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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안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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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국 군수 9월 17일 별세 … ‘고성군장’으로 성대한 장례식
최문순 도지사 등 각계 조문 … 박흥용 군수권한대행 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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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8일(화) 11:13 10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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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민선 5기 고성군정을 이끌어 가던 황종국 고성군수가 지난 9월 17일 새벽 4시 14분 속초의료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유족은 부인 전숙녀씨와 1남3녀.
고성군은 고 황종국 군수의 장례식을 ‘고성군장’으로 결정하고 박흥용 군수권한대행을 장의위원장으로, 선출직 의원들을 고문으로, 실과소장을 위원으로 하는 고성군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5일장으로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속초의료원에는 강원도와 고성군 기관·단체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조문이 이어졌으며, 군청 3층 소회의실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황망히 세상을 떠난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례식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군청 광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날 오전 8시 속초의료원 빈소를 출발한 운구 차량은 발인의식을 가진 뒤 경찰 선도차를 따라 군청 광장에 도착했다.
이어 오전 9시부터 최문순 도지사를 비롯해 강원지역 자치단체장과 도의원, 고성지역 기관·사회단체장, 군청 직원, 주민 등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약력보고, 영결사, 조사, 생전영상 근청, 헌화 및 분향 순으로 경건하게 치러졌다.
고성군장의위원회 박흥용 위원장은 영결사에서 “모든 인연은 좋든 싫든 필경 비롯된 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고 만나면 필경 헤어지게 마련이라지만, 군수님께서 품으셨던 ‘녹색성장, 통일고성’의 큰 뜻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이때에 이토록 황망히 가셔야만 하셨느냐”며 고인을 애도했다.
또 “군수님께서 그토록 열정을 바쳐 일하시던 군청, 무한한 사랑과 자애로운 가슴으로 품으셨던 동료 직원들, 그리고 수많은 군민들이 군수님을 뵙고 싶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며 “군수님께서 품었던 큰 뜻은 남겨진 우리가 이어가도록 하겠으니,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히 쉬시기 바란다”고 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유족들이 영정 사진을 모시고 군수 집무실을 순회했으며, 오전 10시 운구차량이 직원들의 애도 속에 군청을 빠져나갔다. 이어 간성읍 상리 자택에서 노제를 지낸 뒤 죽왕면 가진리에 소재한 고성군공설묘원에서 안장식을 갖고 영면에 들었다.
고 황종국 군수의 별세 소식을 접한 대다수 고성주민들은 고인이 20여년간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고성 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적을 거론하며 애도의 마음과 함께 명복을 빌었다.
한편 김정삼 강원도 행정부지사는 장례식이 끝난 3일 뒤인 9월 24일 오후 4시 고성군청을 방문해 실과소장 및 읍면장이 참석한 가운데 고성군 주요현안 사항에 대해 청취하고, 전 직원들이 박흥용 군수권한대행을 중심으로 맡은 바 소임을 수행하기를 당부했다.
군수 부재에 따른 보궐선거는 공직선거법 제201조 1항(보궐선거 등에 대한 특례)에 ‘선거일부터 임기 만료일까지의 기간이 1년 미만일 경우 보궐선거 등을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고성군과 군의회가 선관위에 미실시 의사를 밝힘에 따라 실시하지 않게 됐다.
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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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22년간 고성지역 발전 위해 큰 족적 남겨
“병석에서도 여름 가뭄 걱정 … 일반주민처럼 공설묘원에 묻어달라”
작은 체구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 유머있고 친근한 ‘서민 군수’
지난달 17일 세상을 떠난 고 황종국 군수는 1937년 거진읍 용하리 태생으로 1956년 동광중학교를 졸업했으며, 부인 전숙녀 여사와의 사이에 1남3녀의 자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전쟁 등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가난을 체험하며 성장한 청년 황종국은 무엇보다 고향이 풍요롭고 살기 좋은 지역이 되었으면 하는 열정이 강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특히 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불같이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 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본격적인 사회활동은 41세이던 1978년 재향군인회 고성군연합분회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50대에 접어들면서는 1988년 88올림픽 고성군지부장, 1989년 고성라이온스클럽 회장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선 자치시대가 시작된 1991년 7월 54세의 나이로 제1대 고성군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후반기 군의회 의장을 맡았으며, 1998년 7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61세의 나이로 민선 2기 제30대 고성군수로 선출됐다.
민선 2기 임기 말에는 여당공천에 탈락하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기도 했으나, 6년여의 공백을 깨고 2008년 6월 보궐선거를 통해 민선 4기 군수로 재선출되면서 제2의 정치인생을 살게 됐다. 이어 2010년 7월 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5기 군수에 당선돼 고성지역 최초로 ‘3선 군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고인은 재임하는 동안 무엇보다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열정을 바쳐 노인일자리 창출, 고성태 브랜드 개발, 해양심층수 개발 등 굵직한 사업을 성사시켰다. 또한 지방상수도시설 확충과 공공하수처리시설 건설, 간성 및 거진 소도읍사업 추진 등 기반시설 확충에도 힘썼다.
이밖에 국회의정연수원과 거진항 이용고도화사업, 화진포 국제휴양관광지 조성사업 등 대규모 투자사업의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알프스스키장 재개장 실패와 고성태 브랜드화 사업 관련 러시아 직거래 무산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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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고 황종국 군수는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순발력 있고 유머러스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갖춘 ‘서민 군수’로 남아 있다.
고인은 지병으로 고생하던 지난 여름 고성지역에 가뭄이 심해 밭작물이 말라죽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자신의 몸이 아픈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가 내려야 할텐데…”라며 농민들을 걱정해 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고 한다.
또 ‘군수’라는 직함에 걸맞게 선산에 묘지를 크게 쓸 수도 있었으나, 고인이 공설묘원에 다른 주민들과 같은 크기의 묘를 써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죽음 앞에서도 서민적인 풍모를 버리지 않았다.
고인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지난 1991년 지방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3선군수로 별세하기까지 22년간 지역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고성군의 발전을 위해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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