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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창해, 질풍같은 세상에 홀로 선 깃털 같은 존재’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76> 울산바위의 역사적 고찰 ⑥

2015년 01월 22일(목) 15:01 138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9)「유풍악기(遊楓嶽記)」

김유(1653∼1719)의 『검재집儉齋集』20권,「기(記)」는 1709년 미시령을 넘어 화암사을 구경하고 신흥사까지 경유하고 난 후 조계굴까지 과정을 남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월 29일 맑음. 자동(自東)에게서 서신을 보내 서둘러 식사를 하고, 남녀(藍輿)를 돌려보낸 뒤 계조굴(繼祖窟)에 들렸는데, 양양(襄陽)땅이었다. 바위에는 옥우(屋宇)가 무너진 듯한데, 예전에 암자가 있었으나 불에 탔다고 하며, 새로 짓는 것은 아직 완공하지 못한 채였다. 동쪽에 있는 석대(石臺)는 100여명이 앉을 수 있고, 북쪽 깊숙한 곳에는 크고 둥근 돌이 있는데, 스님 말로는 흔들바위라고 한다. 여러 사람이 밀면 쉽게 흔들린다고 했다. 1천여 명의 힘으로도 불가한데 시험 삼아 해보니 과연 그랬다.
암자를 누르는 천후산(天吼山)은, 하늘에서 바람이 불면, 산은 번번이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아우성을 친다고 말하였다. 양양(襄陽)은 이렇듯이 바람이 많다. 소현(小峴)을 넘어 신흥사(神興寺)에 이르렀는데, 화암사(禾巖寺)에서 이곳까지는 무릇 20여 리다.” 라고 적고 있다.

…二十九日庚午晴。送書於子東。已促食。復以藍輿行。歷入繼祖窟。襄陽地也。有巖覆如屋宇。舊有菴其中。爲火所설。方新建而未完。東有石대。上可坐百人。北偏有巨圓石。僧言是動石。數人推之輒搖。而雖用千百人力亦不加。試之果然。菴之鎭曰天吼山。天欲風。山輒鳴吼調調조조。襄之多風以此。踰小峴至神興寺。自禾巖至此凡二十里。

10)「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

1728년 양양부사 시절 유경시(柳敬時, 1666∼1737)의 『함벽당집(涵碧堂集)』「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에서는 설악산을 유람과 금강산을 아울러 다녀왔다. 이 작품에서는 설악산 두루 다녀보았으며 전체적으로 세부하게 적고 있다.
내용을 보면, “…고령(高靈) 신척(申滌)이 본도 좌막(佐幕)으로 있었는데, 편지를 보내 나와 함께 유람하면서 경치를 구경하기로 약속하였다. 우선 설악(雪嶽)으로부터 시작하여 3월 9일 신흥사(神興寺)에서 모였는데, 신흥사는 양양부의 경내에 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고 도착하여 보니 부장(副將) 일행은 이미 화암사(華巖寺)로부터 천후산(天吼山) 꼭대기에 올라와 옛 이야기를 몇 마디 늘어놓고 있었다. 산의 모든 경치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호응할 겨를이 없었다.
산의 사면은 모두 바위로 둘려져 있는데 마치 하나의 병풍처럼 깎여져 있고 석굴(石窟)이 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조 화상(祖和尙)이 거처하던 곳이라 하여 계조굴(繼祖窟)이 되었다고 한다. 굴 가운데에는 몇 개의 시렁이 엮어져 있고 좌우에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문승(門僧) 수도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삼았다고 한다. 절구 한수를 지어 읊었다.

碧玉環爲障(벽옥환위장) 벽옥이 둘러 병풍을 만들었는데,
誰能削得成(수능삭득성) 누가 능히 깎아 만들 수 있겠는가?
仙師迹已遠(선사적이원) 선사의 자취 이미 멀어졌는데,
石窟但留名(석굴단류명) 석굴이 다만 이름을 간직하고 있구나.

