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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5>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7년 07월 18일(화) 09:38 199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당신 입술에 처음 입 맞췄던 정동골목의 그 어두운 돌담길이 불현듯 떠오르오. 어색하기 그지없는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내게 당신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함께 눈을 살포시 즈려 감았었소. 촉촉하니 맑던 그 감촉…… 생기와 부끄러움이 밴 그 고운 모습이 바로 어제인 듯 환하게 떠오르오. 그 모든 게 눈물겹기 그지없구려. 하지만 말이오.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구려. 당신이 왜 나와 결혼을 하겠다고 맘먹게 됐는지……. 다른 사내보다 뭐 하나 나은 게 없는 나 같은 놈 대체 뭘 믿고서, 꽃 같은 인생 전체를 내게로 던질 수 있었는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그런 질문들이 맘에 꽃 피듯이 연신 떠올라 나는…… 당신의 잠든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소. 마치 당신 얼굴 깊숙이 가라앉아 있을 당신 마음을 오롯이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말이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이 이렇게 내 옆에서 잠들어 있다는 자체가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소. 분명히 언젠가 생면부지였을 당신이었는데 말이오. 보잘 것 없는 나를 믿고서 이리 편히 잠들어 있다는 게 많이도 즐겁고 고맙게 여겨지더이다. 그렇게 당신이 두 아이를 낳고…… 두 아이들을 별 탈 없이 기르고 공부시키며 여기까지 걸어와 줬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롭고 눈물겹기만 했소. 여보……! 남자는 늦게 철든다고 하더니만 이렇게 뒤늦게야 나는…… 비로소 당신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애틋함에 눈을 뜨게 되었구려. 그게…… 그 늦됨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스스로를 자책하며 밤을 지새울 뿐이오.
눈물이 쉴 새 없이 비 오듯 뚝뚝 떨어져내리는구려. 그러고 보면 말이오. 당신은 내가 벌어오는 적은 돈으로도 참 잘 살아냈었소. 당신이 알뜰했기 때문이오. 당신은 한 번도 값비싼 화장품을 쓴 적도 없고 브랜드 옷이나 가방, 값비싼 신발 한 켤레 사는 걸 못 보았소. 겨울옷이 필요하면 동대문 상가에 가서 옷을 샀고 여름옷은 당신이 재봉질을 해 직접 만들어 입었소. 아이들 옷도 마찬가지였지. 예민한 아이들까지 당신이 미싱 돌려 만든 옷을 별 불평 없이 입어줬을 정도로 뛰어난 손재주를 보여줬었소.
당신은 그렇게 한 푼 두 푼 절약한 돈을 모아 내 나이 마흔이 갓 지나던 무렵에 지금의 삼십오 평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소. 월급쟁이가 서울에서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눈물겨운 인간승리이오? 당신과 나는 새 아파트에 이삿짐을 부려놓은 뒤 만세삼창을 불렀었소. 당신이 가계부를 꼼꼼하게 안 쓰고 지폐 한 장을 쓸 때 세 번 이상을 생각하는 절약정신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그렇소. 내 집 마련은 적어도 십 년이 더 늦어졌거나 지금도 전세를 살고 있어야 마땅할 것이오. 이만큼이라도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따져보면 순전히 당신 덕분이라오. 집을 산 그해 내내 즐겁고 행복했었던 기억이 나오. 또 다시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다가 지치는 나날이 반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말이오. 우리 집이 별다른 우환 없이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덕분이라오.
하지만…… 여보……! 내가, 내가 머잖아 죽는다 하오……. 사람이 언제까지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어느 날 하루아침에…… 아침에 배달되는 일간지처럼 그렇게 죽음이 쑥 내게 배달되는 것인 줄은 정말 몰랐었소. 허망하고 속절없소. 기도 안 찰 뿐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소. 그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해보았소. 내게 주어진 죽음이 어찌할 수 없는 게 분명해진 이상…… 당신과 두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무척이나 괴로워할 것이고 절망할 것이란 것을 잘 아오. 나를 살려보려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소. 내 병은 내가 너무나 잘 아오. 대세는 기울었소. 그렇소. 어차피 내가 죽을 거라면…… 결국은 혼자 가야할 길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소.
미안하오. 당신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당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지레 짐작해서도 아니오. 당신한테 숨기는 것이 당신이 받을 충격을 조금이라도 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오. 내가 당신과 두 아이를 남기고 외국으로 떠난다고 하면 당신은 나를 비난하고 원망할 것이오. 야속해 할 것이오. 그리고 오래도록 내게서 연락이 없으면 당신은 분노와 괴로움으로 심장을 갉아먹을 것이오. 잘 아오. 하지만 구체적인 나의 죽음을 당신이 겪어내는 것보다는 덜 해로울 거라 나는 믿소. 죽음이라는 충격보다는 내가 먼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충격이 덜 할 것이기에 당신은 이후의 아이들과의 삶을 점진적으로 수습해 나가기가 보다 쉬울 거라 여기오.
하지만…… 언젠가는 내 죽음이 당신에게 전해질지도 모르오. 만약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업재해 보상비 청구가 별 탈 없이 수리된다면 당신은 그 돈을 내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주는 특별위로금 형식으로 받게 될 거요. 나는 그때에도 내 죽음이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손을 써놓았소만…… 당신에게까지 속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반려자로 살아온 당신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한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많이도 아파오는구려.
나는 국내에선 직장을 잃었기에 대학선배가 캐나다에서 자리 잡았다는 핑계를 삼아 혼자 먼저 해외로 나가 일을 알아보겠다고 당신에게 둘러댈 것이오. 물론 내게선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오. 당신에게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일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십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의 죽음이 알려진다면 당신에게 제일 먼저 알려질 것이오. 그때 나를 맘껏 욕해주기 바라오. 내게 독한 놈 나쁜 놈이라고 일갈하며 당신이 거친 눈물 한번 뿌린 뒤 당신이 걸어가던 삶을 그대로 잘 걸어가주기를 바라오.
하지만 말이오. 당신은 내가 한없이 야속하고 밉겠지만 내 어머니께는 좋은 마음을 가져주기를 부탁하오. 당신도 잘 알겠지만 그분은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하신 것밖에 없소. 염치없지만 나는 당신이 어머니께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그 얘기만은 전해주지 않았으면 하오. 그 한 가지만은 당신에게 엎드려 비는 심정으로 간절히 부탁드리오. 그 말은 곧 그 분에겐 사약임을 자식인 내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오. 외국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모정은 삶이 되고 목숨이 될 수 있으나 하나뿐인 자식이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은 그분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요. 세상을 져버릴 단단한 동아줄 같은 구실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 사실만은, 제발 그분 생전에 숨겨주기를 거듭거듭 부탁드리오.
두 아이들도 성인이 될 때까지 마찬가지였으면 하오. 두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오. 내가 따로 수범이와 승윤이에게 글을 쓰리다. 애비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설움도 설움이겠지만 말로 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가능한 내색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그려보이리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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