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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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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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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7일(화) 13:59 14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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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
-야하, 정말 반갑다. 어릴 때 얼굴이 아직 남아 있어.
다음날 오후 일곱 시를 넘긴 시각. 그는 친구가 일러준 대로 화양3동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커다란 측백나무가 서있는 동사무소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준식이가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상의를 깨끗한 위생복으로 입고 있어서 동사무소와 관계된 방역하는 일을 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가게라며 동사무소 앞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주택가 쪽에 위치한 ‘우리 밀로 만든 케이크 전문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맛깔스럽게 진열된 갖가지 빵들과 케이크. 매장 크기는 이십여 평 정도, 작은 듯 했지만 활기가 농밀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만나셨네요!’ 하고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인사를 해서 그도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네 가게냐?
-그래. 어떠냐, 분위기가?
-좋네. 깔끔하고 따스해 보이고…… 빵 냄새도 아주 좋고.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내가 만든 빵맛부터 볼래? 소정 씨, 빵 몇 개 접시에 담아줄래? 가만…… 뭐가 좋을까. 그래, 베이글 하고 볼리요, 그리고 치아바타도 조금 썰어오고. 원두커피 두 잔도.
-네가 직접 이걸 다 만들었다고?
-그럼.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준식의 표정은 생동감에 차 있었다. 그는 근처 근사한 숯불고기집에 저녁을 예약해 두었으니 조금씩만 먹어보라며 빵을 권했다. 먼저 씹어본 달팽이처럼 생긴 빵은 담백하고도 부드러웠다. 씹을수록 뒷맛이 구수했다.
그 사이 직장에서 퇴근하는 차림새인 젊은 여자 둘이 식빵과 쿠키와 치아바타라 불리는 긴 빵을 사 갔다. 또 다시 유리문이 열리고 몇 권의 책을 가슴에 안아든 젊은 여대생인 듯한 여자는 길쭉한 빵 한 종류만 다섯 개를 사갔다.
-이게 저거거든. 한번 먹어봐라. 우리 빵집에서 제일 잘 팔리는 효자제품이다.
치아바타, 라는 빵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슬리퍼(slipper)’로 불린다는 그것은 명칭답게 아주 두껍고 딱딱한 껍질을 가진 시골스런 빵이었다.
-어때? 씹을수록 되게 고소해지지? 처음엔 무슨 돌덩이를 씹는 것 같아 적응이 잘 안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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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맛에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은 자리를 옮겨 숯불구이전문점 이 층에 자리를 잡았다. 준식은 종업원에게 꽃등심을 주문한 뒤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근데 이 녀석이 왜 안 오지? 민호야, 너도 순태 알지?
-순태……? 윤순태? 학교 앞에서 문방구점 하던?
-그래. 맞아. 걔가 오늘 점심나절에 우리 가게에 들렀더라. 그래서 너랑 저녁에 만나 밥 먹기로 했다고, 생각 있으면 여기로 시간 맞춰 나오라고 했는데. 어때, 너도 괜찮지?
-물론이야. 근데 한 오 년 전인가…… 초등학교 동창회 때 순태 걜 봤었거든. 걔 부산 쪽에서 다리를 전문으로 놓는 토목관련 일을 한다고 내가 들었던 것 같은데. 걔 요즘 서울까지 진출해 있나?
-으응, 자세히는 모르겠고 아무튼 서울 온 지 일 년은 넘었다고 그러더라. 나도 몇 달 전에 우연히 만났었거든. 한 달에 두어 번씩은 우리 가게에 들러.
숯불이 놓였다. 여종업원이 고기를 석판에 올려놓느라 그들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준식이가 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도 친구 잔에 술을 따라준 뒤 서로의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건배했다. 친구는 잔을 단숨에 비웠지만 그는 조금 베어마시고 내려놓았다.
-왜? 첫 잔인데 쭈욱 들이키지?
-아냐. 사실 내가 요즘 약을 먹는 중이거든. 내가 알아서 천천히 마실게.
고기가 구워지자 두 사람은 양념장을 찍은 고기를 상추와 깻잎에 싸서 먹었다. 얇게 썬 마늘도 석판에 올려 구웠다. 값비싼 고기답게 육질이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했다.
-많이 먹어라.
-그래, 고맙다. 너도 많이 먹어라.
그는 순태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려는 찰나 고기를 뒤집던 준식이가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민호야!
-응?
-내가 지금부터 편하게 얘기할 테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
-나, 창호한테서 얘기 들었다. 네가 실직했다는 얘기.
-으응. 난 또 뭐라고. 그동안 내가 서울 지역 동창생들 대여섯 명이나 만났으니까 그런 얘기가 도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 하지만 실직이야 내가 너보다 훨씬 먼저 했다. 내가 보험회사 안산지점장 하다가 그만둔 지 벌써 사 년이 됐으니까. 핫하하하. 그러고 보니 내가 딴 건 몰라도 너한테는 실직 선배네.
-실직 선배라…… 그런 말도 있었나? 재밌군.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네 맘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이 가게 차리기 전까지 이 년 가까운 그 기간 동안 무지 막막하고 답답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네 얘기를 전해들은 뒤로 자꾸만 네 생각이 나더라.
-그래……?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잔을 반쯤 비우고 내려놓았다. 잔을 비우라고 했지만 그는 천천히 조절해 마시겠다고 했다. 술을 해독하는 간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진 이상 그는 예의상 딱 한 잔만 마실 작정이었다.
준식은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았다. 용건이 있어서, 네게 제안할 게 있어서 일부러 가게까지 찾아오게 했다는 것이다.
-민호 네가 아직 마땅히 할 일을 못 찾았다면, 네가 빵 만드는 일에 흥미가 있다면 좋은 조건으로 가게를 통째로 넘겨줄 용의가 있다. 절대 무슨 저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빵집 근처엔 대기업 베이커리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구역의 규모 자체가 맞질 않다. 그건 네가 알아보면 알 것이다. 물론 아는 사람한테, 친구한테 당하는 게 세상 사기의 절반이라고들 하지만. 우선 그런 건 절대 아니란 것부터 말해 두고 싶다. 난 지난 이 년 동안 빵집이 자리 잡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화양3동은 주로 회사원과 독신자들 연립아파트가 밀집된 주거지역이다. 그래서 가장 피크타임이 퇴근시간부터 자정 전후까지다. 밥을 해먹기 귀찮거나 피곤에 지친 사람들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파운드케이크와 치아바타로 아침과 저녁을 해결한다. 한 달에 순수익이 최소 육백에서 팔백은 고정적으로 나온다. 그러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매상을 올리는 가게를 내가 왜 그만두려 하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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