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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 칼럼 / 가을이 저무는 빈산을 오르다

2013년 12월 11일(수) 14:22 111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수필가, 고성군경제도시과장)

ⓒ 강원고성신문

얼마 전 빈산을 찾은 적이 있다. 가을이 저물고 있는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진부령 영상은 아득한 옛날처럼 안개가 자욱했고 낙엽 진 산숲엔 스산한 바람이 빈 가지를 훑고 갔다. 온몸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에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였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콘도미니엄 뒤편 마산봉의 어지러운 들머리를 찾아 산을 올랐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 한 탓도 있겠지만 모처럼 산행이라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올랐다.
마산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지리산과 백두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허리부분이다. 남녘에서 현재 갈 수 있는 마지막 23소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산객들은 누구나 한번쯤 미시령과 진부령을 잇는 구간을 종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시령과 진부령을 불행하게도 종주할 수 없다. 그 절반이 산객이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막아놓은 산길 ‘유감’

어느 날 갑자기 미시령에서 대간령 구간이 설악산국립공원으로 확대 지정되었고, 탐방을 할 수 없는 산길로 정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곳을 정상적으로 지나갈 수 없다. 산행 중 어쩌다 공원사무소 직원에게라도 들키는 날에는 영락없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의 욕심 때문에 적지 않은 벌칙을 감수하고도 새벽녘 또는 한밤중 몰래 그곳을 통과해 마산봉으로 넘어오는 산객들을 산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욕심을 탓해야 할지 그 용기를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무모함을 탓하기엔 동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수려한 산경과 광망한 바다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 그들은 칠흑 같은 밤 또는 몰래 그 위험한 산행을 계속하고 있다. 출입이 금지된 산길을 무모하게 오르는 자신들의 불법적인 산행에 대한 죄의식 보다 그저 억지로 막아놓은 산길이 그들에겐 불편하고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설악산국립공원 관리계획에 따르면 황철봉과 마등령구간, 남설악 점봉산 구간은 학술적으로 식생의 다양성과 희귀성 때문에 보존가치가 높다고 한다. 따라서 절대보전구역으로 인정돼 휴식년제 또는 탐방로 폐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옛 금강산의 자락인 미시령과 소파령 구간이 설악산국립공원에 편입된 것도 못마땅하지만 다니던 산길을 막아 놓은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평소 이곳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탓이고 야생동물의 생태이동로조차 막아놓은 격이 되고 말았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누구나 미시령에서 소파령 구간의 탐방로만큼은 적어도 허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여건상 어렵다면 일정기간을 정해 다니던 길은 그냥 다니도록 해야 한다. 국립공원 지정 전까지 자유롭게 다니던 길이기에 아무리 주변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 하는 범위내에서 제한적으로 탐방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공원사무소에 따르면 옛 미시령휴게소에 설악산생태연수원과 북부탐방안내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부탐방안내소가 설치되면 진부령방향으로 탐방로를 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 산길이 개방될지 알 수는 없다. 지금 미시령휴게소 주변까지 높은 울타리와 철문으로 막아 놓았다. 산길의 출입구를 막아 놓은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미시령 영상부근엔 마땅히 주차할 곳조차 없다. 동해바다를 조망하려면 고개에 차를 세워야 하지만 적당한 공간이 여의치 않다. 멀쩡히 지나다니던 산길을 어느 날 생태보존이라는 미명아래 아예 막아 놓은 것은 고사하고라도 이제는 그 좋은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긴 것이다. 가끔 이곳 미시령옛길을 지나던 한 사람으로서 늘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샛령’은 등산로 정비로 편한 산행

반면 예전 샛령이라고 불리던 지금의 소파령과 진부령 구간은 설악산 공원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입산금지기간이 아니면 원하는 대로 산을 오를 수 있다. 그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홀로 마산봉을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알프스스키장에서 진부령으로 잇는 구간은 6여년 전 정비했다. 스키장 슬로프 동쪽 갓길로 이어지는 마산봉 산길은 바닥이 파이고 나무뿌리가 허옇게 들어나 보기가 흉할 만큼 훼손상태가 심했지만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곳이 국유림보존지역이고 관리기관에서 정비하지 않으면 함부로 고칠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금년도 국유림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고맙게도 산길을 가지런히 정비했다. 흙이 패인 곳은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위험구간은 밧줄로 난간을 만들고 군데군데 의자와 이정표도 세우고 안내문도 게시했다. 물론 안내판의 잘못 표기된 글씨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고 구간마다 어느 정도 불편한 것도 충분히 감내할 일이다. 이런 친절한 안내판과 시설이 없는 경우에도 씩씩하게 산길을 다닌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안전하고 편한 산행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가을을 배웅하기 위해 폭신하게 깔린 전나무 낙엽의 산길을 올랐다. 산기슭에서 하늘거리는 억새꽃이 아침햇살에 눈부시다. 그 자태 역시 기분 좋은 늦가을풍경이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산길을 오르자 풋풋한 갈나무향기가 코끝에 전해 온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갈잎 낙엽과 와삭거리는 소리가 정겹고 떠나는 가을의 푸근한 향내가 더 좋다.
연둣빛 새싹으로 세상에 태어나 뙤약볕 아래 푸르른 신록의 청춘을 불사르고 붉은 빛으로 뜨겁게 살다가 초연히 흙으로 돌아가는 단풍잎, 그 흔적조차 느낌 좋은 기분으로 전해진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불같이 살다가 홀연히 떠나는 나뭇잎처럼 느낌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에겐 마음 편하고 정겨운 낙엽 같은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초겨울 바람이 차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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