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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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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정 남 용(鄭南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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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4일(목) 11:38 21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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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高城) 현내면 철통리 출신이다. 다른 이름으로 정필성(鄭必成)·홍우식(洪宇植)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불문(佛門)에 몸담아 고성군 건봉사(乾鳳寺) 승려로 있었다. 1914년 서울로 올라가 휘문의숙(徽文義塾)과 중앙불교포교당에서 공부하였고, 1919년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대동단)에 가담해 활동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대동단의 선전활동 책임자로서 대동단에서 발행하는〈선언서(宣言書)〉와〈임시규칙(臨時規則)〉등 각종 문서를 인쇄 배포하는 한편, 청년단 조직을 이끌면서 단원 모집과 조직 확대에도 힘썼다. 그러다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단장 전협(全協) 등과 협의해 본부를 상하이[上海]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1919년 10월 10일 먼저 김가진(金嘉鎭)을 상하이로 망명시켰다.
이어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대동단의 수령으로 추대하고 망명 계획을 추진, 그해 11월 9일 이을규(李乙奎)·한기동(韓基東)·송세호(宋世浩)와 함께 의친왕을 수행하고 만주 안둥(安東, 현 단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알아챈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아 11월 11일 만주 안둥현역(安東縣驛)에서 체포됨으로써 대동단 본부의 이전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후 경성지방법원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1921년 4월 18일 옥중에서 26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出典:
●韓國獨立運動史(愛國同志援護會, 1956)
●독립운동사 3·4·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1972·1976)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 第7卷(국가보훈처, p.636)
●고성군지(高城郡誌 ,고성군, 1998, 보정판, p.p144~145.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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