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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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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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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4일(화) 13:08 142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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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그래? 야하, 박 과장 정말 대단하구만. 그렇다면 아예 술까지 끊지 그래?
-핫하하하, 부장님께서도 잘 아시면서. 술이야 영업상 어떻게 할 수 없어 받아 마실 수밖에 없습니다만 아무튼 제 나이 한창이던 그 무렵인데도 체력이 무지 달리더라고요. 속도 자주 메스껍고 퇴근길에 다리도 휘청거리고. 나이 믿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바로 담배 끊고 운동 시작했더랬죠. 그리고 제가 남보다 쉽게 살이 찌는 체질입니다. 비만은 영업의 적이고 개인의 적이자 공공의 적 아닙니까. 아무튼 부장님께서도 담배 좀 줄이시고 유산소운동 좀 하십시오. 건강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백번 지당한 말이야. 내 유념은 해두지. 어쨌든 박 과장 날밤까진 새우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컴퓨터도 아닌데 소수점까지 딱딱 맞추지 않아도 돼. 어차피 전무님은 세 회사의 내복약 판매 도표와 월별 매출 비교 수치 정도 필요한 것일 테니까.
-염려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장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박 과장은 그가 차에 올라타자 활기찬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근데 그게 그가 본 박 과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다음날 새벽 세 시쯤이었다. 그는 깊은 잠을 자다가 황당하고 괴이한 전화를 받았다. 영업 1팀의 박주환 과장이 죽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양대학병원 영안실 백십 호실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1팀의 김지석 대리였다.
-뭐라고? 박 과장이 죽었어? 이 친구 지금 뭐라는 거야? 가만…… 대체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새벽 세 시……? 야, 김 대리! 너 지금 술 취했구나? 박 과장은 나랑…… 가만 어제 시간이 몇 시였었지? 그래, 지난 밤 열 시를 갓 넘겼을 때 회사 주차장에서 걔랑 나랑 헤어졌었어. 그러니까…… 다섯 시간 전이구만. 근데 뭐라고? 그런 박 과장이 죽었다니! 무슨 농담을 그렇게 심하게 하나. 그것도 오밤중에 자는 사람 깨워서. 엉!
-네…… 부장님. 근데 사실입니다. 저도 연락 받고 달려오면서도 내내 믿기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박 과장님 영정사진까지 영안실에 놓여 있습니다. 부장님 일단 여기로 어서 오십시오. 회사에선 부장님 선까지 연락을 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저…… 정말이란 말이지? 으흐으음. 알았어. 어, 어디라고? 하, 한양대학병원 영안실?
메모를 하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른여덟, 백팔십이 넘는 큰 키에 팔십일 킬로그램. 한창 팔팔한 나이이고 비할 데 없이 좋은 체격 아닌가. 놀란 아내가 건네주는 검은 양복을 입는 동안 박 과장이 어떻게 죽었는지 안 물어봤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사고인가? 차사고? 병원을 향해 차를 몰고 가면서도 그는 몹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지난밤 사무실에서 혼자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려대던 모습, 활기찬 음색과 웃음소리가 생생한데…… 그가 고인이 돼버리다니. 이런 날벼락이 또 어딨는가. 자신보고 담배를 줄이고 건강을 챙기라고 했던 어제 그 젊은 작자가…….
빌어먹을! 마음이 도무지 안정이 안 되자 그는 담배부터 피워물었다.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았다. 영안실에 도착해 들은 이야기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흐느껴 우는 박 과장 부인에게서 직원이 전해들은 얘기라는데, 박 과장은 집으로 퇴근한 뒤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늦은 저녁을 먹었다. 부인이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그는 안방구석에 놓인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켠 채 노트북 활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야? 회사일 집 안으로 가져오지 말랬잖아.
-미안……!
-긴급한 거야. 오늘만 좀 봐줘라.
-설마 밤 샌다는 건 아니겠지?
-옛썰! 두 시간 정도면 대충. 먼저 자라고.
-나 자기한테 얘기할 게 있는데.
-뭐라고?
-나 텔레비전 소리 안 나게 켜놓고 보면서 자기 기다려도 되지?
-그래 그럼. 소리만 안 나면 돼.
그는 서류 파일을 넘겨 곳곳을 연필로 체크하면서 노트북 화면에 수치와 막대그래프를 기입하고 그려넣는 작업을 계속했다. 자막이 나오는 외화를 볼륨 완전히 죽이고 보던 아내는 열두 시를 넘기자 그냥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와당탕탕! 쿵! 하는 소리에 그녀가 잠을 깨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앉았다. 남편이 의자와 함께 뒷목을 두 손으로 싸안고 뒤로 나자빠져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 어머나! 자기 무슨 일이야! 왜 뒤로 넘어지고 그래? 뭐야? 모, 못 일어나는 거야?
아내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그를 일으켜 앉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큰 덩치의 그는 버둥질만 칠 뿐 등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질 않았다.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모, 몰라! 갑자기 뒷목을 누가 내려친 것 같아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는데…… 몸이 일으켜지질 않네. 등짝이 자석처럼 방바닥에 붙은 거 같아. 이거 왜 이러지?
그는 정말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내를 올려다봤다. 그의 정신상태며 말과 눈빛은 당황한 기색을 빼놓고는 멀쩡했다. 이 사람이 오밤중에 쇼를 하고 장난을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을 일으켜 앉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더럭 겁이 난 부인은 119를 불렀다.
-나 원 참! 이거 되게 웃긴다! 내 몸이 내 몸 아닌 거 같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재밌기도 하고. 스트레스 때문인가…….
남편이 반듯하게 드러누운 채 아내를 향해 실실 웃자 여자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안 아파? 어디 아픈 덴 없어?
-아니. 하나도 안 아파. 단지 뒷목덜미 위쪽이 약간 묵직한 느낌이긴 하지만…… 야하, 되게 신기하다. 내 상체가 무슨 나무통 같아. 살다살다 참 별 희한한 일을 다 겪네.
그러는 사이 환자 상황을 미리 전화통화로 확인한 119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그의 안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이거 제 몸이 꽤나 무거운데…… 오밤중에 갑자기 수고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남편은 구급대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저, 근데 잠깐만요. 혜지 엄마. 저기 책상 위 푸른색 서류 파일 두 개 있지. 그것 좀 내 배 위에 얹어줘. 연필 하나 끼워서.
-뭐, 뭐야? 당신 미쳤어? 119에 실려가면서 무슨 서류철이야? 그럼 지금 응급실에 가서 서류 보겠다는 거야?
-부인 말씀이 맞습니다. 나중에 보시죠.
119 대원들도 말렸지만 그는 부득불 고집을 세웠다. 틀림없이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근육경직일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실에 가서 링거 하나 꽂고 누워 쉬다보면 금방 다시 멀쩡해질 거다. 링거 하나 맞는데 몇 시간씩 걸리지 않냐. 나는 집 아닌 다른 곳에선 잠을 잘 못 잔다. 어차피 못 잘 거면 시트에 누운 상태서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서류 체크를 하는 게 오히려 맘 편하다. 그렇게 고집을 부려대니 아내는 하는 수 없이 푸른 서류철 두 개를 챙겨들고 남편이 실려가는 들 것을 따라나섰다.
그게 박 과장의 마지막이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차가 제 속도를 내면서부터 그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혼수상태였다. 그는 긴급 의료조치에도 불구하고 새벽 한 시를 마악 넘긴 시각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박 과장은 나이 서른다섯인 젊은 아내와 네 살 난 딸, 두 살 난 딸을 두고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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