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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 칼럼 / 고 최명길 시인과 고성문학회

2014년 05월 27일(화) 09:00 122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고성군 경제도시과장)

ⓒ 강원고성신문

지난 5월 4일 우리 문단의 원로시인 고 최명길 선생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산을 남달리 좋아하시던 그는 2002년 40여 일간 백두대간 종주의 대장정을 마치고 정리한 ‘백두대간 산시’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유명을 달리해 아끼던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투병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결코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우리 시단의 거목이며 문단에 명상적 서정시의 큰 별이다.
고 최명길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간성 시장부근의 문 경양식에서 고우회 주관으로 시낭송회가 열렸다. 지역주민의 감성과 정서함양을 위해 청년문학 활동을 펼쳐왔던 고우회 회원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작 시낭송회를 갖는 자리였다. 고우회는 시화전과 시낭송회의 초대시인으로 토성면 성대리가 고향인 고 이성선 시인을 초청했고, 물소리시낭송회 공동 상임시인으로 활동하던 고 최명길 시인도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간성 고우회 시낭송회서 첫만남

난생처음 만난 그는 교단에 있었지만 미려한 얼굴의 후덕한 풍모, 온유한 품성과 달리 안광이 번뜩이는 40대 장년의 문학가 그 자체였다. 고우회의 ‘시와 사랑이 여기에’ 시낭송회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들려주던 명상적 서정시는 참석자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문학과 자연이라는 그의 시학적 신념을 독자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다. 동해안 최북단 접경지역의 척박한 시골동네에서 진행된 시낭송회에서 그는 문학의 등불을 밝히고 시문학의 불꽃을 뜨겁게 일구어 가던 시기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가 절정을 이루던 시절 강릉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급신문에 ‘태극기’란 글이 실리면서 문학에 인연을 맺은 것으로 회고한다. 학창시절과 청년시절을 거치는 동안 초등학교 때의 인연은 무럭무럭 자라서 업보처럼 그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는 동안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사범학교 졸업 후 1961년 교직을 시작했고 1966년 천진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임할 때 황규원, 최형섭, 전세준 등 문학에 뜻있는 10여명의 동인과 함께 청간정에 모여 ‘금강문학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작은 문집인 ‘금강’이라는 동인지도 매년 발간하기도 했다. 이것이 수복이후 우리지역에서 문학단체 활동의 시원이 된 것이다. 그가 뿌린 문학의 밀알이 움이 트고 싹이 자라는 시기가 바로 고성지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 고장이 그에게 문학적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금강문학회 동인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학 활동에도 전념했다. 틈틈이 손수 만든 시화를 강릉 ‘청탑’다방에서 5일간 시화전을 가졌다. 그가 붓으로 직접 쓰고 장일섭 화백이 직접 그린 시화, 손수레에 그의 시화를 싣고 독자를 찾아다니던 열혈 청년, 용광로처럼 뜨겁게 문학을 사랑했던 시절이 그가 고성지역에 머물렀던 시간이다.
시인은 꾸준히 문단을 두드렸다. 드디어 1969년 천진 바닷가 거북바위에서 엎드려 쓴 작품 ‘해역에 서서’ ‘자연서경’ ‘은유의 숲’ 등이 1975년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되면서 비로소 그의 문학은 꽃을 피우고 문단에 올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후 그는 거주지였던 속초 설악문우회 창립과 동인지 ‘갈뫼’의 창간에 참여했고, 1981년 고 이성선, 이상국, 고형렬 시인과 함께 물소리시낭송회를 발기하여 19년에 걸쳐 149회의 시낭송회를 이끌었다. 1999년 이후 중단된 시낭송회는 2013년 12월 6일 ‘고성문학’ 창간호출판기념회 축하공연으로 참석하여 제150회 시낭송회를 이어가면서 그의 문학적 역량은 절정에 달했다. 2011년 2월 고성문학회 창립식에 초대시인으로 참석했고, 창간호에도 그의 작품 ‘돌거북이가 물어다 준 시’가 실렸다. 고성지방이 분명 그의 문학적 발자취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란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물소리시낭송회는 시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탄생했다. 현대시는 주로 눈맛으로 시에 맛 들인다. 낭송시는 낭송을 통해 청각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시인과 독자가 시를 두고 동시에 한 공간에서 만나 삼위일체적 교호작용을 일으키며 시를 감상한다.’라고 시낭송의 의미를 설파하면서 물소리시낭송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단의 ‘산’ 같은 존재

임계를 넘어선 도인, 그 사유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다. 그의 시세계는 언제나 극미묘한 세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홀로 걷거나 불가와의 교감뿐만 아니라 노장사상에도 심취해 있었다. 누군가 시문학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려 하면 우선 금강경부터 공부하라고 했을 만큼 특별한 시학의 신념과 사상을 지닌 시단의 산과 같은 어른이었다. 그의 심오한 사유의 경지를 감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시에서 나는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얼 기대하지도 않았다. 조금 알록한 시가 튀어나오기를 바랐지만 그도 미미했다. 그렇다 해도 내 삶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가장 오래 깊이 몰두했던 것도 시다. 제일 좋아한 것도 시고, 고작 값지게 여긴 것 또한 시다. 아는 현존재가 최선의 극미묘한 현상세계를 분출한다는 인식으로 살아왔다.’라고 자신을 낮추고 ‘시는 사유가 자성에 부딪혀 일어나는 예리한 빛에서 촉발한다. 나는 이 극미묘한 현존재들에 감각의 촉수를 들이대고 사유를 했다. 내가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 것은 사유를 위해서였다. 사유가 깊어야 시의 빛깔이 깊다. 절벽 같은 소슬한 정신의 깊이에서 태어난 시는 유현하다. 내가 험준한 산에 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특히 절벽 난간에 서 있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사유와 시의 이런 관계를 알아챈 때문이었다.’ 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시세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는 사유를 건드려 지은 소슬한 언어의 탑이다.’ ‘시의 돌팍길을 실로 미묘하고도 멀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쯤 시 전문월간지 <유심>을 인편에 보내왔다. 책을 받긴 했지만 읽어보지 못했다. 장례를 치루고 돌아와 무심히 책을 펼쳐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월간지엔 그의 문학적 삶이 잘 정리되어 실려 있었다. 자신이 못다 한 이야기를 아마도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생각된다. 평소 빈틈없고 꼼꼼한 그의 품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너무 미안하고 감사할 일이다.
한때 그의 그늘 아래 있었다. 그늘이 없어진 오월의 햇살은 뜨겁다. 앞으로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걱정이 많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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