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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1>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7년 02월 13일(월) 10:33 188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어머니

어머니…… 코를 연하게 고시며 잠들어 계신 모습이 한없이 정겹습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단잠을 깨실까 싶어 저는 전설 같은 어머니의 오랜 세월을 들여다봅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지켜봅니다.
밤바람이 드셉니다. 아파트 일 층 화단가 나무들이 창가에 붙어서 마른 나뭇잎들을 부비며 수런거립니다. 헤어짐이겠지요.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나무는 나뭇잎들에게 가는 영양분을 차단해 오는 겨울을 준비합니다. 찬바람은 모든 만물의 헤어짐의 전조이고 예고입니다.
삼라만상 자연의 순리처럼 어머니의 숨결과 제 숨소리가 닮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절 낳아서 제가 자식이 되었고 아들과 어머니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당신 앞에선 세상 다할 때까지 아들인 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뻐근하게 벅차오릅니다. 남에게 해코지 할 줄 모르시고 오로지 땅에다가 땀방울만을 뿌려오신 당신의 주무시는 모습은 넉넉한 대지를 닮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으로 인해 전 참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많이도 가졌습니다. 그 어린 시절이 어제인 듯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더운 여름날이면 어머니는 저녁마다 제 등에다가 시원한 펌프물을 촬촬촬 부어주셨더랬죠. 그러면 아무리 무더운 여름밤이어도 잠을 푸욱 잘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혹시라도 자라는데 영양분이 부족할까 싶어 어머니는 아침마다 닭장 속 횃대에서 온기 따스한 계란을 꺼내셨습니다. 달걀 양 끄트머리를 앞니로 깨트려 눈비비고 선 제게 쑤욱 내밀곤 하셨더랬지요. 쭈욱 빨아 먹거래이. 전 비리다고 싫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민 손을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날계란을 잘 먹어야만 키도 쑥쑥 크고 머릿속도 기름지고 야무지게 익는다 하셨습니다. 저는 몸도 튼튼해지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다고 하기에 하는 수 없이 계란꽁무니를 쪽쪽 빨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빨아먹은 달걀을 다시 건네받아서는 당신 입으로 가져가 남김없이 빈 껍질을 텅텅 소리가 나도록 빠셨습니다. 네모진 제 양은 도시락에도 계란후라이가 늘 밥 위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우리 집 살림 형편이 시골에서 중간도 못 미쳤지만 제 도시락만은 언제나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맛나고 정성스럽게 싸주셨더랬죠.
당신께선 평생 늘 기운 속옷만을 입고 사셨지만 제 팬티와 런닝셔츠만은 언제나 깨끗한 걸로만 입히셨습니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학급반장이 청결치 못한 옷을 입으면 동무들에게 책잡힌다며 매일같이 손빨래를 하시고 구김이 없도록 다림질까지 해주셨었죠.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육백 평이 넘는 넓은 밭에다가 수많은 채소를 혼자 길러내셨습니다.
매일의 힘든 노동 속에서도 제 밥상에 신경을 많이도 쓰셨습니다. 밥상 받는 대로 인생이 풀리는 거라며 제가 혼자 먹는 밥상에도 언제나 데운 국과 갓 만든 반찬을 얹으셨습니다.
이른 봄부터 찬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어머니 손끝에서 호미와 괭이는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해마다 어머니의 밭에는 상추와 쑥갓, 배추, 무, 고추, 부추, 열무, 가지, 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 옥수수, 콩, 감자, 고구마, 땅콩 등 셀 수없이 많은 밭작물이 싱싱하고도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수확하셔서 짚으로 한 단씩 채소를 묶어내 커다란 방티에 그득 담았습니다. 이틀에 한번 씩 어머니는 리어카에 밭작물을 싣고 이웃한 J시 상설시장에 가셨습니다. 시장 채소전 길거리에 짚을 깔고 앉아서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나온 여인네들에게 푸성귀들을 파셨습니다. 사 킬로미터 남짓한 그 길을 어머니께서는 이십 년 넘게 리어카를 끌고 왔다갔다 하셨더랬죠.
저무는 해를 싣고 오던 어머니의 빈 리어카 안에는 언제나 제게 줄 맛난 먹을거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풀빵 한 봉지나 호떡, 산도와 비스킷, ABC과자, 돈을 많이 버신 날에는 양과자와 달콤한 젤리가 들어간 베이커리 빵도 사오셨습니다. 해거름녘이면 저는 그걸 받아먹는 설렘에 산언덕에 앉아 J시에서 오는 길 끝을 한없이 지켜보곤 했더랬죠.
