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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은 무슨 연유로 저것을 만들어 즐기며 바라보고 있는가”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 101 > 마지막회 / 간성 괘진리와 능파대 관련 고찰 ⑤

2017년 04월 11일(화) 14:23 192호 [강원고성신문]

 

2. 漢詩와 記文

1. 한시(漢詩)

본고에서 살펴볼 능파대 관련 한시 15수는 시대순으로 1541년 鄭士龍의 창작된 詩가 가장 앞선다. 그런데 지금의 詩題와 달리 사용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기행문에 언급한바와 같이 1617년 양양부사 정엽(鄭曄)의 표현대로 한시에서 시제를 그 다음으로는 1589년 八谷 具思孟의 ‘凌波臺’ 시가 이어진다. 나머지 시는 팔곡은 나머지 17세기 이후로 삼척에서 만들어진 『陟州志(崔晩熙, 1946)』, 『三陟郡誌(1955)』, 『眞珠志(1963)』, 『陟州漢詩集(1993)』 총4권에는 ‘凌波臺’를 제재로 남긴 11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택당 이식(澤堂 李植)의 시와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가 쓴 작품은 삼척(동해) 능파대가 아닌 간성(고성) 능파대 작품이다.
또한 1923년에 朝鮮總督府 參事官室에서 펴낸 『金剛山集5권(6편)』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8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임연재 배삼익(臨淵齋 裴三益), 기봉 이시성(騏峯 李時省)의 시 또한 삼척(동해)의 능파대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錯誤로 인하여 2007년 江原日報社 발행한 『강원의 시문(하)』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 鄭士龍의 「凌虛臺」= 호음 정사룡(湖陰, 1491~1570)22)22)은 1541년(중종 36) 9월에 金剛山, 關東을 遊覽하고 시문인 「關東日錄」과 凌虛臺를 소재로 한 시를 남겼다.

자라 등의 차가운 바람이 겨드랑이를 끼고 올라오고 / 비린내 나는 구름이 비를 몰아오니 새끼줄을 흐트러트린 것 같구나 / 생황소리 귀에 가득하니 푸른 솔이 뒤덮였고 / 안개 가득한 하늘에 자색 봉황이 날아가네 / 만리의 거친 기운이 사라지고 / 백년을 길게 추억하니 장대하게 유람하던 일들이 떠오르는구나 / 이에 남은 짐을 꾸려 하늘님께 바치려하는데 / 감사 편지는 까닭 없이 부끄러워하지 못하겠구나. 『호음잡고권3(湖陰雜稿卷之三)』

2) 具思孟의 「凌波臺」= 팔곡 구사맹(八谷, 1531~1604)23)23)은 1589년(선조 22) 봄에 판결사를 거쳐 강원도관찰사 재직 중 각 고을을 순행 길에 간성지역의 풍광을 읊은 시이다. 詩題가 수성팔절(永郞湖, 無盡臺, 萬景臺, 凌波臺, 仙遊潭, 花津浦, 鳴沙路, 茂松亭)을 여덟 개의 名所를 절창(絶唱)하였다. 소제목에서 ‘수성’은 고구려 때 간성고을의 옛 지명을 가리킨다. 〈수성간성읍호>저자는 삼척지역에서 ‘능파대’ 題材로 쓴 시가 있다.

명사 길을 다 밟으며 옥봉(玉峯)에 오르니 /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며 푸른 하늘에 맞닿았네 / 한 번의 긴 피리소리에 석 잔의 술을 마시니 / 이 날에야 나그네 흥이 무르익었음을 알았다네. 『팔곡집권2(八谷集卷之二)』

3) 裴三益의 「凌波臺」= 임연재 배삼익(臨淵齋, 1534~1588)24)은 1581년(선조 14) 襄陽 府使로 재직 중 여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關東錄」을 남겼다. 여기에는 간성의 명소인 仙遊潭, 淸澗亭次韻, 영랑호 등의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능파대 위에서 홀로 배회하는데 / 아득한 동해의 굽이치는 파도가 펼쳐지네 / 병든 이 한 몸이 시 구절을 읊조리려 하는데 / 늦은 바람이 비가 되어 일시에 퍼붓네 / 도중(途中) / 십리의 푸른 풀밭에 작은 오솔길이 생겨나고 / 흰 모래가 눈 같아 밟아보니 소리가 울리네 / 능파대 위에서 신선을 부르니 / 청간정 앞에 학 소리가 들리네 / 관동 같은 명승지는 천하에 더 없으니 / 바다로 가는 어느 곳 신선이 사는 곳 아닌 곳이 없네 / 바람이 불어와 어촌 근처에서 잠잠해지니 / 십리에 나부끼던 비릿한 바람이 옥으로 만든 집을 막아서네. 『임연재집권2(臨淵齋集卷之二)』

