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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내 아버지, 그 남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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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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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7일(수) 15:56 128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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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아빠 일이니까 아빠가 알아서 하세요.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수범이는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딸은 말없이 제 방으로 건너가버렸다.
아내는 아이들이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며 남편을 원망하고 야속해했다.
이십 년이나 같이 살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무서워 보이기는 처음이다,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느냐, 내가 마누라이긴 한 거냐, 사람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허깨비로 만들어도 유분수지 어떻게 매일 밤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당신은 잔인하고 독한 사람이다, 부부가 뭔지도 모르는 몰인정한 사람이고 독선적인 사람이다……. 안방에 들어와서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은 아내는 섧디섧게 울었다. 그런 아내를 달래주다가 그는 결국 굵은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남편 눈물을 보고서야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죽했으면 혼자서 이런 결정까지 내렸을라고! 혼자서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몇 달째 끙끙 앓아왔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가엾고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남편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란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백 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남편을 믿고 하는 것을 지켜보자. 남편이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일이든지 한번 결정을 내리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닌가. 아내 윤현숙은 자신을 안고 토닥여주는 남편 품에서 그렇게 마음을 다져먹고 오늘 남편을 캐나다로 보내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캐나다 행 비행기를 타야 할 승객들이 투시검색대와 여권검사대를 통과해서 이십삼 번 탑승게이트 앞에 가 앉아 있을 시간까지도 여전히 첫 번째 입구 안쪽에서 혼자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탑승하시려면 빨리 수속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머뭇거리는 그를 이상하게 여긴 공항 남자직원이 그의 티켓을 확인하고 재촉을 했지만 그는 망설이는 중이었다. 정말 캐나다로 떠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되걸어나가 발매소로 가 티켓을 반환하고 인천공항 밖으로 걸어나갈 것인지……. 아내와 딸이 사라진 이상 그는 마악 우리나라에 도착한 사람처럼 다시 입구를 되걸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또한 강력했다.
-어, 이 아저씨! 아직까지 여기에 서계시네. 이봐요, 아저씨! 지금 이십삼 번 게이트까지 뛰어간다 해도 간신히 탈 수 있을까 말까 해요! 어떡하실래요? 탑승하시겠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제가 연락을 취해주고요!
직원은 오도 가도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의 앞에 무전기를 바쁘게 들어보이며 재촉했다.
-빨리 결정하세요!
그제야 그의 눈에 동력이 들어온 듯 눈빛이 명확해졌다.
가장의 마음
그의 이름은 김민호다.
주민번호 640812-1690×××. 2010년 초가을로 접어드는 지금 그의 나이는 마흔여덟이다.
태어난 곳은 경북의 조그만 면 단위 농촌. 외아들로 자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고향에서 공부하다가 대학은 서울 중위권 대학 상대를 들어갔다. 시골에선 일이 등을 놓치지 않았었다. 수재란 소리도 들었었지만 세칭 일류대엔 원서도 못 내봤다. 그가 대학교 이 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래부터 없는 집안이었지만 그 가세마저 급격하게 기울였다.
그는 어머니 나이 스물아홉에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낮 동안 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밤에는 면내 식당에서 자정 너머까지 그릇을 닦아 그의 학비를 마련했다.
그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외를 해서 학비를 모았다. 대학 졸업식장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학사모를 씌워주었다. 어머니는 장하다며 그를 얼싸안았다.
그의 첫 직장은 종이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영등포 소재 큰 제지회사였다. 관리부서였지만 반 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종업원들을 혹사시키는 체제의 감시가 주된 일이었던 그는 하는 일이 마뜩치 않아서였다.
그가 졸업할 당시엔 세계 경제의 침몰과 쟈스민 혁명, 일 퍼센트에게 빼앗긴 구십구퍼센트의 절규를 부르짖는 현재와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경영 악화를 빌미로 툭, 하면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요즘과는 달리 회사마다 어느 정도 고용에 여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한 달 뒤 그는 항생제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건실한 이미지가 부각된 중견 G제약회사 영업부에 입사했다. 그 후 그는 오직 G제약회사에서만 젊음을 바쳐 일했고 영업부에서만 흰머리칼이 반쯤 덮이는 중년이 되었다. 대리, 과장을 달았고 서울의 강북지구 영업을 총괄하는 부장으로 일한 지 칠 년…….
그러다가 올해 여름휴가를 끝으로 그는 권고사직을 당해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허탈했고 눈앞이 캄캄했다. 지난 십구 년 동안 그의 모든 정열과 능력을 다 쏟아부었던 회사였다.
돌이켜보면 정시 출퇴근이란 없었다. 최소한 삼십 분 전에 출근해 그날 해야 할 업무를 준비했다. 퇴근시간 기본은 밤 열 시, 열한 시였다. 자정을 넘겨 귀가한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기라성 같은 대기업 제약회사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G회사 같은 중견업체가 살아남으려면 조직원들이 그만큼 발로 더 뛰는 수밖엔 없었다. 서울에서 제약 관련 영업망을 가동 중인 기업만 해도 외국계회사와 굴지의 대기업들을 포함해 수백 개가 넘는다.
다른 업계 또한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제약업계는 특히 매일매일이 총성 없는 전쟁과 같다. 그중에서도 그가 속한 영업부서야말로 최전선 보병부대이다. 개인 영업매출과 팀별 매출은 매일매일 체크되고 비교 분석된다.
G회사 자산규모와 영업매출순위는 업계 십 위권. 타깃인 상대 주 경쟁회사들의 약진이나 분기별 성과정보가 입수되면 그야말로 위에선 불호령이 떨어진다.
-얘들은 이렇게까지 해내는데. 우리 실적은 뭐가 이따구야? 엉! 이딴 식으로 흐리멍텅하게 일 할 거면 모두들 때려치워. 당장 집어치우고 집에 가서 애나 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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