어머니는 평생 돼지와 소도 키우셨습니다. 밭의 잡초를 뽑다가도 때가 되면 우물가 옆에 받아둔 쌀뜨물과 과일껍질을 헌 양동이에 담아다가 딩기가루를 섞어 돼지 먹이통에 부었습니다. 근처 산기슭과 논두렁 밭두렁에서 자라는 풀들을 꼴 베어와 작두로 짚과 함께 썰어서 쌀겨가루와 함께 소 여물통에 삼십 년도 넘게 부으셨습니다.
과수원에 꽃 피는 5월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복숭아밭으로 사과밭으로 일당 일을 나가셨고 초겨울이면 읍내 고추가게로 나가 마른 고추의 꼭지를 따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손 놀릴 여유가 어딨냐며 벽돌공장에 나가 갓 찍은 시멘트 벽돌을 드넓은 평지로 들고 가 줄 맞춰 내려놓아 말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코에 단내가 나도록 고된 일이었지만 어머니께선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벽돌공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 온몸에는 땀으로 쉰 냄새가 언제나 가득했었지요.
그렇게 힘들게 어머니께서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신 이유는 오로지 제 학비 때문이셨습니다. 특히나 제가 대학 다닐 때는 밤잠도 거의 못 주무시고 광에다가 틀을 갖춰놓고 밤새워 명주까지 짜실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저는 그저 염치가 없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감기몸살이 들고 두통이 와도 약 한 번 제대로 드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내 몸인데, 내 몸한테 지면 안 되지. 몸져 앓아누우셨을 때도 뜨끈뜨끈하게 등 지지며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어김없이 낫는다며 어머닌 약 사오란 말씀은 제게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본인한테 드는 돈은 모두 헛돈이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제일 행복해하신 시간은 저녁을 일치감치 해먹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제 등을 가끔씩 바라보며 바느질하실 때였습니다. 나는 이 시간이 질로 좋쿠마. 시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대이, 그렇게 자주 말씀하셨더랬죠.
-니 배 안 고프나? 안 고프다고? 어데…… 배고플 때가 됐지러.
겨울밤이 얼마나 긴데로.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밀쳐두고 정지에서 곶감을 한 쟁반 담아오시거나 광문을 열어 사과나 생고구마, 하다못해 당근과 싱싱한 청무우를 가져와 제 공부방 바닥에 앉아 시퍼런 부엌칼로 깎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고구마며 무를 깎아내리는 그 서걱거리는 소리…… 그 소리는 깊은 겨울밤 흙담벼락에 달아둔 시래기가 찬 바람에 흔들리며 나는…… 스르르륵 쓰륵쓰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겨울밤을 가장 따스하고 눈물겹게 추억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어무이는 내가 뭐 됐으면 좋겠노?
-글씨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멈추고 장래의 어떤 내 모습을 그려보며 금방 황홀해지는 표정이셨습니다.
-까만 법복 입고 나무방맹이 두들기는 판사가 되도 좋것고 눈 맹키로 하얀 까운 입고 청진기 목에 두른 의사선생 되는 것도 참 좋긴 하것지. 하지만서도 내는 니가 다른 그 무엇이 돼도 다 좋대이. 참말이구마. 내는 앞으로 니가 될 꺼시 질로 좋을 꺼구마. 선상님이어도 좋구 커다란 회사를 댕겨도 좋구…….
어머니는 제가 중요한 시험을 치른다 싶으면 뒤뜰 커다란 감나무와 큰 독들이 있는 곳에 정안수를 떠놓고 이른 새벽마다 촛불 한 자루를 밝히셨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민호가 지 공부한 만큼은 꼭 성적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소. 노력한 만큼만 결실을 낼 수 있도록 해주시소.
어머닌 그런 사람이셨습니다. 무조건 좋은 것, 번쩍이는 것, 분에 넘친 것을 바라신 적이 없었고 제 노력 이상의 그 무엇을 원해 비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무조건 잘되길 비는 것은 욕심이며 그 욕심이 자식을 결국은 망칠 거라고 믿으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과 내가 모자로 엮여 한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에 늘 행복해 하셨습니다.
아들이 이류대학에 들어갔어도 기뻐하셨고 졸업 뒤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에도 말없이 지켜만 보셨습니다.
-니 생각과 맴이 가장 중요하지러. 니가 자알 판단혀서 결정하거래이.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비치지 않으셨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촌에서만 살아온 나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너보담 잘 알겠노? 니가 백번 더 잘 알것지러. 나가 누구보다도 자식인 니에 대해서 잘 아는데 뭘 걱정하겠노. 야무진 니 생각대로만 하면 된대이. 내는 무조건 니 편이고 닐 믿는다아이가.
