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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내 아버지, 그 남자 <20>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5년 11월 25일(수) 11:35 158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나…… 너무너무 후회한다. 내가 그토록 멍청한 놈이란 걸 정말 몰랐다는 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었던 거…… 똥개처럼 그놈들이 던져놓은 독이 든 고깃덩어리를 이게 웬 떡인가 싶어 꼬리 흔들며 그냥 덥석 물어 삼켰다는 거……. 그 모든 게 천추의 한이 된다. 세상일엔 공짜가 없고 쉬운 일도 없다는 걸 충분히 알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땐 대체 내 눈에 뭐가 씌었었는지…… 조급증이겠지. 내 성질머리 급하고 불같은 거 말야. 퇴직하고 난 뒤 허비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거든.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것 같고, 생활비며 애들 학원비며 이렇게 매달 돈만 쑥쑥 까먹다가 금방 거덜 날 것 같았고…….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적게 벌어놓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야. 그때 수십 번을 재고 또 재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난 뒤 도장을 찍더라도 찍었어야 했어. 근데 난 두어 번 놈들이 보여주는 현장을 확인하곤 붉은 인주에 손이 갔었지. 그땔 생각하면 난 내 목을 뒤에 쳐내더라도 손모가지부터 젤 먼저 잘라내고 싶다. 예전 한 직장에 십오 년을 같이 일했던 사람이 먼저 날 끌어 들였어. 무지 사람 좋게 본 선배가 같이 사업하자고 연락해 와서……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들이민 청사진이 진짜 그럴싸하게 보이더라고. 휴우, 하긴 뭐 세 명이서 작당해 한 사람 바보천치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웠을라고. 어쨌든 당하면 머저리인 거야. 서류 몇 장과 송금 두어 번으로 모든 게 끝나버렸지. 법? 법은 무슨 법? 당사자들은 다 튀고 그 사람들 명의로 된 게 세상엔 아무 것도 없는데. 부산시 가까이 대형 건축자재창고가 유령으로 드러나는 순간 땅 계약서도 허위였고…… 계약한 부동산도 떴다방처럼 빈 사무실만 남기고 사라져버렸고…… 오십여 종 건축자재 물품명목서랑 언제까지 납품하겠다는 계약서들도 알고 보니 모두 허위였고……. 내가 눈 뻔히 뜨고 있는데도 어떻게 눈앞에서 그렇게나 감쪽같이……. 모든 게 치밀한 공모고 사기였었다. 내가 일 년여를 수소문하고 뒤쫓아 세 놈 중 한 놈을 어렵게 찾아냈을 때 그놈은 이미 공문서 위조와 사기죄로 감옥에 들어가 앉아 있더라. 철옹성에 들어앉아 면회실 저편에서 나를 향해 실실 웃고 있었지. 당한 게 병신 아니냐는 거지. 나는 그 후 사채업자들에게 잡혀 초주검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간신히 서울로 도망쳐왔다. 지금껏 이 년째 으슥한 곳으로만 피해다니고 있지만……. 그래, 홈리스지. 홈리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집 없는 거지 아니냐! 차라리 완판 거지라면 속이라도 편하지. 누가 갑자기 내 뒷목을 낚아챌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끊임없이 사방을 경계해야 해. 어디서 꾸겨져 잘 때도 복면하듯이 얼굴을 가리고 잔다. 그런 생활 한 달만 하면 그 누구라도 피가 마르지……. 그래, 이렇게 쥐새끼처럼 살아서 뭐하나? 죽어버릴까. 그래, 죽는 게 훨씬 낫다. 죽자. 죽어버리자.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생각이 나서 그동안 고층아파트 옥상에도 수없이 올라가봤다. 찬바람 부는 한강 다리난간도 수십 번 거머쥐어 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꾸만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서 차마 그 짓도 못하겠더라. 애들을 그 지경에 던져놓고 저 혼자 편하자고 목숨을 끊는 거 같아서 말이다……. 민호야! 사람 사는 게 뭐 이러냐? 