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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키우는 수필 / 간성은 제비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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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9일(화) 09:33 14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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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종일(공연·전시 기획자) | ⓒ 강원고성신문 | 어른이 되어 유년시절의 향수가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따금씩 기억을 스쳐 지나가곤합니다. 아련한 그리움이라할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그 시절엔 지금의 행정단위로 보면 면 정도의 풍경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지요. 지금은 면에도 큰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요. 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는 소설은 제목에서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어릴 때 나와 놀던 곤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땅강아지, 물방게, 올챙이, 메뚜기, 잠자리, 여치, 매미 등등. 그 중에서도 지금은 어디서고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땅강아지는 무척 그립습니다. 땅강아지를 엄지와 집게로 두 앞다리를 누르면 앞다리를 양옆으로 미는 힘은 아주 대단하여 종종 땅강아지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심드렁해지면 땅강아지를 그대로 땅에다 놓고 갔었지요. 지금 서울은 흙을 제대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콘크리트, 아스팔트로 땅을 다 도배질을 해 놓았지요. 흙이 노출이라도 되어있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박구리가 서울 보라매 공원에 몇 년전부터 등장했습니다. 그 몇 년전부터는 제비가 보이질 않았죠. 직박구리는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가는, 그 전에 보아왔던 새들과는 다른 비행궤적이 신기했었죠. 기억을 더듬어가니 내가 직박구리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초 전남 벌교에 갔을 때입니다. 그 때 아주 이쁜 꽃이 핀 나무가 있어 그 나무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였고, 바로 그 때 그 나무에서 새 한 마리가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 그 새가 날아가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었죠. 그 새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새가 그러하듯이 나무에 따라 사는 곳이 결정이 되죠. 나무는 집이자 먹이를 얻는 곳이죠. 직박구리 또한 도시에 숲이 조성되고 아파트단지나 가로수에 과일나무가 많이 자라게 되면서 서식지가 점점 북상하여 서울에서도 흔한 새가 되었고, 사람과 늘 같이 살고 처마 밑에 집을 지어 살면서, 곤충을 먹이로 삼던 제비는 서울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서울에서 제비를 보았냐구요. 한강에서 보았다는 것이 유일한 답이었지요.
말이 나온김에 직박구리라는 새 이름을 알았을 때 새이름이 뭐이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딱딱 쪼니까 그렇다치고 뭘 직박거리지. 인터넷 검색을 하니까 지빠귀 이름이 많이 나왔어요. 지금도 직박구리가 지빠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새 이름도 모르는 새 들이 서울에 들어올 무렵에 포물선 비행을 하던 새들이 내는 소리가 그날은 이렇게 들렸어요. 비슷 비슷으로. 사는 곳도 비슷해 / 생각도 비슷해 / 너와 나는 비슷해 / 비슷비슷 비이슷.
그 많던 제비는 어디로 다 갔을까. 그 작은 몸짓으로 날렵한 비행술을 자랑하던 제비는 어디로 갔을까.
제비를 가까이서 자주 본 때는 80년대 대학생시절이었지요. 난곡동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때였는데, 이 때는 독재정치의 파국으로 학교는 휴교상태였었죠.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진 나는 제비를 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죠. 저녁에 방으로 들어온 제비를 방밖으로 내몰던 일이 있죠. 이리저리 내쫓다 실패하고 결국은 방불을 끄고 밖의 불을 켜서 밖으로 내몰았죠. 새들은 어두워지면 날지를 못한다는 것을 안 날입니다. 어느 날은 자기 집을 찾지 못한 제비가 전깃줄 끝에 앉아서 눈치보며 밤을 지샌 일이 있었죠. 집주인이 제비를 몇 번 내쫓다가 내버려두었죠. 또는 날지 못하는 새끼를 머리를 쪼아서 날개 만든 일도 있었고, 그리고 제비새끼가 커지면서 먹이를 많이 먹고 먼저 큰 새끼가 둥지에 매달려 나는 연습을 하는 모습들. 그래서 한 마리 한 마리씩 차례대로 전깃줄에 앉아서 부모제비를 기다리며 먹이를 받아먹던 모습. 바닥으로 떨어진 새끼 때문에 계속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날며 애타하던 부모제비. 날마다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뜨거운 여름 한낮 제비의 소리를 들으며 졸던 일.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대전 부근 시골을 지날 때인가요. 10월초 무렵 수많은 제비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가던 길이었는데 논에 서있는 전봇대에 달린 전기줄에 빈 곳없이 앉아있던 모습. 시야가 미치는 사방으로 제비가 여린 안개 속에 앉아있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30년전의 아스라한 기억입니다.
