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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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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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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20일(화) 11:27 19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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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나는 내 자식들에게도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암 따위에 허물어져서 허망하게 눈 감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지금 한창 공부할 때다. 내 죽음으로 아이들 집중력을 흩뜨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어쨌든 자식들에 대한 내 결론은 이제 난 자식들에게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는 것이다. 걸림돌일 뿐이다.
가족의 미래를 위협하는 나를 가족에서 빼버려야 한다. 내 스스로를 제거시켜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세 번째뿐이다. 내가 집을 떠나 멀리 사라지는 것이다. 가족과 늙으신 어머니 품에서 세상을 뜨는 게 아니라 나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는 것이다. 내가 지혜롭고 능력 있는 인간이라면 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냈겠지만 골백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결론은 같았다.
요 며칠 사이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처리하였다. 처음부터 아내 이름으로 삼십오 평 아파트 등기를 낸 것을 아주 잘 한 일이었다. 집 문제는 복잡하지 않게 됐으니까. 은행에 가서 아파트 대출금으로 빌린 삼천만 원을 갚았다.
아들 수범이와 딸 승윤이에게 들어둔 교육보험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십 년 이상 부어온 것이다. 수범이는 앞으로 일 년, 승윤이는 이 년만 더 부으면 두 아이의 대학교육까지 학비는 그럭저럭 해결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두 아이 것을 합해 매달 오십사만 원씩 들어가야 할 돈이 만만찮긴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아내가 감당해야할 짐이다.
그 흔한 암보험을 안 들었던 것은 아니다. 오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삼십오 평 아파트를 구입할 당시 무리를 한 탓에 생활이 너무나 빠듯했었다. 아이의 학원까지 줄여야할 형편이었으므로 당시 매달 십오만 원씩 들어가던 삼 년차 암보험을 대신 해지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또 한 가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는데 퇴직당하고 난지 얼마 안 돼 간암선고를 받은 경우 산업재해공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거였다. 내가 시간 외 근무로 오랫동안 시달렸고 회사를 위해 접대성 술자리가 잦아 간암이 발생했으니 산재로 인정하고 보상해 달라는 것 말이다. 노무사를 만나 알아보니 받아낼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간암 진단서류와 의사의 소견서, 그리고 근무확인서와 전 직장의 동료 두 사람이 내가 진술한 사유서가 맞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확인서가 필요했다.
의사의 소견서가 특히 중요했다. 의사는 과다한 업무시간과 잦은 술자리가 장기간 누적돼 간암을 유발시킨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사료된다, 라는 내용의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다.
나는 노무사가 준비해 오라는 모든 서류를 구비해서 제출했다. 노무사는 처리기간을 사오 개월로 잡고 있었다. 그때면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공산이 크다. 다행히 운 좋게도 보상을 어느 정도라도 받는 쪽으로 판정이 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산재보험관리 공단, 회사, 노무사 간의 지리멸렬한 법리논쟁과 사실유무를 법정에서 법적으로 따지고 들어야 한다.
나는 노무사에게 물었다. 내가 더 이상 할 일은 없냐고, 당사자인 내가 죽기 전에 무슨 녹취록이나 영상기록물이라도 떠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노무사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산재보상비는 당사자가 살아 있든 죽었든 상관없이 직장생활과 병력과의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밝혀내는 것이므로 더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없고 나머지는 노무사 본인이 다 알아서 진행시킨다고 했다. 나는 노무사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다시 한 번 부탁했다.
내가 죽고 난 뒤 아내에게 산재보상비가 지불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 예전 직장 동료를 따로 만나 만약 산재보상비가 지급된다면 그 돈을 회사에서 차후에 위로금 성격으로 내게 지급하는 것으로 말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일처리의 명확성에 있어선 신뢰가 가는 사람이기에 그 일을 매끄럽게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몇 종목의 약간의 주식도 일괄처분해서 입출금통장에 넣어두었다. 많지는 않지만 잔고까지 합쳐 천육백만 원 가까이 되니 아내는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남은 퇴직금은 통장을 새로 만들어 전부 넣어두었다. 지난 서너 달 동안 내가 월급 받은 것인 양 아내 통장에 꽂아준 돈을 제외한 약 사천만 원 정도의 돈이다. 도장과 비밀번호, 내 주민등록증도 통장 속에다가 같이 넣어두었다. 그렇게 나는 그 외의 몇 가지 집안경제와 관련된 일을 아내가 관리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정리를 해두었다.
내 나름대로 그 일을 모두 마친 날이 2010년 11월 20일 목요일이었다. 나는 다음 주 일요일 아침인 12월 4일, 여행을 떠나듯 집을 떠나가기로 날을 정했다. 그러니까 이 밤과 내일 밤, 모레가 지나고 또 사흘이 지나면 나는 가족을 떠나게 된다. 집을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갈 데를 정했는가? 아직 분명한 데는 없다. 약간의 돈을 가지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다녀볼 요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못 가본 강원도 몇 곳을 돌아보고 싶다. 영월에 가서 단종애사처럼 물굽이가 휘어도는 청령포를 보고 싶다.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 떠 있다는 하얀 섬 백도도 보고 싶다. 계곡과 계곡물이 비경이고 절경이라는 소금강도 보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경희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첫사랑이다…….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낙엽을 그러모아 불을 지피듯 따스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진 못할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면서까지 혼자이기를 선택한 이상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구석이 있다면 마음을 멈춰세워야 한다.
그렇게 강원도의 아름다운 몇 곳을 돌아본 뒤 산 깊숙이 있는 요양원이나 외진 사찰의 암자, 무허가 시설이라도 좋으니 기도원 같은 데 들어가 남은 생을 마칠 요량이다. 내가 돈 한 푼 없는 행려병자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목돈을 지불한다면 내 생을 조용히 마감시킬 곳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나를 마무리 시키고 싶은 장소가 한 군데 더 있긴 하다. 생뚱맞긴 하지만 그곳은 우리나라가 아닌 북인도의 바라나시다.
대학 이 학년을 마쳤을 때다. 그때 인도 관련 배낭여행사를 준비하던 대학선배가 새 루트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 선배가 나에게 같이 동행하지 않겠냐고 제의해 와서 난 돈 한 푼 안들이고 북인도를 한 달 동안 배낭을 지고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알게 된 도시가 바라나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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