굴 가운데에 돌이 있는데 자연적으로 평평하게 깔려 있고, 그 넓이가 수백 여 척이나 되어 수백 사람이 모여 앉을 수 있다. 비가 올 듯하여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곧장 산을 내려와 내원암(內院庵)에서 잠시 쉬었다가 본사(本寺)에 도착하였다. 땅의 형세가 비록 내려와도 경내는 좀 널찍하지만 앞뒤 산봉우리의 험준하고 매우 수려함이 모두 눈앞에 펼쳐져 있다.”라고 적고 있다.

…高靈申滌 爲本道佐幕 馳書告我約與同遊而深勝 先自雪嶽始 三月初九邀會于新興寺 新興寺府境 余卽욕食赴之 亞使行自華巖寺已在天吼山上頭 敍舊才數語 山之諸景 湊目前 應接不暇矣 山四面皆石環立如削宛然一屛障 有石窟 其深不測 世傳 祖和尙 住錫之處 仍名爲繼祖窟 窟中結數架 左右료以奇巖료石 爲門僧修道者居之云 爲吟一絶曰 碧玉環爲障 誰能削得成 仙師迹已遠 石窟但留名 窟中有石 天然平鋪 廣시數百餘尺 上可坐百餘人會 有雨意 不可久留 卽下山 小憩于內院庵 到本寺 地勢雖下 而境稍寬 前後峯巒稍拔奇秀 皆在目前

↑↑ 이정소의 『춘파만록(春坡漫錄)』 「유설악록(遊雪嶽錄)」.

ⓒ 강원고성신문

11)「유설악록(遊雪岳錄)」

이정소(1674∼1736)의 『춘파만록(春坡漫錄)』 「유설악록(遊雪嶽錄)」은 1733년 9월 11일 가을 경치를 보기 위해 양양에서 진사 민태수와 함께 설악 구경을 나섰다. 12일 상운역을 떠나 낙산사에 묵은 다음날 13일부터 신흥사 입구에 도착하여 주변의 돌아보았다. 이때 천후산인 울산바위와 아래 세 칸 남짓의 바위굴인 계조암을 보고, 흔들바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가마를 돌려 천후산을 향하니 커다란 바위가 마치 돌 부채처럼 하늘 높이 눈빛으로 하얗게 치솟아 있고 중향성(重香城)이 펼쳐져 있는 것과 같으니, 이곳이 가히 모든 금강의 경치 중 백미라 하겠다. 험난한 돌길을 열 걸음 걸어 아홉 꼭대기에 겨우 도착하니 아래에는 용암(龍岩)이 있고, 양안에 두 가닥나무로 다리를 놓아 가까스로 지팡이를 짚고 건너니 석문(石門)이 보이는데, 두 바위 사이에 기거하는 스님이 한 명이 있어서 나를 인도하여 굴 안으로 들어가니, 굴 안에 세 칸 남짓 계조암(繼祖庵)이 들어 앉아 있고, 암굴 위의 석문 밖에는 정암(庭岩)이 있는데 바위의 반쯤 높이의 용암에는 사람 오십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바위의 단상에는 어른 키의 한 배 반 정도 되는 소위 움직이는 돌이라 부르는 동석(動石)이 있어 시험 삼아 밀어보니, 어린아이의 힘 정도로도 움직이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하다. 스님 말이 “원래 이 돌은 두 개였는데 하나가 밑으로 떨어져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굴 밖 서쪽 바위틈에 샘이 하나 있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차며 먹을 수 있다. 민태수와 함께 바위 위에 앉아 사면을 둘러보니 향로봉(香爐峯)이 보이고, 그 남쪽에는 달마봉(達馬峯)이 있고, 그 동남쪽에는 국사봉(國師峯)이 있고, 그 남쪽에는 천후산이 있고, 그 북쪽으로 수려하고 준수하고 빼어난 나라의 명승들이 늘어섰다. 달마봉으로부터 천후산의 사이를 넘어 보이는 만리 창해는 그 광대한 모습이 그 옛날 소동파(蘇東坡)가 시로 읊었던 소위 ‘질풍같은 세상에 홀로 선 깃털 같은 존재니 신선에 이르는 것이 오늘이라’고 하였던 것과 같다.”고 적고 있다.

