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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世 다섯효자 모두 단지해 피 먹여, 함희석은 3년간 시묘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65>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⑤ 고성지역의 정려각 Ⅱ 왕곡마을의 양근함씨(陽根咸氏, 강릉함씨) 효자각

2013년 03월 19일(화) 13:22 94호 [강원고성신문]

 

↑↑ 양근 함씨 4세대 5명의 효자를 기리는 양근함씨사세오요지정려각(陽根咸氏四世五孝之旌閭閣)

ⓒ 강원고성신문

1. 왕곡마을 개관= 고성의 왕곡마을은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전통 한옥마을로 14세기 강릉함씨와 강릉최씨가 지금의 오봉1리, 용궁김씨가 오봉2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농촌마을이다.
오봉 1리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금성리(錦城里), 아래쪽은 왕곡리(旺谷里)로 불리어지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통상 오봉1리를 왕곡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오봉 2리는 적동리(笛洞里)라고 부른다.
강릉함씨는 고려 말에 함부열(咸傅說)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데서 비롯하여,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후 150여년에 거쳐 형성되었다.
강릉최씨는 원시조인 최흔봉(崔欣奉)의 15세손이 지금부터 약 750년전 간성군수(杆城郡守)로 부임할 때 그의 동생(仁司)이 거진읍 대대리에 안착하였으며, 그 일파가 왕곡마을에 정착했다. 강릉의 호족(豪族)으로 교분이 있었던 강릉최씨 문중은 시대가 바뀌어 상대적으로 몰락한 강릉 함씨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용궁(龍宮)김씨는 휴암(休菴) 김옥광(金玉光)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공(公)은 고려 태자(太子) 소보(少保, 고려시대 동궁에 딸린 종2품 벼슬) 김존중(金存中)의 후손이며 단종(端宗) 시기에 본도백(本道伯)이 되었고 아울러 원주(原州)의 목사(牧使)가 되었다.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단아한 그 모습, 사물에 통달한 식견, 명성 널리 드러나, 내각(內閣) 두루 개혁하니, 홍악(紅幄)의 반열에, 재주와 꾀 환희 빛났도다.”라고 하였다. 세조가 왕위를 잇자 수성(水城, 지금의 간성)에 은둔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오봉리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원형을 유지한 채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 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는 ‘전통 민속체험’ 축제 행사가 2004년을 시작으로 매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2. 양근함씨사세오효지정려각(陽根咸氏四世五孝之旌閭閣)= 간성읍내에서 공현진을 지나 속초방향으로 가다보면 육교를 벗어나 200m쯤 우측으로 진입하면 왕곡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양근함씨사세오효지정려(陽根咸氏四世五孝之旌閭)는 마을에 이르기 전에 저잣거리를 지나 두 갈래 길에서 우측면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고성군 죽왕면 오봉1리 374번지)
효자 함성욱(咸成郁)의 호는 성헌(醒軒)이고 본관은 양근(陽根, 강릉江陵)이며 양후공(讓厚公)의 규(規)의 후손으로 고종 때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부친인 취관(就寬)이 병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먹여 7일을 더 연명케 하였으며, 조정에서는 이를 선양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의 벼슬을 내렸다. 이 같은 효행은 후손들에 귀감(龜鑑)이 된 이후로 ‘사세오효자(四世五孝子)’가문을 이루게 되었다.
즉 인흥(仁興)과 인홍(仁弘) 형제는 부친인 함성욱이 병으로 위독하자 단지하여 피를 먹여 3일을 연명케하여 조정에서는 인흥 통훈대부(通訓大夫), 인홍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또한 다음 세대인 덕우(德祐)는 부친인 인홍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역시 단지하여 피를 먹여 1년을 연명케 하였으니 조정으로부터 동지중주부사의 벼슬에 증직되었다. 덕우의 아들 희룡(熙龍) 역시 부친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단지라고 피를 먹여 3일을 연명케 하니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라는 벼슬을 내렸다.
이 정려는 함성욱(咸成郁)을 비롯한 아들 인흥, 인홍, 손자 덕우, 증손 희룡 등의 양근 함씨 4대에 걸쳐 5효자가 모두 단지하여 부친의 생명을 연장하는 등의 보기 드문 효행을 실천하여 모두가 정려를 받았다. 효행으로 표창록(表彰錄)에 기록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20년 효자비를 건립하고 ‘사세 오효자각(四世五孝子閣)’이라 명명하였다.
정측면 각1칸(210×210㎝)의 팔작지붕 건물인 효자비각은 1984년 건립되었으며, 양 기둥 안쪽으로 홍살문이 별도로 설치되고 그 안쪽으로 5기의 효자비는 각각 그 이면에 배치되어 있으며 효행(孝行)과 행장(行狀)을 기술하고 있다. 비각의 초석은 화강암재로서 한쪽을 절단한 형태이며 비는 오석으로 만들어져 효자각 안에는 중앙으로 3기가 있고 좌우로 각 1기가 옆으로 세워져 있다.
우측 효자비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효자/증통훈대부/한성부윤함인흥지각(孝子/贈通訓大夫/漢城府尹咸仁興之閣) ②효자/증가선대부행/동몽교관함성욱지각(孝子/贈嘉善大夫行/童蒙敎官咸成郁之閣) ③효자/증통정대부/돈녕부부정함인홍지각(孝子/贈通政大夫/敦寧府副正咸仁弘之閣) ④효자/증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함덕우지각(孝子/贈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咸德祐之閣) ⑤효자/증통훈대부/의금부도사함희룡지각(孝子/贈通訓大夫/義禁府都事咸熙龍之閣). 음각(편액)하고, 측면에는 모두 동일하게 서기 1984년 갑자 음3월5일 종중 근립(西紀一九八四年甲子陰三月五日宗中謹立)이라고 적고 있다.

