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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 칼럼 / 통고지설(通高之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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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5일(화) 16:14 11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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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고성군 경제도시과장) | ⓒ 강원고성신문 | 최근 눈이 많이 내렸다. 입춘 절기에도 아랑곳없이 열흘 밤낮으로 눈이 내렸다. 기상관측 사상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야단들이다. 어르신들께선 늘 바다에서 올라오는 눈은 그 양이 많다고 했는데 정말 많은 눈이 내린 것이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하늘이 무너진 듯 쏟아지는 눈발은 치워도 금방 그 만큼 쌓여 보름동안 설국에 고스란히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눈이 그치면서 주민들과 군 장병, 공무원들의 신속하고 헌신적인 제설작업 덕분으로 이제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은 듯싶다. 그간 제설작업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고성과 통천엔 눈이 많이 내린다
우리 동네 백두대간의 고개는 모두가 험하다. 그래서 옛날부터 가끔 내리는 눈에도 길이 자주 막혔다. 겨울철 눈과 한파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오직 미시파령(彌矢破嶺)으로 약간의 통행만 있을 뿐이었다. 그 옛날 간성과 양양의 진공(進貢)은 모두 이곳을 지나서 고개를 넘게 되는데 말과 장정의 등에 걸머지거나 썰매로 끌어서 인제 남교역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짐을 내려 정리하고 모든 준비를 한 후에 주민과 군졸을 동원하여 눈을 밟으면서 짐을 호송하는 대역사가 이루어졌다.
우리 동네 고갯길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봄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큰 눈이 내릴 땐 대찬 바람에 날린 눈이 낮은 골짜기를 메워 몇 길씩 눈이 쌓였다. 수십 길 큰 나무가 눈 속에 묻혀 나무 끝만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쌓인 눈으로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고 한 겨울엔 눈이 얼어 사람들은 눈 위를 밟고 다녔다. 나무 끝만 보고 길을 찾아서 짐을 지거나 말을 끌고 고개를 넘곤 한 것이다. 자칫 실족이라도 하는 경우엔 눈 더미에 파묻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행상들이 무리하게 고갯길을 넘다가 강풍을 만나거나 심한 추위를 만나 동사(凍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 해 동안 겨울과 봄 사이에 죽는 사람이 수명이 되고 말이 죽는 것이 수십 마리라고도 했다.
선조27년(1594년) 봄, 진상하던 관리 십여 명이 눈사태로 압사 당했고, 인조9년(1631년) 겨울, 강릉에 배속되어 가던 군인 30명이 눈에 빠졌을 때 곧 호송인이 와서 그들을 구출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런 연유로 바람이 많은 간성과 양양지방엔 양간지풍(襄杆之風), 눈이 많이 내린다는 고성과 통천지방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란 말이 생겨 난 것이다.
토성지역에 열여덟 된 ‘애남(愛男)’이라는 청년이 살았다고 한다. 1632년 음력 12월 10일 청년 애남은 행상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고개를 넘다가 그만 눈사태를 만나 바위틈으로 떨어져 혼자 눈 속에 묻히게 됐다. 아버지는 황급히 아들을 찾았지만 눈사태로 사라진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시신 없는 아들 빈소를 만들고 장례 준비를 하는 한편, 마을 장정들을 모아 아들의 시신과 짐을 찾기 위해 사고지점에서 연일 눈을 헤치면서 아들 애남을 애타게 찾았다.
사고발생 아흐레 되던 날,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한 채 눈을 치우던 마을 장정들은 눈 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고된 구조작업에 지친 장정들이 잘못 들었거나 요망스런 귀신이 아닌가하고 깜짝 놀라 물러나서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장정 한사람이 용감하게 나서서 말했다. “넌 누구냐?”
눈 속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 애남이예요.”
“네가 애남이라면 어떤 표식이 있을 것 아니냐?” 그랬더니 청년은 머리에 쓰고 있던 갓을 벗어 던졌다. 갓을 확인한 사람들은 귀신이 아니라 바로 청년 애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서둘러 눈을 헤치고 극적으로 애남을 끌어냄으로써 구사일생으로 살아 날 수 있었다. 눈 속에 묻힌 지 무려 아흐레 동안 먹지도 않고 죽지 않은 일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토성면 ‘애남(愛男)’이 설화
애남 청년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눈사태로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때 다행히 말안장이 바위에 걸려 그 위로 눈이 쌓이고 바위 밑은 저절로 굴이 생겼다. 홀로 묻힌 청년 애남은 배고프면 눈(雪)을 먹고, 또 소가죽 말안장을 씹으면서 며칠 동안 죽지 않고 눈 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예부터 눈이 많이 내렸던 우리 고장의 옛날 얘기다. 한겨울 장설이 예삿일이었던 우리 동네 일화의 한 편이다. 작은 눈에도 호들갑을 떠는 다른 지방에 비해 우리 동네에선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어지간한 눈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 고장 사람들을 대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년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많은 눈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가 없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눈이 내리는 동안 다소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눈부신 햇살에 맥없이 녹아내리는 눈처럼 금방 우리 기억에서 잊혀 질 것이다. 흐르는 눈물은 머잖아 청아한 봄볕으로 우리 곁에 찾아 올 것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풍년만 든다면 불편한 눈길쯤은 얼마든지 이겨내도 좋을 일이다. 그 기운으로 지난해 대풍처럼 모두를 기쁘게 하는 넉넉한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 금강산에선 모처럼 이산가족 상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저마다 아픈 사연으로 통한과 재회의 기쁨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제 막혔던 금강산관광 길이 다시 열리고, 이산가족 재회의 기쁨처럼 올 한해 기분 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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