…回輿 天吼山見 大岩石두起 自作數峰 如石扇 峻極 于天雪色애애 有若 重香城칠羅比 諸金剛可爲 伯仲矣 崎嶇石逕 十步九顚僅 到山下 則有龍岩 송峙 高幾數十杖 傍流泉 不可좀越 以木棧二條撑架于 兩岸 故遂携藜杖而渡焉 見石門硏然 在兩岩之間 居僧一人 前導余 以入窟之中果 有繼祖庵 三間屋宇 上無盖履極 其瀟세 遂題名于 庵窟之上 石門之外 有庭岩 岩之高半於 龍岩 而廣闊倍之 可坐四五十人 岩之端上有 所謂動石 高圓一杖有半試令人搖之 則小動焉 亦異事也 僧言 是石有雙今亡 其一落在 其下云 窟之外 西岩하 有一泉井 味甚甘洌可飮 與閔台수 上庭岩四顧望 則香爐峯在 其南達馬峰在 其東南國師峯在 其南天吼山在 其北秀麗峻拔殆 類天台赤城之勝 自達馬 天吼之間 越見 滄海萬里浩渺 蘇仙 所謂飄飄乎 如遺世獨立羽化 而登仙者 正爲今日道也

12)「동정기(東征記)」

채지홍(蔡之洪, 1683∼1741)의 『봉암집(鳳巖集)13권 기(記)는 1740년(영조 16) 韓元震, 尹鳳九와 함께 고성군수로 있던 權定性을 찾았다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東征記」를 남겼다.
설악산을 찾은 저자가 바라본 내용은, “천후산(天吼山)에서 동쪽 기슭 계조굴(繼祖窟)에 이르렀다. 굴의 모습은 세 칸짜리 작은 집으로 노숙(老宿)자 몇 사람이 지키고 있는데, 석벽(石壁)이 횡으로 하늘의 서쪽 반을 막고, 석벽 아래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았다. 앞에 있는 거암(巨巖)은 높이가 한 길 정도이고, 넓이는 배다. 위에 있는 큰 돌은 그 모양이 거의 둥글며 주위가 한 칸짜리 작은 집 같다. 손으로 건드리면 미미하게 흔들리니 어찌 떠 있는 돌이라 하지 않으랴. 산 이름 천후산(天吼山)도 바람 기운이 이 산을 덮칠 때마다 그 소리가 사자울음 소리 같다고 한다. 산 입구로 내려가니 곧 다음 곳으로 안내할 사람이 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遂自天吼東麓。至繼祖窟。窟容小屋三間。老宿數輩守之。石壁橫遮於半天之西。而淸泉湧出於石壁之下。前有巨巖。高可丈餘。廣則倍之。上有一大石。其체至圓。周圍如一間小屋。而以手撓之。則微微흔動。豈亦浮石之類耶。山名天吼。盖亦以此山常有風氣。其聲如吼也。及下山口。則蹄指已來會矣。

13)「유풍악록(遊楓岳錄)」

정기안(鄭基安, 1695∼1767)41)의 『만모유고(晩慕遺稿)』6권 잡저(雜著),「유풍악록(遊楓岳錄)」은 1742년 금강산 따라 유람을 하고 양양까지 와서 경로를 보면, “…웬 산이 가마 앞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커다란 바위가 앉았는데 평평하고 반질하기가 갈아낸 듯하고 그 위에 천후산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 귀퉁이에 큰 돌이 치솟아 있는데 높이가 4,5장은 되고 둘레의 길이는 백여 아름이나 되지만 이름은 흔들바위라고 부른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 바위가 한 사람이 흔들면 흔들리지만 백사람이 흔들면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시험을 해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그 위로 십여 보를 올라가니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계조굴이라고 불렀다. 석굴은 큰 바위 아래에 있었다. 방 세 칸이 있었는데 대들보도 얹지 않았고 서까래도 걸지 않았으며 기와도 얹지 않았다. 큰 바위가 아래로 드리워져서 동굴 입구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용마루를 받치는 도리들이 위를 받치고 있어 마치도 가마와 같은 집이었다. 사면은 모두 바위였고 앞쪽에 돌문 하나를 내었는데 한사람이 겨우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암자의 뒤에 석봉들이 천만장이나 늘어 서 있고 커다란 바위와 암벽들이 좌우로 바둑돌처럼 널려 있어 보기만 해도 호랑이 무리 속에 든 것 같아 경악할 지경이었다. 조물주도 이곳에다 일정한 힘을 들였으니 아마도 달리 쓸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천후암 위에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북쪽 산문으로 내려 왔다.”고 적고 있다.