그렇게 어머니께선 자식을 믿어주셨습니다.
결혼할 때에도 어머니는 며느리를 대견하다 늘 칭찬하셨습니다. 홀어머니에 외아들 조건을 감수해준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하셨습니다. 수범이와 승윤이가 태어났을 때도 니가 니 살과 피로 금쪽같은 자식을 빗어내느라 애썼고 장하다며 어머닌 산모 몸이 야물어질 때까지 살갑게 정성스런 수발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언제였던가요. 과수원 농사를 크게 짓는 어느 돈 많은 영감님이 어머니를 탐내셨습니다. 내도 혼자 된 지 오래고 그쪽도 혼자 된 지 오래니께로 맘 같이 먹고 남은 인생 함께 잘 살아보자며 매파를 부쳐왔을 때 어머니는 일언지하에 딱 잘라 거절하셨습니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아들이 있고 착한 며느리에다가 토깽이처럼 귀엽디귀여븐 손주가 둘이나 있는 낼 보고 뭐라? 그깟 돈 내 거도 아니니께 부러버 할 껏도 없고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 하시소. 그라고 나중에 나가 죽어 민호아버지를 무슨 낯짝으로 볼 수 있것소. 살아 속정이 깊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란 것이 남자나 여자나 다 근본이 있고 본분이 있는디 한 짝이 눈 앞에 없다 해서 헌 신발짝 맹쿠로 자식 함께 낳은 천륜을 내던져 뿌리면 그기 어디 사람이라 할 수 있것소? 하이구나 고래등 같은 집을 내준다 해도 내는 싫소. 사람 사는 기 빤하제. 여즉까지 살았는데 모른다문 사람도 아닐 거고. 조기 한 짝 밥 숟갈에 더 얹어먹고 비단금침에 누워 잔다한들 어디 내 맴이 편하겠소. 내 팔자 고칠 생각 했으문 진작에 했지러. 그 영감탱이 늘그막에 애먼 사람 말로 욕보이덜 말고 냉수 먹고 후딱 속차리라 꼭 좀 전해주시소.
어머니는 그렇게 매파 등을 떠밀어 내치셨습니다.
내는 조금도 걱정 말거라. 내는 본디부터 니 거름인 기라. 내는 그저 너라는 자식이 생겨난 것 하나만으로 부족함 없이 매사가 감사한 기라. 어머니는 그렇게 한평생 자신을 주장하신 일 한 번 없이 자식의 삶 뒤에서 묵묵히 서계셨고 응원하셨습니다. 그렇게만 평생토록 삶을 주름 지우고 흰 머리가 뒤덮이고 허리가 휘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신 어머니가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잠들어 계십니다.
그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어머니의 휜 척추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가 천천히 뗐다.
어머니…… 전 왜 이다지도 어리석을까요? 지난 칠순잔치 때 말입니다. 네 아부지도 없이 혼자 받는 잔칫상이 안 그라도 염치가 없어 죽것구만서도 어떻게 귀한 내 자식 등을 가마처럼 부리겠노. 내는 안 탈란다. 구냥 큰 절 받는 거만으로도 내 분에 족하고 넘치는구마. 어머니가 끝끝내 그렇게 만류하셨어도 그때 어머니를 제 등에 업어드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못 한 게 이렇게 한이 됩니다.
저를 낳고 기르시며 어머니는 수천수만 번을 절 업으셨을 텐데. 칭얼거리는 어린 절 업고서 사래 긴 밭을 호미로 수없이 매어가셨을 터인데. 전 나이 사십대 후반이 돼가도록 어머니를 한 번도 업어드리지 못 했다는 사실에 이렇게 속이 아픕니다.
살이 다 빠져나가 새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못 업어드린 것이 천근만근 마음 무겁습니다. 물론 낼 아침이라도 어머닐 당장 업어드릴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야가 야가 갑자기 왜 안 허던 짓을 한다노? 니 무슨 일 있는 기가? 퍼뜩 말해 보거래이. 니 무슨 일 분명히 있쟤?’ 그렇게 그 즉시 눈치라도 채실까 싶어 도저히 업어드릴 엄두가 안 납니다. 평소에 제가 좀 더 어머니에게 응석도 부리고 재미나게 해드렸었다면……. 어화 둥둥 우리 엄니, 업고 보니 산천 유람일세, 하고 평소 너스레를 떨며 어머니를 많이도 업어드렸다면……. 이런 괜한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러고 보면 어머니께 제가 박정하게만 산 것 같아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결국은…… 이렇게 어머니께 못 보일 꼴을 보이게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죄송합니다. 정말 못된 아들놈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생때같은 자식 놈이 연로하신 어머니를 앞서 나자빠지는 추한 꼴을 보여드릴 용기가 도저히 안 납니다.