4) 李植의 「次凌波臺韻 同使相申公賦」= 다음의 시는 李植이 간성현감 재임기간 중 능파대를 소재로 한 시를 남겼다. 詩題에서 ‘申公과 함께 시를 짓다’. 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신익성(申翊聖, 1588∼1644)26)을 가리키며 신익성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遊金剛小記」 기행문을 남겼는데 그때 여정을 살펴보면 1631년(인조 9) 9월 13일 花津浦을 구경하고 간성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동행한 시이다.

능파대(凌波臺)의 운을 차용하여 사상(使相) 신공(申公)과 함께 시를 짓다.

천 길 솟은 빙벽(氷壁)에 조각된 온갖 형상 / 구름과 우레 도끼 얼마나 찍어 대었을꼬 / 물속으로 치달리는 말발굽 잠시 멈추려다 / 바다에 몸 씻고 부리 드는 붕새를 놀라 바라보네 / 물결 따라 사부의 고고한 노래가 생각나고 / 파도를 보매 매승의 기걸찬 붓이 떠오르네 / 삼신산(三神山)도 여기에서 얼마 되지 않건마는 / 넘실대는 파도 넘어 건너갈 순 없을 듯. 『택당속집권4(澤堂續集卷之四)』

5) 李敏求의 「凌波臺」 = 동주 이민구(東州, 1589~1670)27)27) 는 1635년(인조 13) 7월에 江原道觀察使 임명 받고 관동지역을 순행하면서 「關東錄」 남긴 것으로 여기에서 그는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고 간성(杆城)에 이르러 仙遊潭, 烈山館, 淸澗亭, 영랑호 등의 소재로 한 시가 남아있다.

대 밑에 가을 파도가 만들어낸 신기루의 기운이 맑으니 / 동해의 서쪽 언덕이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이로구나 / 어떤 사람이 스스로 신선의 골격이라고 자랑하는가? / 취해 돌아보니 신령한 자라의 머리 위를 가고 있네. 『동주전집권7(東州前集卷之七)』

6) 李景奭의 「凌波臺」= 백헌 이경석(백헌, 1595~1671)28)은 1651년(효종 2) 9월 23일에 金剛山을 유람하고「海上錄」을 남겼는데, 돌아오는 길에 간성에 이르러 열산호, 杆城客館, 淸澗亭을 소재로 한 시를 남겼다.

잠시 선유주(仙遊酒)에 취하여 / 능파대(凌波臺)에 해질 때 올라갔네 / 하늘에 조각달이 떴는데 / 파도치니 눈 같은 물보라가 천 층이네/ 죽도(竹島)의 난새는 응당 모여들고 / 봉래산의 학은 가히 탈 수 있다네 / 기이한 암석은 신선을 배워 / 기이한 골격을 솟구쳐 날고자 하네.

해상록 금강산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해상에서 놀며 짓다.〈海上錄自金剛歸路 仍作海上之遊〉 『백헌집권11(白軒集卷之十一)』

7)李時省의 「凌波臺」= 기봉 이시성(騏峯, 1598~1668)30)은 1632년(인조 10) 부친의 임소(任所)인 인제현(麟蹄縣)에서 간성현감(杆城縣監)으로 있던 택당 이식(澤堂 李植)을 찾아뵙고 동해안과 金剛山, 雪嶽山 등을 유람하고 남긴 시이다.