↑↑ 함희석 효자각(咸熙錫孝子閣)

ⓒ 강원고성신문


3. 함희석 효자각(咸熙錫孝子閣)= 함희석 효자각은 왕곡마을 중간에 위치해 있다.(죽왕면 오봉1리 396번지)
함희석(咸熙錫, 1845~1918)의 자는 사언(仕彦)이고, 호는 오헌(梧軒)이며 본관은 앞서 밝힌 함성욱과 같은 양근(陽根, 강릉江陵)이며 먼 친척일 것으로 보인다. 양후공(讓厚公)의 규(規)의 후손으로 개국정난공신 공부상서(開國靖難功臣工部尙書) 유일(有一)의 22세손이며 덕인(德仁, 1828~1860)의 장남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문의 뜻을 잃었지만 예도(禮度)를 어기지 않았다. 평소 어버이를 봉양함에 몸과 마음이 어긋남이 없었고 부친이 술을 좋아하자 항상 준비해놓지 않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부친이 병이 들자 똥의 달고 쓴 것을 맛보았으며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리는 등 부모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하였다.
1860년(철종 11) 2월 천화가 나서 영동 9읍(邑)이 일시에 화란이 일어나던 때 부친이 술에 취하여 귀가 도중 길가에서 잠들었다가 큰 화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성으로 간호하였다고 한다. 그때 당시 나이는 16세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삼년간 하는 동안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 밤에는 호랑이가 따라 다녔다고 하여 이 길을 일컬어 ‘효현(孝峴, 효자고개)’ 또는 효로(孝路, 효자길)’라고 이름을 부르고 있다. 모친상 때도 상례가 부친상과 같았으며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하사받았다. 표창록(表彰錄)에 기록되어 있으며 판서 이재현(李載現)이 효자비명(孝子碑銘)을 지었다. 벼슬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이르렀고 의금부부사에 증직되었다.
1869년에 건립한 효자비는 화강암재로 팔작지붕 모양의 비갓을 얹었다. 1871년 12월 건립한 비각은 전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전면 기둥 안쪽으로 홍살을 세운 것이 이채롭다. 비각의 주춧돌은 3단의 고주형이고, 앞 초석 2매의 전면에는 전서(篆書)로 ‘귀(龜)’자를 새겨 놓았다. 주변은 토석혼축의 담장을 두르고 그 위에 기와를 얹었다.
비의 전면에는 ‘효자전통정대부돈녕부도정강릉함희석지려(孝子前通政大夫敦寧府都正江陵咸熙錫之閭)’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 ‘효자 함희석 포창완의문(포彰完議文)’에는 그 효행(孝行)과 행장(行狀)이 기술(記述)돼 있다.
‘효자전통정대부돈영부도정’공(公)은 고려 말의 충신 죽계(竹溪) 함부열(咸傅說)의 18세손이다. 부열의 아들 우충에서 태어난 두 형제는 장남 치원(致遠)이며 후손들이 지금도 금수리(金水里)에 살고 있고 차남 영근(永近)은 지금의 오봉리(五峰里)에 와서 정착하게 되면서 7백 년 동안 이르고 있다. 공(公)은 조선말기 1845년(헌종 12) 10월 7일에 출생하여 서기 1918년 10월 14일 돌아가셨다. 묘소는 공현진 선유담에 있다고 한다. 형제로는 희교(熙敎)·희훈(熙勳) 두 아우가 있었으며, 슬하에는 영두(泳斗), 영준(泳俊), 영우(泳佑)를 두었다.
공(公)의 장남인 영두는 호(號)가 양효당(養孝堂)이며 벼슬로 이조참의(吏曹參議)을 지냈고, 차남인 영준은 호가 남계(嵐溪)이며 벼슬을 주사(主事)에 셋째 영우는 호가 운재(雲齋)이며 주사(主事)벼슬에 이르렀다.
오봉 강릉함씨 족보에 의하면 함희석의 차남 영준의 외아들인 요근(堯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죽왕면(竹旺面) 민정관(民政官)을 지냈다. 또 요근의 장남 형찬(炯贊)은 한국전쟁 당시에 국군으로 참전하여 뒤에 화랑무공훈장(花郞武功勳章)을 받았다. 셋째인 형구(炯仇)는 삼척군수, 강원도 춘천부시장, 강원도 내무국장, 고성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간성읍지(杆城邑誌, 1748)』
『강원도지(江原道誌, 1941)』
『조선환여승람(고성군편, 1938)』
『고성군지(高城郡誌, 1998)』
『풍암2호(豊巖2號, 2010』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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