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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변화를 위하여

금강칼럼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2018년 01월 24일(수) 09:4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부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윤곽과 성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살아가면서 상대와의 관계에서 추출되는 유익성과 공감대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며 충족시켜 나가게 된다.
그 욕구는 모든 사물과 공간, 시간까지도 이름을 붙이고 상관관계를 형성해 가는데, 어제와 오늘, 늘 같은 태양이 뜨고 지는 일에도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이라는 엄청나게 상반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들이 만든 그 이름에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름으로 인하여 그것은 분명히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가 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어떤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은 보편적인 것일 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고유의 삶은 제각기 너무도 다양하며 특수하며 때로는 이상하기까지 하여 내가 나를 이해하기에도 난해할 때가 많지 않은가.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몇 달 전에 거진으로 이사를 왔다. 대구시내의 번화가에서 살다 갑자기 다른 환경에 던져진 충격은 대단히 혼란스러웠고 경상도 사투리를 우스워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서서히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북쪽은 휴전선, 동쪽은 바다, 서쪽은 큰 산맥. 어린 생각에도 어둡고 깊이 고립되었다는 의식 속에서 다행히도 내가 숨 쉴 수 있었던 순간은 책을 읽을 때였다.
일곱 살 때 경상남도 함양군의 산골에서 대구로 이사 왔을 때에도 도시아이들과 적응하지 못하여 만화책 읽기로 시작되었던 독서습관은 어촌으로 와서도 여전히 적용되었고 수많은 난감한 시간을 보내야하는 나에게 책은 위로자이며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철이 들면서 때로는 독서가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겁한 투명인간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책 안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마다의 다른 환경, 사건들이 변화무쌍하게 진행 되는 것에 늘 설레고 재미있고 행복했다.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고 여유가 좀 생겼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선택한 여행은 초등학생인 큰 아이와 둘이서 떠난 부산행이었다. 떠날 때는 비행기를 탔었는데 그냥 텔레비전에서만 보는 비행기와 타 보고 난 뒤에 보는 텔레비전 속의 비행기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거진이 세상의 모두가 아니라는 것, 거진 항구가 항구의 모두가 아니며 그 바다와 그 배가 모든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나는 기어코 보여주어야만 했다. 부산항만의 엄청난 규모와 막 출항을 시작하던 여객선 페리호 등, 내가 어려서 본 큰 도시의 놀라움을 아이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다시 오랜 뒤, 큰 아이가 군대를 제대하던 날, 렌트카를 빌려 옛적 엄마와 함께 떠났던 경로와 새로운 세상을 찾아 혼자 여행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나의 젊은 날 여행지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낯선 먼 곳에서 내가 나에게 보낸 봉함엽서가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던 쓸쓸하고 즐겁던 추억까지도.
사람이나 환경, 책과 여행뿐이 아니다. 내가 어려서는 그것에의 비중이 매우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라면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들 중의 가장 큰 요인이 사실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한 때 절망했다.내 안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선한 것이나 유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나는 맏딸로 태어나서 동생들처럼 야무지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했고 식구 많은 살림에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도 책만 들고 앉으면 끼니때가 되었는지 밥이 타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책벌레일 뿐이었다.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로 하자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과 사람들 틈에서 고만고만하게 자라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전혀 딴 사람인 것처럼, 더러는 사회적으로 훌륭한 큰 인물이 되어 만나게 되는 놀라운 사실들을 우리는 경험한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이 정도밖에 되지 못했는지, 민망하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지 엄청난 재벌이 되었다거나 사회적인 큰 지위에 오른 것으로 성공한 친구가 부럽다는 것만은 아니다. 영혼과 정신의 내적 성숙을 지닌 품위 있는 인격체, 그 절대우위 앞에서 스스로 나의 내면이 스캔되어지고 치명적 문제점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인데 사실은 그 때의 느낌이나 충격은 고마운 성장요인이 되어주기도 하여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내 삶의 부분들을 견인하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과 타인에게서 학습된 정보를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며 걸어갈 때가 많다. 밖을 내다보느라고 정작 내 안의 나와는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때로는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나답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놓친 마음의 소리가 기억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모두가 잘 아는 김춘수시인의 시 ‘꽃’ 일부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다른 이름을 부르느라고 내 이름을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 이제는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로 하자. 나의 출생, 환경, 나의 DNA….
지금까지 나를 형성해 온 모든 나를 용납하고 화해하고 끌어안고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가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생명 있는 동안 아름다운 변화의 의미가 되어주지 않을까.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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