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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영역서 출발, 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80> 조선시대 간성의 읍치경관 연구②

2015년 06월 10일(수) 10:35 147호 [강원고성신문]

 

↑↑ <동국여지지>에 표시된 간성군.

ⓒ 강원고성신문


Ⅱ. 간성지역의 개관

1. 역사적 배경

간성의 행정구역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간단하게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수성지』 건치연혁에 의하면, 원래 고구려의 수성군( 城郡)이다. 별호로 가라홀(加羅忽)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에서는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강등하여 현(縣)으로 하고 영(令)을 두었다. 후에 승격하여 군으로 하고 고성군(高城郡)을 겸임하게 하였다.
고려 공양왕(恭讓王) 원년에 다시 갈라서 둘(간성과 고성)로 하였으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하였다. 만력(萬曆) 갑진 년간1에 본 고을이 북관(北關)에 가까워 군수가 조방장(助防將)을 겸하게 하고 당상무신(堂上武臣)을 임명하였다. 1623년(癸亥)에 방장을 폐지하고 무신을 다시 임명하지 않았다. 1629년(己巳)에 고을에서 역노(逆奴)가 주인을 살해하는 변고가 일어나 군의 이름을 현(縣)으로 강등하고 10년 뒤에 다시 군수로 승격하였다.

『水城志(1633년)』
建置沿革本高句麗 城郡一云加羅忽新羅改稱守城郡高麗改今名降爲縣置令後陞爲郡兼管高城郡恭讓王元年改柝爲二本朝因之萬曆甲辰年間以本郡近北關以郡守兼助防將選除堂上武臣天啓癸亥罷助防將不復除武臣崇禎己巳郡有逆奴殺主之變貶名爲縣十年後還陞郡守

『고성군지(1996)』에 의하면, 고종 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한 부재 실시로 강릉부에 예속되었다가 합방 후인 1914년 고성군을 간성군(杆城郡)에 병합하여 9개 面15)을 관할하였다. 1919년 간성군을 폐지하고, 죽왕면(竹旺面)과 토성면(土城面) 등 2개 面16)을 양양군(襄陽郡)에 넘기고 고성군으로 개칭하였다. 8.15해방 후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1954년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따라 대한민국에 편입되었다.
1963년 양양군에 속했던 죽왕면, 토성면이 고성군에 다시 편입되어 간성면, 거진면, 수동면, 현내면 등 6면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973년 토성면의 사진리(沙津里)와 장천리(章川里)가 속초시에 편입되어 장사동(章沙洞)이 되었다. 1973년 거진면이 邑으로 승격되고, 1979년 간성면이 邑으로 승격되어 2개邑 4개面이 행정구역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리는 모두 87개리이며 행정리는 127개 마을이다. 인구는 2012년 현재 3만 6백15명이다.

다음은 조선시대 간성군에 속한 ‘현(縣)’에 관련한 『수성지』문헌기록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속현(屬縣)

고을(간성군) 북쪽 35리에 있다. 원래 고구려의 승산현(僧山縣)이다. 소물다(所勿多)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동산(童山)으로 개칭하고 수성군(守城郡)의 영현을 삼았으며, 고려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그대로 고을에 속하게 하였다. 봉산(鳳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水城志(1633년)』
屬縣烈山在郡北三十五里本高句麗僧山縣一云所勿多達新羅景德王時改稱童山爲守城郡領縣高麗改今名仍屬郡或稱鳳山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삼국시대에 간성군은 고성지역과 나뉘어져 고구려의 영역에서 출발하였으며,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국경지대 변방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공존하는 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6세기 이후 간성지역은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 경덕왕(757) 때 전국의 郡·縣 명칭을 한식으로 개명할 때에 명주(溟州)로 편제되었고 간성 지방을 통할하던 지명은 수성군(守城郡)으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에 수성군에는 동산현(童山縣) 속현이 있었다. 고려에 와서는 성종 16년(995) 때에 지방 행정구역을 10도로 분할하게 되자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다. 현종 9년(1018) 5도양계(五道兩界) 행정편제의 개편에 따라 수성군은 杆城縣으로 개칭되어 東界에 소속되었다. 동계는 고려 북동쪽 국경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한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영동지방에 해당하는 영역이었다.
이후 간성현이 간성군으로 승격되면서 고성현을 관할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간성과 고성의 통합 편제는 행정구역상의 변화라기보다는 간성군의 지방관이 고성까지 겸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간성군으로 통합 편제되었던 간성과 고성은 공양왕 원년(1389)에 다시 분리 편제되었다. 간성군의 별칭으로 수성(水城)이 쓰였음을 확인된다.
조선시대 간성지방은 줄곧 고성과 분리되어 편제되었으며, 세종 때 고성현은 고성군으로 승격되었다. 간성군은 그대로 郡으로 유지되었으며, 1629년(인조 7)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후에 1638년(인조 16)에 다시 간성군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상징적인 조치 외에는 대체로 고성군과 간성군이 큰 변화를 겪지 않고 군으로 유지하면서 삼국시대 이래로 국가체제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편성되면서 탄생하였고, 고구려·통일신라·고려·조선 시대의 정치행정 체제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읍호와 읍격 및 관할 구역도 함께 변화되었다.

