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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올해도 풍년이다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수필가)

2016년 10월 06일(목) 13:55 180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수필가)

ⓒ 강원고성신문

벼 수확이 어느 정도 끝나간다. 유난히 질척거린 비 때문에 가을걷이가 쉽지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배부른 누런 들판엔 어느새 풍성했던 벼이삭이 사라지고 있다. 수런거리던 황금들녘 잔치가 끝나가는 것이다. 마치 저녁 무렵 썰렁한 파장분위기를 연상한다. 쌀 팔일이 걱정이긴 하지만 올해도 지난해처럼 큰 재해 없이 기대했던 풍년이고 넉넉한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얼마 전 40년 공직을 정리했다. 다행히 무탈하게 공직을 마치게 된 것에 거듭 감사하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짧지 않은 공직기간 농사일도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농사일도 참 많이 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역특성 상 벼농사가 대표적인 우리 농사일이다. 아시는 분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철마다 온가족이 모두 농사일에 매달렸다.
벼농사일은 가래질로부터 시작됐다.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들판과 좁고 굽은 다락 논에서 농부들이 함께 이용할 취수보와 물길을 정리하는 보 역부부터 농사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보 작업은 봄마다 동네 몽리자들의 큰 행사였다. 삼삼오오 모여 메나리에 맞춰 가래질하고 겨우내 부실해져 물이 새는 둑을 벽 바르듯 말끔히 정리하고 물가두기 준비하면서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목련꽃 필쯤 일손은 더욱 바빠진다. 벼농사는 볍씨를 소독해 본답 한켠 모판에 뿌리고 동네 야산에서 퍼온 상토와 비닐 피복을 덮고 조바심으로 씨앗의 움이 트길 기다렸다. 며칠 동안 싹을 틔우고 물대기를 반복하면서 어린 아이를 보살피듯 모를 키운다. 새벽 농부의 숨소리와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어린모는 본답 이앙 때가 되면 동네 질의 순번에 따라 모내기가 이루어진다.
모심는 날이면 더욱 바쁘다. 온가족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온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나선다. 부엌의 부지깽이도 뛴다고 할 만큼 바쁘다. 모심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터와 같고 한해 집안의 가장 큰 행사였다. 학교에서도 권농일이란 이름으로 휴교하고 고사리 손도 부족한 일손에 보태도록 했다.
성에, 물추리막대와 멍에를 짊어진 겨리소의 쟁기가 소몰이꾼이 바쁜 구령에 따라 논바닥 흙탕물을 헤집고 정지 작업을 마쳐야 모를 심을 수 있다. 써레질을 마친 논은 이튿날부터 모를 심는다. 모를 찌고 나르는 모종은 지게 한 소쿠리 가득 찐 모를 담아 좁은 논둑길에서 모 뭉텅이를 논 가운데로 집어던져가며 모심기를 돕는 것으로 본답 모심기가 이루어진다.
모를 나란히 심기위해 얇은 줄에 끈으로 표식을 달아 놓은 곳에 맞춰 심어야 한다. 모 한 움큼을 잡고 민첩한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개의 모를 ‘쫑쫑’ 소리가 나도록 꽂기도 하지만 서투르고 굼뜬 사람들은 서너 개 꽂기도 바쁘다. 모꾼들의 굽은 허리는 펼 새도 없다. 10여 명이 한 질로 구성된 모꾼은 못줄을 잡는 사람의 농 짙은 입담에 일의 고단함을 덜어 가면서 모심기를 계속했다. 정말 고된 노동이었다. 그리고 논머리에서 자반미역과 꽁치구이, 누룽지 섞인 점심과 새참을 먹는 것으로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달래곤 했다.
고단한 모심기는 하루 온 종일, 거의 한 달가량 이어졌다. 그 넓고 긴 들녘은 그런 농부들의 피땀 어린 노동으로 메워졌다. 두레, 마을공동체는 어쩜 당연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예전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힘든 농사일을 정말 힘들게 지어 가족들에게 쌀밥을, 대천으로 나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것이다.

지역 농산물의 판로 걱정

하지만 그런 예전 모습을 우리 곁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농기계와 농기구의 진화는 농사일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였다. 볍씨를 소독해서 발아하는 것도 공장에서 출하된 상토와 정부에서 공급한 볍씨를 육묘상자에 넣고 논이 아닌 육묘비닐하우스 안에서 모를 키우는 것으로 벼농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겨리소의 쟁기질과 써레질 대신 트랙터로 순식간에 논을 갈고, 지게꾼이 나르던 모는 트럭과 트랙터가 단 번에 옮기는 것이다. 수십 명이 흙탕물에 엎드려 한 달가량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심던 모습도 두어 명의 인력과 승용이앙기 한 대가 단 며칠 만에 끝내는 것이다. 논바닥에 풀을 잡는 것도 제초제와 우렁이가, 논둑 풀 깎기도 제초제가, 보 역부 역시 작은 중장비가 대신하는 것으로 농사일이 바뀐 것이다.
작은 낫으로 온 들녘의 벼를 베고 짚으로 볏단을 묶어 논둑에 세워 말리고, 논 가운데 볏가리를 쌓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런 모습을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마당에 쌓은 볏가리를 헐어 이릉거리며 볏단을 털던 모습도 이젠 볼 수가 없고, 벼 수확 전용 콤바인으로 논에서 벼를 털어 곧바로 벼 전용 건조기에 넣는 것으로 벼 수확을 단 며칠에 마치는 것을 보면서 ‘강산이 네 번 변한 것’처럼 많은 변화를 가져 온 농사일의 풍속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농사일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농촌 인력이 고령화되고 부족한 입장에서 영농의 기계화 과학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농사일을 할 수 없고, 기계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쉽지 않은 것이 농사일이다.
하지만 쌀값이 내려간다는 소문이 들리고, 정부의 비축 매입량도 예년 같지 않다는 풍문이 들린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제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판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이지만 쌀농사를 이대로 계속 고집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숙명처럼 이어온 벼농사를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젠 그 대안을 빨리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황금들녘은 점차 황량한 빈 들판이 되어가고 있다.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줄 내년 봄이 다시 기다려진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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