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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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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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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6일(수) 10:16 145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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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내는 평생을 같이 늙어온 친구들이 있는 여기 이 고향 이 집이 좋구마. 누가 뭐라고 하길 하나. 눕고 싶으문 눕고 자고 싶으문 자고. 허름한 집 한 칸이긴 해도 내 집이니께 마냥 속 편하구마. 그러니 내 걱정은 쪼끔도 하지 말거라. 아프면 요 옆 보건소 가면 천 원 남짓에도 약 두둑하게 주것다, 침도 싸게 얼마든지 맞을 수 있고. 문 밖에 나가보문 어딜 봐도 먹는 채소가 지천이고 쌀도 감자 캐 바꿔먹으면 되니께로 참말로 여기선 생활비가 한 푼도 안 든대이. 전기료 수도료도 합쳐 오륙천 원 내뿌면 한 달 끝인기라. 그러니 내가 노망이 나지 않는 이상 서울 가 살 이유가 하나도 없것제.
-내 염려랑 눈곱만치도 하덜 말거래이. 글고 매달 내한테 보내는 용돈 십오만 원도 너무 많은 기라. 오만 원으로 팍 줄이라고 안 해쌓나. 혼자 사는 노인네가 돈 쓸 데가 어딨겄냐? 내기 윷놀이판도 십 원짜리고 고스톱도 십 원짜리 판이데이. 운수 젤로 나쁜 날 돈 최고로 많이 잃어봤자 끽해야 천 원이구마. 고걸 모아 공동으로 과자 사먹으니께 잃어뿌려도 아무 상관없지러. 암튼 돈 필요하믄 밭작물 한 광주리 슈퍼집에 갖다주면 돈 일이만 원 쉽게 뚝딱 나오니껜두루 일체 내 걱정 하지 말고 우짜든지 니 앞가림이나 잘 하거래이. 알것제. 어이구, 그라고 보문 처자식 거둬먹이느라 니가 참말로 욕 많이 본대이.
그가 서울로 가 함께 살자는 뜻을 내비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파트를 넓힌 뒤에도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지금껏 서울로 모셔오지 못했다.
어머니가 귀찮아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집은 대 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매일같이 몰려드는 곳이어서 어머니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이 일은 성격이 다르다. 한 집에 같이 살고 안 살고가 아니지 않는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앞세운다면! 본인 앞에서 멀쩡하기 그지없던 장성한 자식놈이 허무하게 눈을 감아버린다면!
그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자식들과 아내를 생각하면 깊은 회한이 가슴을 찌르지만 노모에 대한 심정은 세상에 이를 데 없는 막심한 불효!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앞세우고는 도저히 못 사실 분이다.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자식 죽는 것을 지켜보고도 밥숟가락을 아가리에 떠넣겠냐, 하시며 식음을 전폐하실 게 뻔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저 세상으로 훌쩍 건너간 바에야 내가 무슨 이 세상에 미련이 남고 부귀영화를 누릴 게 있다고 여기 머물러 있겠냐며 손을 홰홰 내저으시다가 밥상을 엎으실 것이다. 다들 꼴도 보기 싫다. 생때같던 내 자식놈을 내 눈앞에 다시 데려오지 않는다면 등지고 드러누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실 분이다.
그런 생각이 그를 한없이 비통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설움이 턱 밑까지 다시 차올랐다. 발길 닿는 대로 걷던 그는 거리 간판 여기저기를 바삐 찾았다. 거리에서 다 큰 성인남자가 우는 것은 남들 눈에 괴이쩍다. 더없이 못나고 흉하게 보일 것이다.
그는 허겁지겁 근처 지하 노래방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구석진 방으로 들어간 그는 멜로디를 최대한 크게 틀어놓자마자 급한 울음을 격하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울어본 뒤로 그는 한 번도 이렇게 큰 소리로 운 적이 없었다. 남자가 무슨 눈물을? 눈꼬리에 물기가 조금만 번져나와도 서둘러 지워버리고 헛기침을 했었다.
지금 그는 너무나 괴로웠다.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난 것도 서러웠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생은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번갈아 오는 새옹지마라 하더니만 개뿔! 그에게 드러난 인생의 정체는 설상가상이었다. 포악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저녁나절 길거리에서 오뎅꼬치 하나를 먹어치우듯이 그렇게 가볍고도 일상적으로 삶이 통째로 죽음의 아가리에 던져진 것이었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요란한 트로트 메들리가 연속해 쏟아지는 그 안에서 그는 머리와 가슴을 두 손으로 싸안은 채 통곡했다. 어머……님의 손을 노오옷코 돌아서어얼 때에에 부어엉새도 울었다오오오 나도 울어어었소. 가랑잎이 휘나알리이는 산마아루우우에에에……. 노래방 기계가 혼자 부르는 그 처연한 멜로디가 그의 가슴을 또다시 깊숙하게 찔렀다.
