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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야리와 운봉리에 걸쳐 종을 엎어놓은 듯한 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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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11] 현무암의 주상절리, 운봉산
분출 용암이 급하게 식으면서 생겨난 주상절리가 부서지면서 너덜지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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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4일(수) 10:44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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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각양각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운봉산. 사진은 머리바위. 책 69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천학정을 내려와 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곧바로 교암 해변으로 이어진다.
교암은 작은 규모의 아담하고 평온한 마을이다. 에메랄드빛 해면과 길 아래 파제벽에 맞닿은 짧은 백사장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바닷속의 암반과 수중 비경은 가히 금강산에 버금간다고 말한다. 길 서편으로 동광중·산업과학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고, 경주 김씨 집성촌인 백촌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금강산이 못되어 울던 운봉산
서편 문암천 사이로 운봉산雲峰山이 보인다. 토성면 학야리와 운봉리에 걸 쳐 있는 해발 285m의 산, 마치 종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산세가 이쁘다.
산정에 거북등과 같은 주상절리 모양의 바위바닥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산이 금강산이 되려고 돌을 모아 봉峯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미 고성에 금강산이 생겼다는 소식에 분하고 억울해 울어서 운봉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와 유사한 전설이 또 있다. 옛날 부지런한 장사가 금강산의 장사와 집짓기 시합을 하던 중 금강산 장사가 집을 완성했다는 거짓 소문에 3일 동안 울면서 통곡하며 그동안 쌓은 돌 성을 무너뜨렸는데, 이때 쌓았던 돌 성의 높이가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고 하여 운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산폭발로 생겨난 운봉산에는 분출 용암이 급하게 식으면서 생겨난 주상절리가 부서지면서 흘러내린 너덜지대가 산 주변 네 곳에 흩어져 있다. 마당바위, 기둥바위, 거북바위, 병풍바위, 빨래망치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암괴석이 산재해 산이 돌을 모았다는 설화를 뒷받침한다.
한편 운봉산은 운암雲岩이라 불리기도 한다. 1910년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조선지지자료』에는 운봉산이 기록되어 있으나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고지도에서는 운봉산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의아하다. 미루어 짐작컨대 운봉산이 조선시대 영조 이후 어느 시점에 생겨난 화산암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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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인소유로 훼손될 위기에 놓인 운봉산의 현무암. 책 70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개인소유로 훼손될 위기에 놓인 현무암
그런데 운봉산은 개인소유이다. 산에서 어린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면 비가 온다고 주의를 줄 만큼 동네사람들은 운봉산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산주는 최근 들어 화산 용출로 굳은 현무암에 함유된 장석을 에너지 자 원으로 개발하겠다고 하여 지역주민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유재산 이지만 생태자원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보존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산 아래 운봉마을엔 애국지사숭모비가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애국지사를 기리기 위해 2007년 건립되었다. 이근옥 열사는 1919년 4월경 이 지역 일대의 게시판과 기로표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충고동포’의 선동문을 게시하였고, 문형섭과 김연수 열사 등이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던 점을 높이 사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였다. 매년 숭모제와 3.1절 기념 행사가 마을 애국지사숭모비 앞에서 열린다.(※3.1절 행사는 올해 고성문화의집에서 개최하였으며, 내년부터는 3.1운동기념탑 앞에서 개최할 계획임.)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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