치하였다. 곳곳에 망원경이 설치돼 육안으로 미처 보지 못하는 풍경을 더욱 세밀히 살펴볼 수 있다.
강원도DMZ박물관= 원래는 고성군 안창면(安昌面) 지역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상지경이라고 한다. 이곳에 윗괸돌(고인돌) 또는 상지석이 많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동해안 최북단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DMZ박물관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담아내고, 60여 년간 원형 그대로 보조된 DMZ의 생태환경 등을 전시물과 영상물로 재구성하여 전시하고 있다. DMZ박물관은 남북한 문화적인 동질성 회복과 미래에 예상되는 통일을 준비함에 있어서 남북한 화합과 협력의 장이 되어감과 동시에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저진리 명파검문소= 저진이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간성군(杆城郡) 열산현(烈山縣)의 저진리(猪津里)라 불렀다. 저진리는 한때 원주민들이 제진이라고 지명을 바꾸자는 의견도 나와 결국에 제진으로 바꾼 적이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7년 5월 17일에 경의선과 함께 제진역에서 북측의 감호역까지 시험 운행이 이루어졌는데, 한자 표기는 저진(猪津)이나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글 표기는 ‘제진’으로 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동해북부선(東海北部線, 1937년 개통)이 온정(溫井)→감호(鑑湖)→저진(猪津)→거진(巨津)→간성(杆城)→공현진(公峴津)→문암(文岩)→천진(天津) 구간을 달렸는데, 당시 기차역의 정거장으로 사용할 때 제진(諸津)을 사용했다는 의견이 있다.
관찬지리서 1530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도서조(島嶼條)」 등 여러 고문헌을 살펴보면 저진리는 본래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의 모양이 돼지 같아서 저도(猪島, 현내면 저진리 산90번지)라고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명파리(明波里)= 우리나라 최북단 민통선 마을로 동해의 맑은 물과 백사장을 낀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명파리로 불리게 되었다. 일찍이 명파역(明波驛)으로 인하여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특히 이 지역은 모래가 우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명사(鳴沙)라고 한다. 해금강에 속한 지역으로 여말선초부터 많은 사대부, 시인묵객들이 반드시 명파역을 거쳐갔다. 명파리라고 부르게 된 연유도 명파역과 무관한 일이 아니다.
고려 말에 남겨져 있는 한시를 보더라도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고려 말 대학자 이달충과 이곡이 명파역을 노래했다. 여기서는 이달충의 시를 감상해보자.
明波驛見勝覽
이달충(李達衷)
倚欄東望水浮空
난간 의지해 동쪽 보니 물이 공중에 떴는데
一嘯須知樂在中
한 번 휘파람 부니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네
濟海誰爲舟楫用
바다를 건너는데 누가 배를 저을꼬
揚帆已有大王風
돛을 다니 벌써 대왕의 바람이 불어오네.
남북 고성군 DMZ 일대에는 이밖에도 몽개미산(마차진 뒷산), 무송대(茂松臺) 등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이 남겨져 있는 지역이 많다. 앞서 소개한 내용들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충분히 소개하려면 고성신문 지면을 다 채워야 할 정도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보다 많은 내용을 소개하기로 하고, 아무쪼록 남북 고성군 DMZ 일대가 세계평화공원으로 지정돼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접경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
|
|
|
|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