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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6>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7년 08월 22일(화) 14:46 201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그러니 여보……! 내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을 오롯이 당신에게 떠맡기게 되어 당신에게 난 고개조차 들 수가 없는 죄인이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소. 어쩔 도리가 없구려. 그저 못난 남편으로 살았던 한 남자가 그저 백 배 일천 배 아내인 당신께 절하는 심정으로 두 손 모아 이해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고 부탁을 드릴 뿐이오.
여보…… 생각할수록 아쉽고도 안타깝구려. 당신이 오십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며 곱게 늙어가는 것을 내가 옆에서 지켜주고 지켜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돼버려서 몹시도 섭섭하고 미안할 따름이오. 나 역시 당신의 손길 안에서 늙어가고 싶었소만…… 내 복이 여기까지인가 보오. 면목이 없소. 별 다른 능력도 수완도 없던 내가 명까지 짧으니 내 어찌 한 여자의 좋은 남자이고 남편이기를 손톱만큼이라도 바라겠소.
나는…… 언젠가 못난 나를 당신이 이 세상의 어느 길목에선가 깨끗이 잊어주기를 바라오. 별 걱정을 혼자 다 한다 싶으면서도…… 나는 당신이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키워낸 후라도 당신이 홀로 외롭게 힘들게 고독하게 세상에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소. 사람마다 장점이 있는 바에야…… 그 어느 남자인들 나만 못하겠소. 당신에게 뭐 하나 변변한 거 해주지도 못 했는데. 누리게 하지도 못 하고 그저 고생만 시키다가 당신 홀로 이 세상에 내팽개치고 말도 없이 가는 남자만큼 못난 남자가 나 이외에 누가 있겠소. 나 같은 사람은 싸악 잊어도 되오. 비 온 듯이 잊으시구려. 그래서 당신이 남은 인생을 재미나게 작은 행복감이라도 느끼면서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오.
일부러 당신에게는 아이들 얘기를 따로 적지 않았소. 당신과 아이들이 겹치게 되면 내가 지레 눈물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의 환희와 기르면서 이렇게 저렇게 겪어냈던 수많은 일들을 맘 깊이 감춰버렸소. 한 사람으로서…… 한 여자로서의 당신만을 그리며 필력 짧은 글이나마 두서없이 적어내렸소. 여보……! 도저히 말로는 다 못 하겠소. 하지만 한 가지! 당신을 만나…… 지금껏 별다른 풍파 없이 당신 남편으로 살게 해준 당신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오. 그리고 다시 한 번 당신에게 미안하고 죄스런 심정을 전하오.
이제 펜을 놓으려 하니 가슴이 울컥거리오. 가슴에 숨겨가려 했으나 이 말만은 어쩔 수 없이 해야겠소. 윤현숙 씨!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오. 이승을 떠날 때 내가 가슴과 영혼에 꼭 아로새기고 챙겨갈 것은 당신 얼굴과 당신에 대한 고마움이오.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람답게 살 게 해준 것은 당신의 사랑이었소. 그것이 아무리 평범하였다 할지라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구려. 부디…… 부디…… 잘 사시고 잘 살아내시구려. 내가 곁에 있었던 삶보다도 내가 없는 삶이 보다 당신에게 낫게 되기를 바라오. 그 말이 설령 독하게 들릴 지라도 나는 당신이 나 없이도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리오.
부디…… 당신 삶 속에 행운과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라오. 세상이 비록 모질고 척박하다고 하나 목숨이 붙어있는 한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거요. 아쉬워서…… 당신에게 미안하게 너무 많아 죄스러워서 글이 멈춰지질 않고 여기까지 허겁지겁 왔소만…… 용기를 내어서…… 이만, 끊겠소…….

2010년 11월 28일 김민호
수범이에게

아들! 평소 네게 맘이 많이 쓰이긴 했지만 정작 종이에는 처음으로 쓰는 편지이구나. 우리 아들! 전쟁과 같은 공부를 하느라 늘 고생이 많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언제나 공부에 시달리는 널 지켜보면서…… 아빠가 보탬이 되고 든든한 격려자이길 원했지만 많이도 부족했다. 그렇게 해주질 못했구나.
우선 미안해하는 아빠 마음을 네게 전한다. 이 땅을 사는 같은 남자로서 나도 네 나이를 지나왔고 입시 시절을 통과해 왔다. 하지만 지금 네가 치르고 있는 공부와 입시전쟁이 우리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 못내 안타깝고 당혹스러울 뿐이다. 어느 정도를 투자하고 투입하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성적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예상치가 도출돼 있는 시스템 속에서 네가 안간힘을 쓰며 공부를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그저 한숨뿐이었다. 무력감을 절감하는 게 전부였다.
이 시대 능력 있는 아빠는 자식이 공부하는 데 있어서 무제한의 비용을 받쳐주는 것임을 모르진 않는다. 상위 오 퍼센트, 최소 십 퍼센트에 들지 않으면 학력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사람대우를 받으며 살기 힘들다는 것을 넌 이미 온몸으로 체득해서 알고 있더구나. 까닭에 학창시절 때는 좋은 친구들을 통해 좋은 인간성과 대인관계를 형성하며…… 폭이 넓고 모나지 않은 원만한 성격을 소유하는 것도 공부 못잖게 중요하다고 충고하던 내 얘기가 네게 얼마나 고리타분한 잔소리로 들렸을지…… 잘 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공부를 못하거나 성적이 뒤처진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멸시가 자기비하와 우울증이 들게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도…… 아빠는 이해를 한다.
가장이자 아빠인 내가 돈 버는 기계로 내몰렸다면 아이인 너는 성적을 내는 기계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시스템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빠는 잘 안다. 의사집안에서 의사 나고 판사집안에서 판사 나고 교수집안에서 교수 나고……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신분이 고스란히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사회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아빠가 모르는 바 아니고 너의 고투와 절망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아빠는 잔소리가 될지라도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네게 어김없이 무책임한 아빠로 비칠 것이다. 아빠처럼 아등바등 월급쟁이로 살고 싶지 않기에, 보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양질의 삶을 살고 싶기에…… 그래서 오직 공부밖에는 대안이 없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오히려 뒤처지는 것 같아 너 스스로 화가 나고 괴롭겠지. 깊은 고민과 분노에 빠져 있다는 것도 내 모르진 않는다. 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능력 있는 아빠를 만났다면 네 또래들 중 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는 친구들처럼…… 어린 아이일 때부터 사교육을 통해 너 또한 일류대인 SKY 대학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네가 언젠가 엄마에게 항변했다는 얘기를 듣고 난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었다.
결국 무능한 내가 너에게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와 전략과 전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가망성 없는 전쟁에 너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니.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학문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라고 언젠가 내가 너에게 얘기했더니 너는 화가 나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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