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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산고을에 대홍수가 나 그 자리가 호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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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93> 화진포의 팔경과 시문학 고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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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13일(수) 15:30 17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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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옛 문헌 속에 비친 화진포
1. 화진포의 역사적 흐름
지금의 고성군은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고성군과 간성군으로 나눠졌으며 간성군의 속현(屬縣)으로 열산현(烈山縣)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찬지리서《여지도서(1759년)》에 의하면 당시 9개면 77개리 가운데 열산리가 오늘날 현내면(縣內面)에 속했으며 인구는 24호구에 125명(남36명, 여89명)이었다.
이후 1897년에 간성군수 권세규(權世圭)에 의해 제작된《수성읍지》에 의하면 간성군 8개면 61개리 가운데 열산리가 이때까지 존재하고 있는 기록된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현재 전승되는 화진호의 다른 이름인 열산호는 열산리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는데 열산현은 고려 때 명칭이다. ‘열산(烈山)’을 ‘화진(花津)’으로 바꾼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명유래는 호수 주변에 피는 많은 꽃들과 관련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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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진포(열산호) 형성과 관련된 문헌에는 ‘옛날 큰물이 나서 열산 골짜기를 휩쓰니 새 고을을 옮겨 산기슭에 설치하였다. 전의 고을은 물속에 잠겨 있는데 갠 날 파도가 조용하면 담장과 집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 강원고성신문 | | 1454년(단종 2)에 출간된 관찬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에서 간성군(杆城郡)의 속현(屬縣) 1이니 열산((烈山)이다. 본래 고구려 승산현(僧山縣)인데 소물달(所勿達)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이 동산(童山)으로 고쳐서 수성군(守城郡)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고려 때에 열산현(烈山縣)으로 고쳤으며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는 봉산(鳳山)이다.”라 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열산현(烈山縣)으로 존재했다가 조선시대에 단종(端宗)이후 어느 시기에 폐지된 것으로 1530년(중종 25)에 발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간성군 폐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현내면(縣內面)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열산호가 생긴 홍수 설화를 관찬·사찬지리지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45권의 간성군, 산천조= “열산호, 열산현 동쪽 2리에 있다. 큰 호수 있어 둘레가 수십 리인데 언덕과 골짜기를 감싸고 걸쳐 있으니 여러 호수에 비하여 제일 크다. 민간에서 전하여오는 말이 옛날 큰물이 나서 열산 골짜기를 휩쓰니 새 고을을 옮겨 산기슭에 설치하였다. 전의 고을은 물속에 잠겨 있는데 갠 날 파도가 조용하면 담장과 집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②《수성지(水城誌)》의 산천조= “화진포, 일명 열산호, 열산 동쪽 2리, 둘레가 수 십리, 북쪽의 호수 중 가장 큰 호수,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열산현으로 있을 때 이 호수 뒤에서 대홍수가 범람했을 때에 이 호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도 맑게 개인 날 바람 없이 잔잔할 때 물 속을 내려다보면 담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호수가 깊고 검게 보여 수심을 알 수 없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여름에는 혹 천둥 번개가 친다고 전해온다. 용이 이 호수로 옮겨와서 파도를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배를 호수 가운데로 끌어당겨 비바람을 일으키는 까닭에, 사람이 감히 옷을 함부로 벗지 못한다. 영동 해변의 많은 호수는 모두 땅속으로 해수가 이어져 있다. 홍수의 범람으로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설과 호수를 내려다보면 말과는 모순이다.” 그래서 지금은 신빙성이 없고 다만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할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③《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간성군 산천조= “열산호, 열산페현 동쪽으로 한 2리가량 되는 곳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둘레의 길이가 수 십리가 되고 산언덕과 골짜기가 두루 잠긴 것이 여러 호수들 중에서도 제일 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큰물이 져서 열산 골이 잠기는 바람에 새로운 현을 산언덕에 옮겨지었고 옛 현은 물속에 침몰되었는데 날씨가 좋고 물이 맑을 때면 담 벽이나 집들이 의연히 보인다고 한다.”
④《여도비지(輿圖備志)》간성군 산천조= “열산호, 포진호(泡津湖)라고도 한다. 열산 옛 현 동쪽 2리에 있다. 둘레가 10리 남짓 된다. 구릉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다른 호수에 비교해 보면 가장 크다.”
상기 네 편의 문헌을 분석하면 열산 고을에 대홍수가 나서 그 마을자리가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청정한 날에 호수 아래 담장과 집의 모습이 보인다고도하며, 이 호수로 용이 옮겨와서 조화를 부린다는 화소도 첨가되었다. 따라서 화진포 형성에 있어 홍수설화는 천지개벽(天地開闢)설화와 동궤의 신화로서 그 근원이 오래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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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
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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