나는 사람이 아니고 유령 같다. 내가 이렇게 좀비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될 줄…… 난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 그동안 많이 지난 과거를 되짚어보고 생각해 봤다. 사기야 당한 거고 어쩌겠냐. 엎질러진 물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근데 말야. 우리나라 사회가 진짜 너무너무 야박하지 않냐. 누군가 한번 무너지면, 쓰러지면…… 절대 다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패도지(一敗塗地)야. 다신 못 일어나! 난 그게 너무나 서럽고 원망스럽다. 그 어디에도 패자부활전이란 게 없어. 생각해 봐라. 넌 무섭지 않냐?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판단을 잘못 내릴 때도 있고 실수도 하잖아. 실패할 수 있어. 사람이니까…… 그래…… 모두가 실수를 저지른 내 탓이라고 해서 당연히 나도 그렇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무지 억울해. 난 사기범이 아니잖아. 단지 사람 한번 오지게 잘못 믿은 대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피해 당사자잖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날 쓰레기취급을 해……. 이 사회, 은행, 지인들, 제도, 법…….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람취급 하지 않아. 애당초 내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아. 내 옷차림과 표정만 봐도 전부 다들 슬금슬금 피하기 바빠. 마치 당신으로부터 인생을 말아먹는 바이러스가 옮겨올지도 몰라. 부담스럽고 재수 없어…… 하듯이 말야. 두 번만 찾아가도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하고 아예 사람 거들떠도 보지 않지. 근데 그게 난 또 이해가 잘 안 돼. 사람들은 나를 대놓고 재수 옴 붙은 보균자 취급하거든. 날 언제 봤다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대놓고 함부로 사람을 막 대하지? 관공서에서조차 죄인 다루듯이 해. 가진 돈이 없다는 이유 빼고는 내가 남에게 무슨 피해를 줬다고? 난 정말이지 다시 열심히 일해 보고 싶을 뿐이야. 의욕도 있고 체력도 있고 남 못잖은 경력도 있는데……. 아무도……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아.
순태는 했던 말을 또 중얼거렸다. 사람대우 받아본 적이 까마득해서 이젠 잘 기억도 안 난다고……. 온몸을 점령한 취기 탓에 순태는 주변엔 아랑곳없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너 그거 모를 거다. 사기를 당했든 경쟁에서 낙오됐든 상관없이 이 사회는 그 즉시 인생의 실패자란 낙인을 찍는다. 동시에 사회에서 폐기처분해 버리는 그 속도…… 야하, 가히 광속도더라. 크크크, 사람 사는 거…… 사람이라는 거…… 그거 알고 보면 되게 웃긴다. 사람 한번 찌그러지면 빈 캔이나 맥주병 대우도 못 받아. 재활용 자체가 안 되는 유기물덩어리로 쓰레기취급해 버린다니까……. 민호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아냐? 그간 온갖 공사판이란 공사판은 다 전전해 봤다. 하지만 기술이 없다고 나이가 많다고 체격이 변변찮다고 잘 써주지도 않는다. 새벽 인력시장에 한 달 내내 지키고 서 있으면 겨우 사나흘 꼴로 일한다. 내 밥값도 못 벌어. 인력시장도 외국노동자 차지가 된지 이미 오래고…… 도무지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위로 올라가봐야 하는데……. 그 어디를 향해 손을 뻗어도 거머쥘 만한 곳이 없다. 딛고 올라갈 발을 받칠 만한 곳이 없어. 그야말로 맨손으로 맨발로 서서 까마득한 수직 빙벽을 혼자 마주하고 서 있는 그런 기분이야. 이런 걸 절망이라고 하나? 절망……? 제기랄! 그 말조차 가증스럽고 역겹군. 카아악, 퉤엣!
자정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는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 층계를 걸어내려갔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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