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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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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08일(월) 14:12 17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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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류경렬 칼럼위원(간성향교 수석장의) | ⓒ 강원고성신문 | 胡詞亂想 貪圖供養 名實不敷 喜新厭舊.
호사난상 하고 탐도공양 하며 명실불부 하고 희신염구 하느니라.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생각을 어지럽히고 탐심으로 공양을 도모하며 이름 뿐 실상을 펴지 못하고 새것은 좋아하고 옛것은 싫어하느니라.”
애어(愛語)란 따뜻하고 사랑스런 말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는 언어의 공동체라는 지적처럼 인간관계에서 언어의 기능은 매우 큰 비중을 갖는다. 사실상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언어는 사회로부터 그 생명력을 얻는다. 여기서 말하는 애어란 남에게 기쁨을 주는 말[可喜語] 조리에 맞는 말[可味語] 환한 얼굴로 하는 말[和顔語] 등을 말한다. 이러한 애어의 반대말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말이다. 이러한 말은 자신을 망치게 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줄 것이다.
이행(利行)이란 자신을 뒤로하고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이타적(利他的)인 행위를 일컬음이다. 요즘 표현을 빌리면 공익(公益)을 도모하는 것 또는 사회봉사의 개념이 이에 포함된다. 자신의 삶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다. 우리 사회는 점차 자기 위주의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행의 정신이 요구된다.
동사(同事)란 남과 더불어 고락(苦樂)을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한다. 즉 스스로를 단체에 동화(同化)시키는 능동적인 행동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장점을 보기보다 언제나 그 사람의 결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단체에 들어가도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거나 분란을 일으켜 집단의 결속을 와해시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고 국민의 결속과 평화가 유지되지 못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전자의 사무량심은 자신의 거룩한 마음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자리적(自利的) 수행도(修行道)라고 할 수 있고, 후자의 사섭법은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타적(利他的) 실천행(實踐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사섭법은 한마디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타적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작은 배려는 큰 감동을 가져다준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됨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생각을 어지럽히고 탐심으로 공양을 도모하며 이름 뿐 실상을 펴지 못하고 새것은 좋아하고 옛것은 싫어하느니라. 이런 사상이 현금에 만개하는 우리 사회를 개탄하며 이러한 사고의 소지자들을 사회에서 멀리하여 참된 인간 참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참인간이 길러 질 때 우리의 이상현이 되어 질 것이며, 복된 나날이 우리 앞에 다가서리라.
옛것을 그대로 추종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준 교훈을 잘 받아들여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므로 인하여 현실과 미래의 길잡이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되새겨 본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생각을 어지럽히고 탐심으로 공양을 도모하며 이름 뿐 실상을 펴지 못하고 새것은 좋아하고 옛것은 싫어하느니라. 이는 곧 자기가 이지러짐을 볼 것이며 패망의 길로 도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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