높은 봉우리와 큰 하천을 모두 돌아보고 / 또한 여기 경치를 찾아 잠시 들렀네 / 신선은 학을 타고 봉우리 밖으로 날아가고 / 어부는 갈매기에 맹세하고 바깥세상에서 노니네 / 발이 부르트도록 서쪽의 청산을 일 만 번이나 찾았고 / 눈으로 동해의 푸른 바다를 삼천 번이나 바라보았네 /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봉래산에서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하고 / 진시황이 보낸 진나라 아이들이 탄 약을 캐는 배를 가리키네. 『기봉집권3(騏峰集卷之三)』

8)李采의 「凌波臺」= 화천 이채(華泉, 1745~1820)는 1771년(영조 47) 가을, 李普天, 趙元喆, 李義肅 등 세 친우들과 金剛山, 雪嶽山 등지를 유람하고 남긴 시이다.

대가 높아 흰 파도를 능멸하는데 / 넓고 아득한 사이에서 치솟았네 / 입 벌린 바위의 형세는 오래되었고 / 뚫린 암벽의 형세는 얼룩얼룩하네 / 겹겹이 쌓인 돌이 천태만상을 이루니 / 이 모두 괴이한 얼굴을 하고 있다네 / 혹은 벌집에 버금가고 / 혹은 부처의 머리처럼 우뚝 솟았네 / 놀란 파도가 항시 넘나들어 / 갈아내 자연히 굴을 만들었네 / 바람이 불어오면 구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 해가 솟으면 끓어오르는 모습을 만드네 / 때때로 파도가 산처럼 치솟아 / 하늘에서 서리와 눈을 품어대니 / 어디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인가 / 기묘한 기교는 귀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네. 『화천집권1(華泉集卷之一)』

9) 趙秉鉉의 「凌波臺」 = 성재 조병현(成齋, 1791~1849)은 1819년(순조 19) 9월 6일 도성을 출발하여 동생 趙秉璜, 벗 李懿喆 등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10월 7일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이다. 「金剛觀敍」기행문을 살펴보면 22일 간성 땅에 이르러 바라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에서 목욕하는 해와 바다에 빠진 별이 /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끝없이 절벽을 싸고 도네 / 바다를 바라보니 뗏목을 탄 객이 되어 / 긴 노래 부르며 백가지 회포를 풀고 싶구나 / 긴 노래 부르며 백가지 회포를 풀고 싶구나 / 한번 만들어낸 만 가지 구멍과 움푹 패인 구멍이 쌓인 기운을 어둡게 한다. 『성재집권4(成齋集卷之四)』


2. 기문(記文)

↑↑ 이의숙(李義肅)의 능파대기(凌波臺記)

ⓒ 강원고성신문

1) 李義肅의「凌波臺記」= 이재 이의숙(1733~1805)40)은 1771년(영조 47) 가을에 李普天, 趙元喆, 李采 등 세 친우들과 麟蹄, 雪嶽山, 金剛山 등지를 유람할 때 지은 작품이다.

“작은 돌산이 육지에 기대어 머리가 큰 바다로 들어가니 이르길 능파대라고 한다. 야릇한 것이 나선형 같고 공교한 것이 벌레 먹은 것 같으며 무늬는 귀신을 본뜬 것 같으니 만 가지 오묘함이 섞여있다. 동굴에 첩첩히 쌓인 돌이 가장 높은 것은 거인 6, 7명을 쌓아 올린 것 같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떨어져 죽을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삼면이 합해진 곳에 틈이 벌어졌는데 바닷물이 드나든다. 틈새 구멍은 넓이가 10보인데 점점 막혀 길어지고 길이가 2배로 넓어지면 틈새가 다하고 구멍이 있는데 깊이를 알 수가 없다. 파도가 다다라 휘몰아 쳐 폭풍우 같은데 성난 것이 산처럼 솟아 틈새를 쳐댄다. 동쪽에서 쳐대고 서쪽에서 휘몰아치는데 그 구멍까지 몰아친다. 무릇 세 번 몰아치고 밀려나는데 입구까지 밀려나면서 또다시 처음처럼 몰려와 쉬지 않으니 바야흐로 하늘을 뚫고 일어날 기세이다. 봉우리의 높은 것은 모두 무너져 흩어져 내려앉았다. 눈바람이 거세고 우박이 쏟아지면 골짜기가 진동한다. 어찌 바다의 신은 무슨 연유로 저것을 만들어 즐기며 바라보고 있는가. 보는 자는 얼떨떨하게 기쁨만을 알 뿐이고 그러한 까닭은 모르는 바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재집권4』