이제야 맘이 단단하게 굳어지네요. 그렇게 하렵니다. 제가 이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어머니 생가슴에 못을 박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저로 인해 어머니의 남은 노후를 하루아침에 간장독 깨듯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만은 못하겠고 제가 참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어머니…… 제 절 받으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드리는 한 번씩의 절은 어머니께서 새해 첫날에 제가 드리고 어머니가 받으실 한 해 몫에 해당합니다.
어머니……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절 품에 안고 하늘을 원망하며 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하실는지 모르겠지만……저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어머니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제가 누워 지켜볼 자신이 없습니다. 어머니 모습에서 건강하게 사실 남은 날들이 추풍낙엽처럼 한꺼번에 와르르 떨어져내리는 것을 바라볼 용기가 없습니다.
제 죽음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짓이 되고 말 것이기에…….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도저히 엄두 못 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제가 죽는 것을 볼 수 없는 곳으로 저는 도망치기로 맘을 굳혔습니다. 무책임하다는 거 압니다. 순리를 거스른 운명일지라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란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의 죽음으로 어머니의 목숨을 단 하루라도 앞당기는 짓만은 제 모든 의지를 걸고 사양하겠습니다.
먼 훗날 결국은 배은망덕이 하늘을 찌른 패악한 독단이란 것이 남김없이 드러나겠지만…… 어찌됐던 어머니께 성급한 제 죽음만은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비겁하다고, 모자라다고, 아주 나쁜 놈이라고 먼 훗날 다른 세상에서 절 보시게 되면 많이 꾸짖고 나무라주십시오.
절 안 보겠다 하신다면 저 세상에서 제 마음 전부를 무릎 꿇리고 어머니께서 받아주실 날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어떤 질책을 하시고 그 무슨 회초리를 삼 년 내내 드신다 해도 전 달게 받겠습니다.
어머니…… 또 절 받으십시오. 어머니, 또…… 받으십시오. 이번에 드리는 절은 어머니께서 여든 살이 되셨을 때 제게서 받으실 절입니다. 이 절 받으시고 강령하십시오. 저 같이 못난 놈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으십시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또 절 받으십시오. 어머니…… 당신께서 주신 태산과 같은 은혜를 백만분지 일도 못 갚아드리게 된 것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맞을 새 집을 지어놓겠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맨드라미꽃과 수국이 어울리는 창문 예쁜 집을 지어놓겠습니다.
그 집에서는 어머니 살아생전 수없이 명주를 짜셨지만 정작 본인께선 한 번도 못 입어보신 비단옷을 매일매일 곱게 입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손에 흙 안 묻히시고 꽃처럼만 아름답게 난 치듯 사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제가 만들어 놓겠습니다. 처마 끝이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대청마루에서 고운 모시옷을 입으신 어머니가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뭇 별들의 광휘로움을 산책길에 보실 수 있도록 만반의 채비를 차려두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제 어머니께서 사시고 싶어 하시던 아흔의 수까지 제가 미리 큰절을 다 드렸습니다.
어머니…… 다시 한 번 엎드려 고합니다. 못난 절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못난 저를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죽고 다른 세상에서 또 죽을 때까지…… 어머님에 대한 하늘 같고 바다 같은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제가 어머니 주무시는 동안 드린 제 열네 번의 큰 절이 바위처럼 단단한 십사 년이 될 수 있기를 소원 드립니다.
어머니…… 제가 없더라도…… 마음 굳게 잡수시고 잘 지내셔야 합니다. 제가 어디 사는가 보이지 않아 근심과 슬픔이 크실지라도 어디선가 제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꼭 믿으셔야 해요. 그리고…… 만에 하나 십 년 뒤, 아니 몇 년 뒤라도 어머니께서 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을 설령 아시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모르시게 해드려야만 했던 제 마음만은 굽어살펴 주세요.
제가 너무나 염치가 없어서…… 지금껏 잘해드린 게 없어서……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나가실 기둥을 뿌리 채 뽑혀나가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서…… 제가 그렇게 크나큰 불효를 저질렀다고……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제가 무정하고 박정한 놈이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야말로 제 삶의 근원이시므로 속이면서까지 어머님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단 것을…… 그렇게…… 그렇게만 이해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열네 번의 큰 절을 마친 그는 눈물 묻은 손으로 잠드신 어머니 손등을 살포시 덮었다.
새벽빛이 희뿌옇게 창문에 번지고 있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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