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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9>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5년 11월 25일(수) 11:33 155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도시속 유령

밤 열 시가 가까운 시각. 포장마차였다. 준식이는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 또한 따라 일어섰지만 순태가 너랑 딱 한 병만 더 하자, 지금 헤어지면 우리가 언제 또 만날지도 모르는데, 하며 두 손으로 부여잡는 통에 다시 주저앉았다.
그렇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긴 힘들 것이다. 순태 쪽이 아닌 그 자신이…….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채 소주잔을 거머쥔 순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상체가 앞뒤로 흔들거렸다. 만취 직전이었다. 순태가 담배를 꼬나물고 라이터를 연신 켜대도 실패하자 그가 대신 불을 붙여 주었다. 순태는 후우욱, 하고 깊은 신음과도 같은 담배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얼굴과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옷 위로 드러난 피부는 검게 그을었고 건조했다. 고개를 모로 틀 때마다 드러나는 목과 팔목은 기름기가 빠져나가 파삭파삭한 수수깡 같았다.
오 년 전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회식자리에서 본 뒤 순태와 그는 서로를 처음 마주하고 있었다. 순태는 초점 없는 눈을 끔벅이며 네온 불빛으로 출렁거리는 거리와 보도에 넘쳐나는 원색의 인파를 홀린 듯이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름답지……않냐?
-응?
-사람들 봐라. 사는 게…… 되게 즐겁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느냐고?
그런가? 외견상 밤거리는 언제나 그래 보였다. 아직 세상을 모를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남녀들이 행인의 태반인 거리가 트램펄린을 깔아놓은 것처럼 활기차 보였다.
-글쎄다…….
말이 궁해진 그도 담배를 피워물었다.
막상 둘이서만 남게 되자 그는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도 그렇거니와 친구 사는 것도 참으로 안쓰럽고 딱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같이 보냈던 순태는 넉살이 좋고 공부도 제법 잘했었다. 대학은 부산 쪽으로 진학한 뒤 차츰 못 보게 되고 말았지만.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점 아들이라서 신상품으로 나오는 학용품이 언제나 순태 책가방을 채웠었다. 배짱도 있고 의리까지 있어서 그가 기억하는 한 순태 주변엔 언제나 아이들이 들끓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사십대 인생의 허리를 넘는 지대에서 너나없이 삶이 이 지경까지 몰리게 됐을까?
사람이 한 세상을 무난하게 살아내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이었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오래된 따스한 기억들조차 현실을 위로할 힘이 되지 못할 만큼 불 꺼진 순태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는 점점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려웠다.
잠은 어디서 자냐? 밥은 제때 먹고 다니는 거냐? 가족들은 어떻게 됐냐? 재기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거냐?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내일 아침 날씨 얘기 따위를 할 수도 없잖은가. 설사 묻는다고 해도 듣게 되는 건 괴롭고도 참담한 얘기뿐일 것이다.
부질없는 일이다. 몸속에 쉼 없이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며 초침이 가고 있는데 지금 누가 누굴 염려하고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냐?
-아냐…… 괜찮다. 나, 훗후후…….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지금도 주량 하나는 웬만하니까 염려하지 마라. 그냥…… 나는 너랑 단둘이 이렇게 잠시 앉아 있고 싶었다. 고약할 만한 주사는 없으니까 염려하지도 말고. 근데 네가 약을 먹는다고 해서 술을 더 이상은 못 마신다고 하니…… 그게 좀 서운하긴 하다.
어느 새 잔을 싸악 비운 순태가 빈 잔을 앞으로 쑥 내밀자 그는 묵묵히 술을 따랐다.
-참! 준식이가 나에 대해 뭐라 안 하던?
-으응…… 뭐 조금은.
-그랬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설령 걔가 말 안 했다 해도 지금 내 꼬락서니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해줄 테니까.
깃이며 소매가 눈에 띌 만큼 때 묻은 잠바를 걸친 순태는 침통한 얼굴로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그는 빈 잔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소주잔을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보았다.
-민호야.
-응?
-나…… 너무너무 힘들다.
-…… 그래.
-나…….
그는 고개를 깊이 떨궜다.
-하루하루가…… 되게 고통스럽다.
-그래…….
-근데…… 그런데 말야. 나 있잖아. 이따금씩…… 지금처럼 불쑥불쑥 미치도록 화가 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원망스럽다. 왜 그런지 아냐?
-……!
순태는 가슴을 텅, 텅 소리 나게 주먹으로 두드렸다.
-답답해. 답답해서 돌아버리겠다.
오랜만에 자기 얘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을 만나서일까. 순태는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비벼 끈 뒤 마른 헛기침도 연거푸 했다. 꺼칠한 두 손바닥으로 세수하듯 얼굴도 쓱쓱 부볐다.
한동안 단단히 빗장 질러뒀던 가슴을 그는 열어젖히려 하고 있었다.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얘기,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얘기, 우울하기 그지없을 뿐인 얘기들을.
-내가 쫄딱 망해서? 그래. 평생 못 갚을 빚 때문에? 죽을 때까지 숨어 살아야 할 처지라서? 그래. 물론 그렇겠지. 나? 모든 걸 한 방에 날려먹었어. 만루 홈런도 그런 만루 홈런이 없을 거다. 결국 내 탓이고…… 자업자득이야. 나, 잘 알고 있거든. 그래서 나, 낼 길거리에서 객사한다 해도 아무 상관없어. 정말이야 괜찮아. 하지만…… 날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건…… 내 가족 때문이다. 내 괴로움과 고통의 대부분은 처자식으로부터 온다. 기어오고 날아오고 스며온다. 가족 얼굴이 떠오르면…… 굵은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내 맘이 펄떡펄떡 미쳐 날뛰는 거야. 내 한 사람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모두 다 어느 날 갑자기 차디찬 길거리에 나앉았고…… 검은 쓰레기봉지처럼 뿔뿔이 흩어져 날려갔다는 거……. 큰 녀석은 시골 내 동생 집에 얹혀 있고 막내는 부산에서 제 엄마랑 지하 단칸방에서 같이 지내긴 하는데……. 아내가 매일 자정 너머까지 수백 개의 삼겹살집 쇠판을 철수세미로 벅벅 닦아 버는 돈……. 한숨과 눈물과 땀이 가득 묻은 그 돈, 팔십만 원 중 육십만 원을 빚쟁이가 월급 때마다 뭉텅 잘라 가지고 간다. 살점은 가지고 가고 비계만 먹으라고 던져주는 꼴이지. 그래서 아내와 막내는 이십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아니, 그건 사는 게 아냐. 죽지 못해 버티는 거지. 휴우, 그게 모두 다 나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사람인 이상 환장 안 하겠냐……. 아내가 그렇게 떼이는 돈이라도 막아보고자 내 딴엔 이혼도 해봤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에겐 전혀 안 통해. 위장이혼이란 거지. 남의 돈 떼먹었으면 남편이든 전남편이든 상관없이 대신 네가 평생이 걸려서라도 갚아야 한대. 그러기 전엔 법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너마저 도망치면 모든 걸 파악해둔 애들을 가만 안 두겠다고 아내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협박질까지 일삼는다는 거야…….
순태는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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