작년(2014) 4월 중순부터 두 달간 강원도 고성군 간성에 머물 일이 생겼습니다. 고성하면 사람들은 경상도 고성과 공룡을 먼저 생각하죠. 일찍이 산행을 좋아하던 저는 설악산에 매료되어 겨울 설악산에서 가을 단풍 든 설악산까지 천불동계곡, 공룡능선, 용아장성, 백담사계곡, 오색코스를 다니며 설악산에 푹 빠졌었죠. 그 때까지도 고성은 잘 몰랐지요. 속초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으니까요. 그러다가 백두대간이란 말을 알게 되고 진부령이 남쪽 백두대간의 최북단인 것을 알게 되면서, 건봉사, 화진포, 화암사를 가게 되고 고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는 거진항, 대진항이라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었죠.
고성군의 간성읍은 걸어서 십분이면 번화가의 이쪽에서 저쪽을 갑니다. 간성읍 거리를 처음 산책하던 날 낡은 제비집을 만납니다. 작년에 왔던 제비들이 사용했던 집들이었죠. 올해 새로 날아온 제비들이 수리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 집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처마도 없는 곳에 제비집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상점에. 제비집은 한집 건너 있을 정도로 조금이라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집짓기 편하게 나무판을 달아주었고, 어떤 집은 바로 벽에 붙여 지었고, 어떤 집은 셔터문의 바닥에 닿는 부분이 조금 넓은 부분을 이용해 지었는데 그 셔터문이 위로 올라간 상태라 그 셔터문은 사용할 수가 없고, 그중에서 제일 압권은 바로 이것이라. 그것이 뭘까 그 것이 뭘까 그것은 바로 천막에다가 지은 것이제. 요새는 손잡이를 돌리면 천막이 펴졌다 접혀졌다하는데 그 천막을 지탱하는 팔 모양의 쇠구조물이 있다. 바로 거기다 지었제. 두 팔을 손등을 하늘로 향하고 앞으로 나란히 한다음 손을 내 앞으로 당기면 천막이 접혀지고 손을 쭉 내밀면 천막이 펴지는데 팔꿈치 위에다 집을 지으면 그 천막은 어떻게 되겠소 바로 그말이여. 이리하여 천막의 팔꿈치에 상당하는 곳에 집을 지은 가게는 그 천막은 꼼짝없이 숨도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었따’
간성읍 거리에 지어진 제비집을 설명하다 보니 어디서 판소리의 사설 한가락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성읍 거리는 제비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제비는 새끼를 기르는 내내 새끼가 둥지 바로 밑으로 똥을 싸는데 바로 가게 앞의 한 곳은 제비새끼 똥이 수북하게 쌓이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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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필자가 간성에 머물면서 직접 찍은 제비사진. | ⓒ 강원고성신문 | |
8월초에 다시 간성을 갔었습니다. 제비집을 찍으며 산책하던 나에게 ‘나들가게’를 운영하는 박은영님이 천막 팔꿈치에 지은 제비집을 두 개나 보여주는데 한집은 벌써 새끼를 키워 나갔고 다른 한집은 새끼를 키우고 있다고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느날 남편이 제비집을 보며 ‘가게 앞에 이렇게 똥사면 안되는데’하였는데 그 이후로 부모제비는 옆에 전깃줄에서 잠을 자고 둥지아래 바닥에서 똥을 본 일이 없다고 얘기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죠. 어미제비가 새끼똥을 물고 나가는 것을 그 날 보았습니다.
사람과 새가 공존하는 곳 간성은 바로 우리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간성 사람들은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제비를 길조라 여겨서 조류독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무서운 세상에서도 이렇게 제비와 평화로이 지내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입니다. 강원도가 분단되어 있고 고성군도 북고성과 남고성으로 분단되어 있습니다. 남고성의 간성사람이 이렇듯 제비를 사랑하는 마음에 제비는 분명코 박씨를 물고 오리라 상상합니다. 그 박을 남고성 사람과 북고성 사람이 설렁설렁 타면 한반도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계간 ‘참나산행’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입니다. 필자 박종일씨는 1959년 서울 냉천동 출신으로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전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백두대간대동제 기획과 노란아리랑 세월호 추모 전통공연 기획 등 공연·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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