머잖아 늙으신 어머니의 생가슴에 대못을 쳐야만 하는 현실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는 자신의 목울대를 부여잡고 섧디섧게 울었다. 차라리 도둑질하다가 잡히거나 사람을 칼로 찔렀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백번 낫지. 어떻게 머리가 온통 파뿌리이고 새우처럼 등 굽으신 노모에게…… 자식놈이란 게 뭐 보여드릴 게 없어서 기껏 사십대 몸으로 앞서 눈감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한 바 없고 결코 그러고 싶지 않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무슨 남의 것을 약탈해 호의호식하며 살았다고…… 천벌 같은 사형선고를 내린단 말인가? 왜? 왜? 누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어떤 이유로? 왜 연로하신 홀어머니에게 내가 원치 않는, 내가 죽어도 되고 싶지 않은 후레자식을 만들어버리는가. 도대체 누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봐라.
일이 아주 고약하고 잘못됐다. 야! 이 신이고 뭐고 나쁜 개새끼들아! 씨발놈들아! 사람 정말 잘못 짚었다.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다시 눈 뜨고 봐라. 난 아니다. 다시 한 번 내 살아온 것을 다시 확인하고 점검해 봐라. 난 그저 지극히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지금껏 아내와 두 자식 공부 시키고 늙으신 어머니 가끔 용돈 드리고 그렇게 먹고살려고 발버둥질 친 거 그게 다다. 그게 죄냐?
이 육시럴 개잡것들아!
사는 게 이토록 급습이더냐. 삶이 이토록 허술한 것이더냐. 마치 길 가다가 누군가와 어깨가 툭 스쳤는데 그것도 인연이라고 당신이 이번에 죽을 차례군, 하고 생짜를 부리는 거와 뭐가 다르냐. 복불불인데 뭐 어쩌겠냐고? 좋다. 그렇담 사람을 수십 명 죽인 흉악무도한 연쇄살인범조차 최소 몇 년은 살다가 형이 집행된다. 근데 뭐라? 삼 개월? 육 개월?
에라이 이 개 같은 눈도 못 뜬 저승사자 놈들아! 난 아버지다. 두 아이의 아빠다. 너거들은 애 한번 안 키워본 고자고 내시들이냐!
그는 발버둥질 치면서 고래고래 울분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거칠게 울음을 사방의 벽에 뿌렸다. 하지만…… 이게 어디 싫다고 해서 뿌리칠 수 있는 것이며 감춘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것인가. 삶에 이미 죽음의 얼룩이 선연하게 묻어버렸다.
그 얼룩은 검은 반점이 되어 번져서 삽시간에 삶을 검게 못쓰게 만들 것이다. 존재를 가볍게 지우고 삼킬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거…… 몇 번이고 골백번이고 다시금 생각해도 너무나 가볍고도 너무나 우습지 않은가.
병이 몸속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간이 시커멓게 변하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몰랐을 땐 실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돈 벌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내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뇌와 고민으로만 머리통이 터질 것 같았다. 매일매일 귀가하는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었다.
하지만 이 해가 가기 전…… 어쩌면 이 겨울조차 넘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된다니…… 그야말로 유리잔보다 깨지기 쉬운 삶이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가 삶에게 그처럼 무모하고 완강한 욕망을 주입시켜 놓았느냐.
왜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사람을 속였는가. 누가 목숨은 나이 팔십까지 가서야 바람에 펄럭거리는 게 보인다고 했는가. 비탄에 젖어있는 나를 봐라.
나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아무 것도 아니잖는가.
그는 슬프고 너무나 괴로웠다. 기진할 만큼 대성통곡하고 나자 이 세상이 텅 비어버렸다. 머릿속조차 눈 내린 것처럼 하얗게 비었다. 그는 구석진 노래방 바닥에 실신해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혼자 노래하던 기계도 멈추고 그의 거친 숨소리도 멎은 듯 했다. 극렬하던 감정이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버린 듯 너무나 고요했다.
색색의 동그란 네온이 저혼자 크고 작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구석진 노래방은 진공상태로 변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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