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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란 이름은 강원도관찰사 구사맹 이후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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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94> 화진포의 팔경과 시문학 고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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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28일(목) 16:32 175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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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밖에 화진포(花津浦)의 여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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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여비고(東輿備考)에서 본 열산현(烈山湖)의 지도. | ⓒ 강원고성신문 | |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고성 화진포는 영동지역 최대의 호수로서 지금 사용하는 이름 외에도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는 문헌을 찾아 나타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관찬 및 사찬 지리지, 읍지, 관방 지도, 문집 등에서 화진포와 더불어 그에 대한 내용을 단편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며 이들 각 문헌자료의 관련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列山湖 : 1483년(성종 14) 강원도 관찰사 성현(成俔)의 시에 이름이 처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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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열산호(烈山湖)라 표시한 지도. | ⓒ 강원고성신문 | | ㉡烈山湖 : 관찬·사찬지리지에 기록.(예,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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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진포(花津浦)라 표시한 지도. | ⓒ 강원고성신문 | | ㉢花津浦 : 1589년(선조 22) 강원도 관찰사 구사맹(具思孟)의 시에 이름이 처음 기록.
㉣花津湖 : 이세구(李世龜)41)의〈동유록(東遊錄)〉에 1700년(숙종 26)기록.
㉤和眞浦 : 이여규(李汝圭)42)의〈북정일기(北征日記)〉에 1756년(영조 32)기록함.
㉥華津浦 : 박경응(朴慶應)43)의〈관동명구전후소유처(關東名區前後所遊處)〉에 기록함.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간성군지도(杆城郡地圖)에 1759년(영조 35)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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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포진호(泡津湖)라 표시한 지도. | ⓒ 강원고성신문 | | ㉦泡津湖 : 각종 지도類에서 기록.(예, 대동여지도, 청구도, 동여도, 해동지도 등) 등으로 나타난다.
화진포의 어원(語源)은 구사맹(具思孟)의 ‘수성팔절(絶)’ 중에 한 곳인 ‘화진포’의 한시에 처음 시작돼 현재까지 명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 1603년(선조 36) 간성군수 최립의 시에서도 같은 제재를 사용하였으며 화진포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편의 ‘백화담수(百花潭水)’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관찬지리지·읍지 등에서 그 유래가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열산(烈山)’ 현(縣)의 이름 따라 호수에 붙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마련인데 고려 말 이곡(李穀), 정추(鄭樞), 이첨(李詹) 등이 남긴 시에는 ‘열산현(列山縣)’에 읊은 내용이 주로 이루며 조선 초기에 문신 허종(許琮)까지 영향을 받아 시제를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1483년(성종 14) 강원도도관찰사 성현(成俔) 시에 ‘열산호(列山湖)’ 호수 지명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그 이후 조선중기에 와서는 동음(同音)에 한자만 바뀐 ‘열산호(烈山湖)’가 대중화되면서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구사맹(具思孟)이후에 ‘화진포(花津湖)’가 정립(定立)하게 된다. 이것을 뒷받침 해주듯이 조선 중기의 문신 허적이 쓴 시에서는 “열산호가 바로 화진포이다. 옛날 현이 이 포에 빠져버렸다.(烈山湖卽花津浦 昔縣陷爲此浦)” 고 문집《수색집권5(水色集卷之五)》에 남기고 있다.
이밖에 화진포와 관련된 이름은 동일한데 ‘포(浦)’가 ‘호(湖)’로 바뀐 화진호(花津湖)가 있다.
1631년(인조 9) 10월 8일 부임해온 간성현감 택당 이식(李植)의 《수성지》〈산천〉조에서도 ‘화진호’기록하고 있으며, 1700년(숙종 26)에 이세구(李世龜)의〈동유록(東遊錄)〉에서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같은 동음(同音)에 한자가 전혀 다르게 쓴 이여규(李汝圭)의 북정일기(北征日記)〉는 1756년 9월 16일에 집을 떠나 10월 21일 함경도 북청(北靑)에 도착하기까지 36일간의 여행기록이다. 여름에 그의 부친이 함경남병사의 좌막(佐幕, 종사관)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부친을 뵈러 가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北靑까지 가는 여정의 기록과 많은 시문을 담고 있어 당시의 지리 및 문학 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료이다.
1756년(영조 32) 10월 8일에 화진포를 지나면서 그는 한자의 뜻이 전혀 다른 ‘和眞浦’로 표현하고 있다. 추측으로 보아 화진포의 설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름이 아닐까 한다. ‘이화진’이라는 인물의 이름과 동일성이 있으며 화진포의 정경을 작가 임의대로 뜻을 달리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같은 이름에 또 하나의 ‘화(花)’가 ‘화(華)’로 바뀐 데는 박경응(朴慶應) 의 〈관동명구전후소유처(關東名區前後所遊處)〉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 작품은 관동명구의 전후하여 놀던 곳을 기록한다는 제목을 붙여 기록한 내용인데 강릉 시험관에 근무하면서 잠시 시간을 내어 금강산 유람 길에 오른다.
이곳에서 그가 남긴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내 동쪽으로 향해 가서 ‘華津浦’ 정자에 이르니 곧 그윽하고 깊숙한 곳이다. 落落長松이 네 변에 서있고 정자 앞의 호수가 깊어서 밑이 보이지 않으며, 사면이 넓고 멀어서 海口에 가득하니 이 역시 기승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여러 지도에서도 이와 같이 ‘華津浦’ 지명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1759년(영조 35)에 작성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간성군지도(杆城郡地圖)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기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것으로 대체해 사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름인 포진호(泡津湖)은 현재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地圖類에서 가장 많이 등장되는 지명이다. 조선 후기의 지도에서는 거의 사용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16권, 간성군편〈산수〉조에서도 이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烈山湖는, 포진호(泡津湖)라고도 한다. 열산 옛 현 동쪽 2리에 있다. 둘레가 10리 남짓 된다. 구릉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다른 호수에 비교해 보면 가장 크다.”
이외에도 화진포의 지명을 ‘화진담(花津潭)’으로 표현한 1679년(숙종 5)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신후재(申厚載)가 시제(詩題)를 썼다. 착오로 일부에서는 줄여서 ‘화담(花潭)’을 화진포 지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각종 지리지, 문헌에서도 간성고을 남쪽 20리에 있다고 하였다. 花潭은 전혀 무관한 지명이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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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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