2) 그 밖에 각종 「문헌」에서 색다르게 표현한 간성군의 郡지명과 縣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임춘(林椿)의 「동행기(東行記)」-한성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간성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권153-장산(章山) ㉣ 유운룡(柳雲龍),『겸암집권5(謙菴集卷之五)』, 雜著.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수성군(邃城郡) ㉤ 이덕무(李德懋)청장관전서 제55권-겁성(迲城)37) ㉥ 이긍익(李肯翊),『연려실기술별집권16(燃藜室記述別集卷之十六)』, 「지리전고(地理 典故)」-변성군(邊城郡) 또는 가라홀(加邏忽)38) ㉦ 이식(李植), 1633, 『수성지』「속현」-소물다달(所勿多達)

2. 위치 및 자연환경

행정구역상의 고성군은 경·위도상으로 보면 동경 128°35′33″로부터 128°35′까지이며, 북위 38°36′51″인 현내면 송도진리에서 북위 38°11′30″인 토성면 용촌리 까지이다. 강원도 동해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백두대간의 세 줄기인 해안산맥, 중앙산맥, 내국산맥의 하나인 해안산맥을 끼고 있어서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면서 동해로 이어진다. 지형은 西高東底형 또는 東急西緩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은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동서 교통의 큰 장애가 되기도 하는데, 500km에 달하는 백두대간 줄기에 고성군이 접한 산은 금강산(1,638m), 향로봉(1,293m)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진부령(529m)과 미시령(825,7m)은 예부터 동서 교통의 유일한 요충역할을 해왔다.
고성군을 통과하는 해안선은 매우 단조롭고 직선적이어서 천혜의 항만환경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해안선을 따라서는 海蝕崖와 沙濱, 砂丘가 교대로 나타내며 사구의 발달로 인하여 송림이 울창하고 융기해안의 특징인 사호가 발달되어 화진포를 비롯한 송지호, 천진호, 광포호 등의 석호와 저도, 초도, 죽도, 무로도 무인도가 자리 잡고 있어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백두대간의 척추에서 발원하는 사천, 명파천, 자산천, 북천, 남천, 오호천, 문암천, 청간천, 천진천, 용촌천 등이 있어 하천을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해안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어 짜임새 있는 농촌과 어촌의 취락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위의 내용을 뒷받침하듯이 『수성지(水城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은 전부 고개인데, 여러 산들을 구별할 수 있는 고개의 등허리에서 벗어나 별도로 솟아오른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군의 하천은 산에서 내려오면 폭포와 시내가 되고, 골짜기에 들어가면 시냇물이 되니 이따금 감상할 만하다. 하천이 들에 이르러서 평평한 개울이 되는데, 이 물을 터서 바다로 들어가면 절벽들이 평평하고 곧아서 물이 소용돌이치는 일이 없게 되니 그 기세가 볼만하다. 혹은 골짜기로 흘러들어 고여서 느리게 흘러가면 동북풍이 불어 바닷물이 일렁이고 모래와 돌이 그 입구를 막게 되면 물이 고여서 호수와 담수가 되는데, 호수물이 매우 맑아서 모래와 자갈까지 투명하게 보인다. 두 벼랑이 우뚝 솟고 굴곡을 이루어 기이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 위로는 고개이고 아래는 바다여서 사방이 시원스럽게 보여 영동에서 이곳이 가장 기이한 형승인데 간성 경내의 호수가 남북에서 가장 많다.”

이러한 지형에는 북천과 남천 사이에 간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고성지역은 내륙의 산간지역으로 산지의 면적이 넓고, 평야의 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고성지역의 시가지 배치와 그 형태, 그리고 도로를 비롯한 주요 도로망은 이러한 지형의 지질 구조적 특징에 따라 형성되고 발달해 왔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고성지방은 기후구 가운데서도 비가 많고 바람이 많은 중부동안형에 속한다. 간성은 바람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으로 항간에 ‘襄杆之風 通高之雪’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봄이 짧고 가을이 길며,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점이 고성 지방을 비롯한 영동지방의 기후 특성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상의 고성군의 위치는 북쪽으로는 금강산을 사이에 두고 통천군과 경계로 하고 있으나 휴전선에 의해 가로 막혀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안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인제군과 접경을 이루며, 남쪽으로는 속초시 장사동와 인접해 있다.

ⓒ 강원고성신문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
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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