…有山卓立於輿前。下有大巖。平滑如磨。刻天吼山三字。巖隅立大石。高可四五丈。大可百餘圍。名曰動石。僧言是石一人搖之輒動。百人搖之不加動。試之果然。上數十步有小菴。名繼祖窟。窟在大巖下。屋凡三間。而不樑不椽。又不瓦。大巖下垂而庇之。棟卽仰承。若轎戴屋。四圍以巖。前開一石門。僅通人出入。菴後石峰列立千萬丈。傑巖巨壁。左右碁置。顧眄駭愕。若在虎?攫踞之中。化翁於斯。定費些氣力而作此別鋪置也。坐天吼巖移時。乃北下山門。

14)「후설악기((後雪岳記)」

안석경(安錫儆, 1718∼1774)42)의 『삽교집』 「雪岳記」에는 수록된 한편의 기행문이 더 있다.
1760년 기록한 내용을 보면, “…몇 리를 가서 신흥사(新興寺)에 들리고 북쪽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십리쯤에서 계조굴(繼祖窟)에 들렸다. 굴(窟)은 천후산(天吼山)을 등지고 있다. 이 산은 순전히 돌을 예쁘게 깎아 놓은 듯 하다. 광심(廣深)은 5백 방(方)이고 높이는 2백 잉(仍)으로 푸른 비단 병풍을 펼친 듯 하며, 저녁 햇빛을 받으면 흔들리는 것 같아 이채롭다. 굴(窟)은 큰 돌 아래 얕은 곳에 있는데 흡사 승방(僧房)의 감실(龕室) 모양이고, 감실(龕室)을 새로 수리한 듯이 좌우가 모두 막혔다. 돌 앞에는 석문(石門)이 있고, 석문(石門) 앞에는 넓은 암석이 있는데 폭이 10여 장에 이른다. 바로 천후산(天吼山)을 마주하고 있으며 위에는 입석(立石)이 있다. 할아버지 죽애공(竹涯公)43)께서 제명(題名)을 정중하게 받들어 새겨놓은 자취가 남아 서글픈 생각이 새롭기만 하다.”

…數里入新興寺, 北溯溪十里入繼祖窟. 窟負天吼山. 山純石巧刻鏤. 廣深五百, 方高可二百인, 如展靑錦屛. 方受斜日動異彩. 窟在巨石底而淺. 恰容僧龕. 龕新修, 左右皆穹石. 前有石門, 門前有廣石, 方十餘丈. 正當天吼, 面上有立石. 瞻大父竹涯公題名, 敬攀遺刻, 愴感惟新.

15)「동정일록(東征日錄)」

1771년 강원도 관찰사 시절 김종정(金鍾正, 1722~1787)의 『운계만고(雲溪漫稿)』8권 잡저(雜著), 「동정일록(東征日錄)」에는 관동지역의 공무 중에 남긴 작품으로 지금의 속초에 이르러서 다음과 같이 남겼다.
“…바다에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이 불 때면 사람이 날릴 지경이고 모래알들이 얼굴을 마구 때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높은 산을 넘고 깊은 골을 훑느라 며칠 동안 쉬지를 못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기는 평생에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아마도 양양과 간성에 높은 산과 연분이 있어 그런 모양이다. 천후산에 구멍이 많은데 그 구멍들이 울면 꼭 바람이 분다고 한다. 그래서 양양과 간성에 높은 나무 가지가 바람을 많이 타는 모양이다.”라고 적고 있다.

…海上多風。吹人欲점。飛沙撲面。不得開睫。而陟高岡窮幽壑。連日不能休。念余勞劇。平生一初也。或云襄杆之交。有天吼山。山多空穴。吼則必風。故襄杆多風。

이상 조선시대 17편의 기행문 자료 중 유람년도와 유람 경로를 정리하면 위 <도표>와 같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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