↑↑ 홍경모(洪敬謨)의 능파대기(凌波臺記)

ⓒ 강원고성신문

2) 洪敬謨의 「凌波臺記」= 관암 홍경모(冠巖, 1774~1851)은 1825년(순조 25) 강원도관찰사 재임 시기에 關東지역, 金剛山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작품이다. 특히 간성지역의 명소인 淸澗亭, 駕鶴亭에 대한 기문을 남겼다. 능파대(凌波臺)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파대는 간성군의 남쪽 30리(里)에 있는데 바위 줄기가 뻗어 바다 가운데 들어갔으며 혹은 서있거나 누워 있다. 해안가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깎은 것 같아 해금강(海金剛)과 같은데 더 기괴한 괴석이다. 모두가 검은색으로 그 형태는 치아와 잇몸 같고 골짜기처럼 깊다. 구멍이 움푹 패여 있어 술잔과 같고 구유와 같으며 혹은 고래껍질과도 같으며 혹은 좀 벌레가 파먹은 것 같다. 또한 사나운 곰이나 우마와 같은 모양인데 솟구쳐 달리고 치달으며 서로 발굽과 다리가 교차하며 다투는 기이한 모습이 그 숫자를 셀 수가 없다. 옆의 석굴로 파도가 나가고 들어오며 부딪치는 것이 포성과 같고, 흩날리는 것이 눈색(雪色)과 같으니 역시 볼만하여 삼척(三陟)의 능파대에 볼만큼 미치니 망연자실(茫然自失)할 따름이다. 암면의 새겨져 있는 능파대 세 자는 양봉래(楊蓬萊)43)의 글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운석외사권11(耘石外史卷十一)』


Ⅴ. 요약 및 맺음말

요즈음 흔히 사용되고 있는 ‘관광(觀光)’이라는 말은 백과사전에 의하면 일상적인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장소를 방문하여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풍습을 경험하며 유람하는 일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관광의 어원은 본래 주역(周易)의 관괘(觀卦)에서 “6·4는 나라의 빛남을 보는 것이니 왕에게 손님으로 쓰임이 이롭다고 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觀國之光利用賓于王),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산수·풍속·문물·제도 등을 구경하는 것을 일컬은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관유(觀遊)’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한성제(漢成帝) 때 사람인 양웅(揚雄)이 지은 ‘우렵부(羽獵賦)’에서 “이궁에 자주 가지 않아 관유를 그치니, 이궁의 치장에 흙일과 나무일이 모두 화려함이 없네”라고 한 데에서 연유된 말로 자기 나라 안에서 산천·유적·승지(勝地)를 구경하며 노니는 것을 이른다.
지금의 高城지역은 여러 기록상으로 보아 예로부터 신라시대 화랑도들의 국토순례지였으며 수많은 사대부와 시인 ·묵객들의 관유지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허리띠를 졸라매었던 60~70년대에는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자연훼손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고성지역은 한국전쟁 이후 곳곳에 군사보호구역 내에 있는 관계로 다소나마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나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지역의 역사가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점도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우리의 문화를 유구히 보존함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문화유산들이 사실이면서도 기록이 불확실하여 傳說이나 神話로 또는 구비전승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나고 있으며, 듣고는 있으면서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로 인한 옛 모습 그대로를 찾아 볼 수 없고 알고 있는 형상도 훼손되고 복구되지 않아 보는 이의 가슴을 안타깝게 함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역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그 고장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찾아 가꾸는 한편 선인들의 거룩한 정신과 업적을 바르게 이어받아 현대에 사는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지난 과거의 유적 · 유물을 통해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조명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전통을 영위하였고 불멸의 창조력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상기할 때 오늘을 존재케 한 옛 문화유산을 하루 속히 복원하고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통감하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의 역사적인 면과 시문학의 통해서 아름답고 화려한 자연사박물관 같은 능파대의 의미를 반추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리지와 문헌에서 나타내는 능파대 아름다운 비경을 찾아보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고장의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길이 보존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 같아 미력으로나마 소개하고자 하였다.

※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연재는 이번호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강원고성신문

김광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
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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