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발행인 칼럼칼럼/논단우리 사는 이야기독자투고김광섭의 고성이야기장공순 사진이야기법률상담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발행인 칼럼

칼럼/논단

우리 사는 이야기

독자투고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장공순 사진이야기

법률상담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오피니언 > 칼럼/논단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수구초심 首丘初心

금강칼럼 / 이선국 칼럼위원(수필가)

2017년 12월 05일(화) 10:2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수구초심 首丘初心은 ‘여우가 죽을 때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뜻하고,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얼마 전 진해를 다녀왔다. 유년의 추억이 너무도 각별한 한 사람을 찾아 다녀 온 것이다. 9살 때 그곳 진해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 온 그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이곳에서 마치고 어엿한 선생님이 되었고, 누구보다도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가깝지 않은 고향을 다시 찾기 쉽지 않았다.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

그는 언제나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아마도 겉옷은 이곳을 입었지만 속마음은 그리운 고향 진해를 한시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정지용 시인의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 시시때때로 이어지는 흑백사진 같은 그의 고향 얘기는 언제나 지치지 않았다.
다섯 살 때 부모님 몰래 야외 영화 관람 나갔다가 집을 잃었던 일, 형을 따라 처음 기차를 탔던 일, 셋방 살았던 옆집 할머니의 슬픈 사연,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모습, 어머니의 편물점 운영하시던 모습 등등 소소한 일상부터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영상필름 돌아가는 것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바위에 새겨놓은 듯 범상치 않은 기억력은 신기했고 너무도 선명하고 생생한 유년의 추억은 곁에서 듣는 사람조차 놀랄 정도였다. 밤마다 고향의 꿈을 꾸었고 그의 마음은 언제나 고향 마을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은 날이 갈수록 더 절절했고, 나이 들수록 더 애틋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50년 만에 귀향이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떠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고향으로 혈혈단신 돌아 간 것이다. 친지도 없는 그곳 고향을 돌아가려는 그를 만류했지만 고집스럽게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을 엄혹하게 길러 준 이곳을 떠나 자신을 낳아 준 고향으로 결국 다시 돌아 간 셈인 것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유별난 소년의 귀향 1년, 그를 찾아 진해를 간 것이다. 지금까지 TV의 뉴스를 통해 화려한 벚꽃 축제 전경에서 잠깐 잠깐 봤던 것이 진해의 전부였다. 그래서 군항 도시 또는 봄날 벚꽃 축제의 상징 장소 정도로만 알고 있는 곳이었다.
10월 말 찾은 진해는 가을 시작되는 고즈넉한 풍경의 작은 도시였다. 그간 다른 도시에서 보았던 치열한 삶의 현장, 변화와 개발의 상징이 아니라 왠지 시간이 멈춘 조용한 도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첫 인상은 남향과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춘 아담한 전원 도시, 산과 바다,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잘 다듬어진 깨끗한 동네라는 인상도 함께 받았다.
현재 창원광역시 진해구에 속한 진해는 1912년 경 일본 사람들에 의해 계획도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음흉한 일본인들의 야심으로 도시를 만들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허락 없이 토지 측량을 실시했고, 이곳 원주민을 집단 이주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 도로와 하천을 정비하고 일본풍의 가옥을 지었다. 그렇게 침탈당한 흔적이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곳이다. 진해의 자연환경은 다른 개항지역 포구처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 문화가 일찍 시작된 곳이기도 한 것이다.

안온하고 애틋한 고향으로 만들기

도심의 도로망은 로터리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방사선 방향으로 반듯하게 이어져 있고 잘 정비된 중원로터리와 북원로터리, 남원로터리는 100년 전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차량이 주차해도 통행이 지장이 없을 만큼 널찍한 골목길, 신호등이 별로 보이지 않는 차도, 그 흔한 교통정체 현상을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 풍경의 너무나 평온한 도시였다. 시내 중심을 흐르는 여좌천변과 시내 곳곳엔 벚나무 거목들이 거리를 누비고 비록 나이 든 늙은 벚나무지만 해마다 봄날엔 그 가지 끝 화려한 꽃잎이 전국의 상춘객을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벚꽃 따라 노도처럼 밀려왔다가 꽃잎 질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했다. 야트막한 건물의 낡은 간판과 정감 있는 거리 풍경도 이방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거리엔 빛바랜 적산가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낡은 가옥이 늘어선 장옥거리, 작은 다방을 흑백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갤러리, 문 닫힌 역사驛舍, 비록 닫혀 있지만 소소한 이야기가 묵향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가지는 시간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인 도시였다.
그가 고향을 그토록 잊지 못한 까닭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 간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 어머니 품 같이 아늑한 도심 풍경이 평생 그에게 몽매일 만큼 간절하지 않았을까. 비록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곳곳에 배어 있는 고향의 흔적을 잊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귀향 여생이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축복이길 소망한다.
다가갈 수 없는 고향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얼마나 고통스런 나날일까. 밤마다 꿈을 꾸고 꿈속에서 그리운 가족을 만나는 가슴 시린 고향을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주변의 실향민 마음이 모두 그러하지 않을까.
한편, 우리 동네를 그토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차마 꿈엔들 잊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안온하고 애틋한 그런 고향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