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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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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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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2일(화) 09:51 12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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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경상북도 구미, 금오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세원약국.
잿빛 하늘로 인해 건물 외벽에 붙어 보랏빛 줄기만 남은 담쟁이 넝쿨이 을씨년스럽다. 출근한 이경희가 약국 문 셔터를 위로 밀어올렸다. 차가운 바람 기운에 목을 움츠린 그녀가 잠긴 중앙문 넘버키를 누르는 사이 주머니에 든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지의 번호 앞자리는 033, 강원도 지역번호이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그녀는 약국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출근길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니만 기어이 허공에서 흰 눈송이가 나풀나풀 흩날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2010년 12월 27일, 오전 9시 50분경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 목소리는 육십대 중후반의 남자였다. 상당히 급박하면서도 난감해 하는 목소리였다.
-지금 전화 받는 사람이 이경희씨라구, 약사 양반 맞지우?
-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 내에 대해선 구태여 알 거 없는 거고, 우선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말이우다. 한 가지 묻겄소. 혹간에라도 이 남자를 아시고 있지 않나 해서리…….
이 남자라니? 대체 무슨 소린가?
-이 남자가 누군데요? 성함이 누군데요?
-글씨…… 성함은 안 밝혔으니께 잘 모르겠고…… 어떻게 지갑 속에 신원을 밝힐 만한 주민증도 없고 운전면허증조차 없으니……. 나 원 참! 내가 말이오, 그쪽에게 전화를 해봐야쓰것다 작정한 것은 그쪽 명함 한 장이 달랑 이 지갑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오. 아마도 이 남자가 지난 달에 그쪽을 만난 듯 싶소만. 보구려…… 명함 뒤에다가…… 2010년 11월 19일이라고 볼펜으로 적어 놓았구만. 고향에서, 라고 말이오.
2010년 11월 19일? 고향에서라구...? , 천천히 입안으로 되뇌며 기억을 더듬어보는 중년의 그녀는 살풋 두 눈을 즈려떴다. 촘촘해진 그녀 눈빛은 유리창 밖에서 가뭇하게 휘날리며 허공에서 내려오는 흰 눈발에 멎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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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어머니도.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신경 쓰세요. 어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이러시는 건지.
-엄만 그 얘긴 끝났잖아. 아빠! 잘해내셔야 해요.
-그래 그래. 그럴 거다. 그때까지 우리 승윤이도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어요. 아빠 파이팅!
-그래. 너도 힘내! 아빠 없다고 절대 기 죽지 말고. 알았지? 그리고 오빠랑 더 이상 싸우지 말고.
2010년 12월 4일, 일요일 오전 11시 10분.
한 가족이 인천공항 내 수속 게이트 앞에서 서로를 껴안으며 작별하고 있었다. 11시 55분 발 캐나다 토론토 행 비행기로 혼자 떠나는 사람은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딸 승윤이는 코를 훌쩍거리고 아내 윤현숙은 눈가에 번지는 물기를 손등으로 재빨리 지웠다.
-울긴 왜 우나. 내가 자리 잡는 대로 연락할 테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그때까지 난 당신만 믿겠소.
아내 손을 다시 한 번 그러잡은 그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스며 있었다.
-이제 난 됐으니 당신, 승윤이와 그만 돌아가지 그래.
-당신 들어가시는 거 보고요.
그렇긴 하지.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와 딸에게 성근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티켓을 확인하는 공항 여직원에게 여권과 티켓을 보여준 뒤 입구를 통과했다. 그는 자신을 보기 위해 발돋움을 하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내와 딸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황급히 돌아선 그는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의 맨 끝으로 걸어가 섰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그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느라 얼굴이 짓붉었고 화나 보였다. 줄을 따라 순서가 점차 앞으로 당겨지던 그는 몇 분이 지나자 그 줄에서 이탈해서 나와 혼자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다시 되걸어나왔다.
밖에 서 있었던 아내와 딸의 모습부터 확인하였다.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그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아내와 아들, 딸은 그가 내놓은 여권과 비행기티켓을 보고 많이 놀랐다.
-내, 내일 떠난다고?!
우리나라도 아닌 먼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게 어디 보통 일이냐, 어떻게 그 중요한 일을 가족과 상의 한마디 없이 당신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느냐, 그리고 이미 서너 달 전에 당신이 직장에서 명예퇴직 당했다면 그 사실을 왜 그동안 감쪽같이 숨겼느냐, 가족이라는 게 대체 뭐냐, 알 것은 서로 알아야하고 고민할 게 있으면 문제를 같이 나누는 게 가족 아니냐,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부동산 일을 하고 있다는 당신 대학선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당신이 그 사람 말만 믿고 먼 타지로 날아갈 만큼 과연 신뢰할 만한 사람이냐, 자리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냐, 대학선배라는 사람이 일을 마련해 준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우리나라가 아무리 경제 불황이라고 해도 당신 한 사람 일할 만한 직장이 없겠느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수는 있다. 그렇다면 가족이 힘을 모아 조그만 가게라도 낼 수 있지 않겠느냐,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한결 힘이 덜 들 텐데 어떻게 당신은 물설고 낯 선 외국 땅으로 혼자 날아가 해결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혼자 다 결정해 놓고 바로 직전인 전날 밤에 가족에게 얘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짓이지 않느냐…….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다 못해 화까지 내며 언성을 높였다.
아이들 또한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모양으로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한껏 내밀었다.
그런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설득을 시키느라 그는 자정 너머까지 진땀을 뺐었다. 가족들에게 사과도 하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나름 설명했다. 어느 정도 변명으로 들리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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