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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47>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8년 04월 04일(수) 11:1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세찬 통증이 지나가면 최소한 두어 시간은 괜찮아진다. 처음엔 통증은 하루에 한번 꼴이었다. 하지만 날이 흘러 병세가 진행될수록 하루에 견뎌내야 할 통증 횟수가 많아졌다. 죽음이 산 자의 몸을 내어놓으라고 통증을 가하다가도 쉬게 해주는 그 간격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그가 집을 나와 강원도 소금강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 처음 묵었을 때만 해도 통증의 강도는 이빨과 입술을 짓깨물며 방바닥을 뒹굴다보면 어느 정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설악산 산장에 머물렀던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가지고 있던 모르핀 주사를 놓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 하루에 한 번이던 것이 하루에 두 번 세 번 네 번으로 늘어났다.
그는 지난주 초 가방에 넣고 다니던 모르핀 주사를 다 써버리고 말았다. 집을 나온 지 삼 주가 지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정신력으로 그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고 있었다. 아니 고통이 오면 고통이 어서 몸을 죽여주길 기다리며 방임했다. 손에 닿지 않는 몸속에서 창과 칼과 꼬챙이로 중무장한 고통과 통증을 어떻게 사람이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극한 경우엔 실신하거나 까무러치거나 정신을 놓는 것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예고 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극한 통증……. 몸속에 기생하고 있는 통증은 몸의 주인과는 적대적이다. 까닭에 그는 몸속에 든 적들이 성급하게 다시 되날뛸까 싶은 불안감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
-내가 죽는 것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홀로 계신 내 어머니께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오랜 생각 끝에 이 길을 선택했어. 그래…… 어리석다는 거 알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하지만 난 이 길을 택했고…… 난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니까 날 설득하거나 네 혼자만의 생각으로 지금까지 지켜온 내 결심을 절대 그르치게 하지는 말았으면 해.
모두들…… 내가 지금 캐나다에 가 있는 줄 알아. 지난여름 회사에서 퇴직을 당했던 내가 거기 가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겠다고 가족과 어머니를 어렵게 설득했었지. 물론 영원한 비밀은 없어. 언젠간 다들 알게 되겠지. 하지만 말야. 나는 머잖은 내 죽음이 지금 알려지는 것만은 원치 않아. 왜냐하면…… 지금은 아이들이 한창 학업에 매달려야 할 때고…… 무엇보다도 내가 숨을 거두면…… 우리 어머닌 못 견디실 거야. 내 뒤를 따르겠다고 이 세상을 서둘러 버리실 게 분명해.
-……!
-그걸 아는 나로선 그렇게 할 순 없는 노릇이야. 물론 어떤 길이고 방법이든지 간에 남은 사람들이 결국은 힘들어지겠지. 하지만 난 내게도 날벼락과도 같은 내 죽음을 이렇게라도…… 흐음, 숨기기로 했어. 그래서 그들이 긴 기다림을 통해 먼 훗날에야 밝혀질 내 죽음을……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는…… 순차적으로 그들이 완만하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랄 뿐이야.
-미, 민호야!
-물론……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내 맘은 편하진 않아. 그래…… 생각할수록 모든 게 한스럽지. 우리 어머니께선…… 앞으로 날 기다리는 긴 세월 동안 깊은 한숨과 걱정이 끊이지 않으시겠지만…… 나는 내 죽음으로 어머니 생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만은 절대로 못 해. 결단코 피하고 싶어. 그리고…… 애 엄마에게도 못할 짓이지. 하지만 집사람은 훗날 내가 왜 이렇게 해야만 했는지 이해해 줄 사람이라고 믿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난 늘 부족했었지. 그런데 내 죽음까지 그들 눈앞에다가…… 가슴 속에다가 무거운 돌덩이로 얹어둔다는 게 내 자존심과 염치로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 그럴 거야. 남 보기엔 내가 혼자 죽음을 맞서 받아들이겠다는 남자로서의 결단을 내린 듯해 보이지만…… 결국 어쩌면 나는…… 나만 생각할 줄 밖에 모르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왔다고도 생각해. 한편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를 너무나 두려워한 겁쟁이일지도 몰라……. 하지만 말야. 크게 보면…… 죽음은 어차피 내 몫이야. 내가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나로 인해 나 아닌 사람이 죽음으로 끌려들어오는 것만을 피해보고 싶은 거지.
-미, 민호야…….
-어쩌면……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죽음만은 내 의지대로 해보고 싶단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해왔었던 거 같아. 그건 아마도…… 살아오면서 삶의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한 것이 별로 없어서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이런…… 내 맘…… 이해 돼?
-그래. 그래 그래……..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한없이 다정하고도 안타까운 맘이 스민 손길이었다. 검고 푸른빛이 돌며 누런빛이 촘촘히 박힌 그의 얼굴은 잠시지만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그를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려 주었다.
그래도…… 그래도…… 아무리 네 생각이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법은 너무나 무모해. 어리석기 짝이 없어. 누가 너 말고 이렇게 힘들고 끔직한 마지막 길을 혼자 가려 하겠니. 하지만 그렇게 말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
-난 캐나다 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어. 다시 서울 땅으로 걸어나왔지. 그렇게 난 혼자가 되자마자 휴대전화부터 강물에 던져버렸어. 내 신원을 밝힐 만한 것부터 다 없앴어. 내가 병원을 피하는 것도 결국 그런 생각의 연장선인 셈이야. 하지만…… 어쩐지…… 네가 나에게 준 명함만은 버리기가 주저됐었어. 어젯밤 태워버릴 생각이었지만 하루만 더 가지고 있자고 늦추었는데…… 그게…… 내가 갑작스레 의식을 잃는 바람에 네게로 그만 곧장 연락이 닿게된 모양이야.
-흐으음…….
-내가 네 명함을 제때 없애지 못한 것을 후회하냐고? 그래…… 후회해. 결국은 본의 아니게…… 너에게 나의 이 모든 것에 대한 침묵을 네 삶 내내 강요하게 되었으니까. 너를 아주 오랫동안 힘들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미안해. 정말이지 네게 많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하지만…….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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