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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28>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6년 09월 06일(화) 11:09 178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내사마 언제는 니 혼자 바깥에 나가 동동걸음질 치문서 돈 벌러 다니능 게 안돼보였다카이. 근데 생각을 해보니 물론 부부가 손 맞춰 같이 벌문 훨 수월하긴 하다만서도 사람은 다아 자기 일이 있꾸 자기 맡은 일이 있는 기라. 돈 욕심 내다보문 뭔가 사단이 꼭 나재……. 그저 니 한 몸 고생하는 거로 가족이 무탈하문 그기 최고인 기라……. 어라, 이 감은 너무 물러서 도시 곶감은 못 맹글겠구만. 자, 홍시는 아니어도 원래 단감이니께로 한번 묵어보거래이.
노모가 껍질이 말랑해진 감을 건넸다. 그는 두 손으로 받아서 시원스레 한 입 베어 먹었다. 떫은맛이 약간 배였지만 주홍빛 속살은 부드럽고도 달콤했다.
-가만 있그라…… 오늘 저녁은 뭘로 하문 좋겠노. 올만에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좀 구벌까, 아니문 요기 윗층 208호 할미가 담북장을 맛있게 떠놨다고 하던디 고걸 좀 얻어다가 두부하고 파 총총 썰어넣고스리 팔팔 끓일까나. 근디 고게 썰어넣을 돼지고기 남은 기 냉장고에 들어있을랑가 모르겠구만.
-그러지 마시고요. 간만에 외식 한번 하시죠 뭐.
-외식? 뭘 묵어?
-한우 한번 먹죠 뭐. 제가 이럴 때 어머니랑 오붓하게 등심이든 꽃등심이든 안 구워먹으면 언제 먹겠습니까.
-육깐 고기가 모 맛있던? 괜시리 턱없이 비싸기만 하제.
-제가 명색이 부장인데 어머니 고기 못 사드릴까봐서요? 저녁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외식하십시다. 저도 모처럼 자식노릇 해보려는데 그걸 내치시면 섭섭합니데이.
-흐으응…… 내사마 육깐 보다도 잘난 아범 얼굴 불쑥이라도 보여준 기 백번 흐뭇하지러.
-아무튼 그렇게 하시죠. 담북장은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고요.
-그랴? 니 뜻이 정히 그렇다문 고렇게 하기로 하제이. 내가 요 며칠 전에도 할마시들이랑 돈을 가부시키혀서 물 건너 들어온 양깐 고기 잔뜩 먹고 왔었는디. 오매라, 오늘도 애비 덕분에 내 속이 호강하게 생겼꾸마니라.
입맛까지 쩝쩝 다시는 노모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글구 조게 보일러실 방 함 열어보거래이. 나가 올 농사지어서 잘 말린 거 모두 그따 차곡차곡 안 쌓아놨띠나.
그랬다.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방에는 감자 상자, 고구마 상자, 양파 상자, 붉은 고추 말린 푸대 등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모두 씨알이 굵고 잘 여문 것들이 단단한 상자에 들어차 있었다.
-안 그래도 나가 조만간 부칠려고 했꾸만서도. 택배 하는 이 양반이 늙은인지라 여엉 굼뜨는 기라. 그라지 않았다문 이미 보내구도 남았을 틴디. 아무튼 잘 됐지러. 수범이애비가 때 맞춰 잘 들러줘서. 택배비가 구냥 굳어뿌릿으니께.
저녁나절에 그는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H읍사무소 뒤편에 위치한 S아파트를 나섰다. S아파트는 H읍에서 아파트로는 제일 먼저 세워졌다. 이십 년도 더 된 아파트라 낡고 허름했다. 전부 다 십팔 평 평수로 두 동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칠십여 가구 입주민들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아이구, 기별도 없이 우리 수범이애비가 별안간 집에 들렀구마니라. 출장 왔다가 일 자알 끝내구 말여. 으응, 혼자 있는 내가 답답할까 싶어 차로 바람 한번 쐬준다고 안 이러나. 지 애비 산소는 이미 들렀다 왔다니께 한번 가마 타고 유람하는 기분으로 휘돌아볼 참이여.
노모는 아파트 구내에서 만난 친구 할머니들을 보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식이 애써 번 피 같은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쓸까싶어 차로 십 분 거리인 이웃한 J시에 한우고기 먹으러 간다는 얘기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 친구분 몇이라도 동행시키고 싶었지만 노모 성격을 아는지라 운전석에서 내려 인사만 깍듯하게 했다.
H읍을 가로지르다가 읍에서 영어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동창회장을 만났다.
-어? 어떻게 내려와서는 전화를 안 했냐?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아…… 방금 도착했다. 안 그래도 어머님 저녁식사 대접해드리고 난 뒤 너한테 전화 넣으려고 했어. 차라도 한 잔 하자고.
-그래. 그러면 식사 마치는 대로 전화해. 안 그래도 오늘 옛장터식당에서 동창들 모이기로 했거든.
-왜? 무슨 날이냐?
