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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추수를 마치고

황연옥 칼럼위원(시인, 동화작가)

2016년 10월 18일(화) 12:47 181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아직 늦벼를 추수하지 않은 논들이 있긴 하지만 논벌이 허전하다.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정성껏 길러 이앙기로 벼를 심던 봄날, 이랑가득 초록 춤사위 가득하던 여름날, 황금빛 벼이삭이 들판을 넘실거리던 가을날, 결코 쉽지만은 않은 150여일의 농사일정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세 번의 계절이 바뀌며 볍씨들은 하얀 쌀알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남편 정년퇴임 후, 우리 부부는 고향으로 귀촌하였다. 농사일을 좋아하는 남편은 처음엔 밭농사만 지었는데 3년 전부터 문전옥답 1600여 평의 논농사를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짓고 있다. 제초제와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지은 쌀을 자녀들 친지들과 나누고, 지인들에게 밥맛 좋은 고성의 오대미를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150여일의 농사일정 파노라마처럼

곡식이 병충해로 몸살을 앓는 요즘인데 과연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짓는 일이 가능할까 하고 반신반의하며 소출이 적더라도 가급적 농약살포를 줄이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렁이농법을 동원했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남편은 무더운 여름 날, 땀을 흘리며 4차례나 논둑을 깎았다. 다행히 지력이 좋은 토질이라 별다른 병충해 없이 벼가 잘 자랐다. 소출도 매년 조금씩 증가했다.
그러나 농사짓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첫해는 봄가뭄이 심해 어려웠고, 둘째 해는 논바닥에 알 수 없는 이끼가 많이 생겨 신경을 쓰게 했고, 금년에는 벼이삭은 크고 실한데 20여일이 넘게 초가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300여 평의 벼가 논바닥에 쓰러졌다.
길옆의 논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안타까워했다. 전문 농부도 아니고 귀촌해서 소일 삼아 짓는 농사인데 힘들어 어쩌나 혀를 차기도 하며 모두들 걱정해 주건만, 야속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매일 내렸다.
처음에는 벼가 땅에 드러눕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허리를 잡고 기차놀이 하는 것처럼 벼는 마을 쪽을 향해 가지런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벼이삭이 논바닥 진흙 속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벼가 싹이 나기 시작했다. 진흙 논인데다 계속 비가 와서 콤바인도 논으로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논벌을 바라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던 남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구원투수가 왔다. 추석을 쇠러 온 두 아들들이 논에 쓰러진 벼를 보고 한동안 딱한 표정으로 아버지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더니 낫으로 벼를 베자고 했다. 추석날, 농사일이라곤 해 본적도 없는 아들들이 군에 가서 대민지원을 해본 솜씨로 늪처럼 빠지는 논에 들어가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벼를 베었다. 삼부자가 이틀에 걸쳐 쓰러진 벼를 모두 베었다. 진흙이 가득 묻은 옷을 벗으며 아들들은 아버지가 매년 갖다 주시는 쌀이 얼마나 귀한 쌀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다행히 추석이 지나고부터 매일 내리던 비도 그치고 날씨가 좋아져 마을 분의 콤바인으로 추수를 마무리하였다.

추석날 아들들과 함께 벼베기

나는 문득 친정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났다. 1960년대 후반, 대농을 하시면서 가을에 일할 사람을 못 구하면 두 분은 밤낮으로 벼를 낫으로 베셨다. 추위가 오면 벼 목이 부러진다며 대낮은 물론 달밤에도, 명절인 추석날도, 벼를 베셨다. 가을이면 부모님 입술은 부르트고 헤어져서 벌겋게 피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벼를 베어 볏단을 논둑에 세워 말린 후, 지게로 져서 마당에 날라다가 볏가리를 쌓고, 타작한 벼를 햇볕에 말려 정미소로 싣고 가 방아를 찧고…….
지금은 완전히 기계화되었는데도 힘들다고 하는데 영세적인 상황에서 그 많은 농사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렇게 힘들게 농사지어 마련한 학자금으로 내가 공부할 수 있었고 벼 한 알, 한 알이 부모님의 땀방울이었고 눈물이었는데…….
나는 우리지역 어느 농부의 자녀가 수혜받기를 바라며 금년수익의 일부를 고성향토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싶었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며 선뜻 동의를 하였다.
쌀값이 너무 하락하여 농부들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노동비는 고사하고 씨앗 값, 비료 값, 농기구 임대료를 재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도 저들은 내년 봄이면 묵묵히 불평 없이 이해 타산하지 않고 또 농사일을 시작하리라.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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