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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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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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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7일(수) 11:07 13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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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여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씩 사나워지고 무신경해지고 뻔뻔해지는 거야 세월 탓일 거다.
그녀는 이 년 전 아파트 반상회에서 만난 이웃 주부를 따라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뒤 열성적으로 종교활동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전도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피곤했고 예전보다 가족들을 덜 챙기는 게 그로선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많지 않은 봉급쟁이 남편 수입을 가지고서 가계에 적자 안 내고 나름 지혜롭게 가정을 건사해 내는 성실한 주부였다.
자의든 타의든 제 손으로 돈 벌어 가정경제에 직접적 보탬이 된 일은 한 번도 없었던 아내. 까닭에 그가 실직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고민과 걱정에 휩싸일 게 분명했다.
아내로부터 뾰족한 수가 나올 리도 만무한 바에야 그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고 난 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할 작정이었다. 그게 충격이 덜 할 테니까.
그는 늘 평상시대로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 비해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는 점. 집을 나오면 그는 대여섯 블록 떨어진 공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그날 자 경제신문부터 읽었다. 그런 다음 직장인들이 출근을 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대학 때 친구들과 서울에서 일하는 고향친구들과 연결을 꾀했고 그들을 만나서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자동차대리점 지점장, 의류업체 상무, 중고자동차 판매이사를 비롯해 친구들은 부동산업계, 보험업계, 금융계 등등 여러 분야에 포진해 있었다. 은행 차장으로 일하는 친구에서부터 레스토랑, 와인전문점, 피자전문점, 맥도날드 체인점, 커피전문점, 주류도매업체 점장 등등으로 말이다.
그는 매일매일 옛날 수첩과 명함보관집,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뒤지고 새로이 확인했다. 기억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수소문해서라도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는 그렇게 매일매일 옛 친구들을 돌아가며 낮밤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만났다. 만나서 그들이 하는 일과 관련된 얘기와 그들이 속한 업계의 정보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새가 없나 해서였다.
오천만 원? 아파트를 은행에 잡히고 융자를 어느 정도 받는다면 총 일억 원? 최대 일억이천만 원? 그가 이리저리 아무리 끌어모은다 해도 사업을 시작하기엔 그리 많지 않은 돈이다. 시쳇말로 조금만 삐끗해도 한 방에 날려먹기 딱 좋은 금액 아닌가.
사기꾼들이 도처에 득시글거리는 세상. 일면식도 없는 남보다는 그래도 옛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려 깊은 정보를 주긴 했었다.
퇴직금을 전액 투자하고 아파트를 은행에 저당 잡혀서라도 그는 제대로 된 뭔가를 소규모라도 시작해 보고 싶었다. 예전처럼 안정된 봉급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제 일터를 가진다면 얼마 안 되는 돈을 그냥 하루하루 까먹어 나가는 것보다 나을 것이기에.
쉰 살이 낼모레인 친구들은 굳이 그와 마주앉지 않더라도 별안간의 그의 안부전화를 받은 것만으로도 그의 사정을 이미 다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성질 급한 녀석은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아 ‘너 명퇴 했구나!’ 할 정도니까.
어쨌거나 아내와 두 자식들과 함께 먹고 사는 일을 찾기 위해 안면 팔린다거나 자존심 따위는 일찌감치 접었다.
-근데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었잖아.
-촌 학교라서 그런가. 공부 잘 하던 애들이 됐다는 게 기껏해야 교사고 회사원이야. 중간치 녀석들 중엔 어지간한 사장도 나오고 상가 건물주도 나왔는데.
막상 옛 친구들을 찾아보니 그보다 앞서 회사를 나왔거나 사회 출발부터 자영업으로 뛰어든 친구들도 많았다. 옛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의 상황과 사정을 들어보고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뭐라, 회사 다닌 거 빼고는 아무 일도 안 해봤다고? 너 그렇게 우직해서는 약아빠진 세상을 잡을 수가 없다. 요즘 투잡이 기본인 것도 몰랐냐? 하나가 펑크나면 즉시 갈아끼울 스페어잡은 준비해 뒀어야 그렇게 막막해 하진 않는데.
-대체 뭘 해보고 싶은데? 뭐 배워둔 거 없어? 관심 있는 분야가 있을 거 아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그 정도……라면. 흐음, 글쎄 편의점도 그 금액 가지곤 어림없을 걸. 가전제품 대리점도 이젠 규모가 커져서 최소 십억 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지!
-야아, 옛날 소리 하지 마라. 요즘 동네 비디오샵이 되는 게 어딨냐? 다 다운 받아서 보지.
-슈퍼마켓? 지금이 팔구십 년대냐. 동네 슈퍼는 육칠십 년대 구멍가게로 돌아간 지 이미 오래다. 노인들이 심심풀이 용돈 버는 수준이니까 눈도 주지 마라. E마트니 뭐니 초대형도 모자라 동네 골목까지 각개전투형 대기업 슈퍼마켓이 들어와 요즘 동네마다 난리치는 데가 한두 군데 아니다.
-네가 중고자동차 판매를 할 수 없겠냐고? 야아, 요즘 같이 세계경제며 나라경제가 어깨동무하고 꺼꾸러진 판에 누가 헌 자동차를 산다고 그래? 이 바닥 일이십 년 베테랑들도 한 달에 차 한 대 못 파는 사람 부지기수다. 소나타 중고 한 대 팔면 얼마 남는 줄 아냐? 이리저리 떼이고 나면 사오십만 원이 고작이다. 인맥 많고 뿌려둔 게 많고 사람 삶아먹을 달변의 혓바닥을 가졌다고 해도 사람들이 차를 아예 없애나가고 있는 작금의 시류에선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다.
-노가다판……? 글쎄, 아직도 사대강에나 그런 토목판이 남아있을랑가 모르겠다만 아파트 분양 자체가 안 되니까 건설경기는 완전 바닥이다. 설사 어디서 아파트 짓는다고 해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잡부겠지. 근데 임금이 싼 외국인노동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공사판에서 과연 누가 질통 한 번 안 져본 너를 써줄까? 몇 푼 벌다가 괜히 골병만 들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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