-응, 웅천이 알지? 머구낭골 쪽에서 돼지 크게 키우던. 웅천이가 요번에 돈사 다 정리하고 울산 쪽으로 낼 이사가거든. 아무튼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머님과 즐겁게 식사하고 꼭 전화해라. 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얘기가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그는 동창회장에게 전화 주겠다 약속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많이 드세요. 꼭꼭 잘 씹으시고요.
-아히구 나만 어떻게 몰아서 묵겄냐? 애비 니도 어서 많이 묵거라. 역시나 이게 맛있꾸마. 육회란 것이 본디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어서 좋다 안카나. 근디 육회 한 접시도 양이 많아 배가 엄청 부르구만도 등심 이 인분은 어떻게 다 묵냐? 먹고 나서 봐가며 천천히 시키든지 하지러.
-사람이 둘인데요. 이 인분이라 해도 양은 얼마 안돼요. 근데 어머니 틀니나 치아엔 무슨 문제없지요? 제가 지호한테 어머니 치아를 정기적으로 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동창생 중에 유일한 의사인 김지호는 J시에서 ‘김치호치과’를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그랴. 안 그래도 지난 달 말경에 치과 쪽에서 보낸 차가 집앞까증 와설라무네 낼 태우고 가서 정검을 받고 왔꾸마. 별 이상 없고 좋다고 카더라. 그 의사양반한테 전화는 넣어줬디나?
-아뇨. 만나면 한꺼번에 고맙다고 하면 되죠 뭐.
-아니구만. 신경 써주는 그기 얼마나 고마운디. 전화라도 잊지 말고 넣어주거라.
-네, 여기…… 요게 아주 맛있게 잘 익었습니다. 어디 제가 쌈 한번 싸드릴까요? 제 식대로요.
-아히구, 그렇게 괴기를 두어 개 씩이나 얹으면 목이 멕혀 어떻게 넘긴다냐?
-핫하하하, 그렇네요. 그럼 한 개만 빼겠습니다. 평소 어머닌 채소식단이어서 기름진 거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충분히 드셔줘야 됩니다.
-아니구만. 요즘처럼 괴기가 흔해빠진 시상이 어디 있다노.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꼭 노인 생신상 있쟈, 결혼식 있쟈, 마을 잔치에다가 노인잔치 있쟈, 교회에서도 자주 돼지를 잡쟈, 그러다보문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괴기를 묵게 되는구만. 나가 직접 정육점까지 가지 않아도 말여.
-그렇네요.
그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쯤 남은 어머니 컵에 사이다를 따라드렸다. 어머니는 고기 드실 때 사이다를 함께 마신다. 그는 아깝다며, 우리 자식 피 같이 번 돈으로 사주는 거라며, 남은 한 점의 고기까지 깨끗하게 다 드시는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코끝이 찡해왔다.
회사에서 물러난 그 즈음 말이다.
도시 속을 전전하고 배회하며 뭘 해볼까 고민했었던 것보다는 이렇게 고향에 내려와 어머니 모시고 농사를 짓고 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들 중에도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어 적잖은 수입을 올리는 만큼 고향에서 유기농 농사나 하우스 재배를 해볼 생각을 했다면 선택의 폭은 넓어졌을 것이다.
자식의 학업 때문에 서울을 떠난다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퇴직금 전부를 아내와 자식의 몫으로 남겨두고 혼자 고향에 내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그가 웬만큼 자리를 잡아놓은 시골생활을 하게 된다면 결사반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농사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고 결코 부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아이 대학등록금을 해결해 줄 교육보험을 십 년 넘게 들어온 만큼 학비에 큰 부담이 없다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걸어가신 길을 자식이 못 따라갈 것도 없다. 그렇게도 생각해 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귀향도 낙향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뒷걸음질 쳐서라도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뒷걸음질 몇 번 치기도 전에 천 길 낭떠러지가 가로놓여 있을 테니까.
-하이구마. 배가 터지는 줄 알았네. 안 묵던 소화제를 다 먹어야 될 지경이구마. 내는 배 부르문 초저녁잠을 천하없어도 이길 수 없데이. 누가 달랑 업구가도 모를 만큼 잠이 깊이 드는 기라. 내가 니 잠자리 봐둘 터이니 친구들 만나고 와서 편히 누워자거라.
어머니를 집에다 모셔드리고 한 시간 가량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는 동창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시며 반쯤 졸고 계셨다. 그는 제 손으로 어머니를 이부자리 위에 눕혀드렸다.
-그저…… 내는 잠이 많아 탈인 기라. 초저녁잠만은 도시 배겨낼 수가…… 없제이. 너랑 야그도 더 많이 해야 하는디…… 우짠 잠이 비처럼 쏟아진다카이.
-잠 잘 주무시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복이라고 하잖아요. 편히 푹 주무시고 계세요. 전 친구들 좀 만나보고 올게요.
-그래라. 술 너무 많이 묵지는 말고…….
-네…….
그는 어머니 이불을 다독거리고 여며드렸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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