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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해안 ‘거북바위’ 최명길 시인 등단작품의 배경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6] 최명길 시인의 문학적 고향, 천진
여름 피서철 에메랄드 빛 바다와 조용한 휴양지를 찾는 이들로 북적

2017년 09월 19일(화) 09:26 203호 [강원고성신문]

 

↑↑ 최명길 시인의 등단작 <해역에 서서>의 배경이 된 고성 천진 앞바다의 거북바위. 책 46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봉포 거리를 걷다보면 언제 경계를 지났는지 모르게 천진마을에 다다른다. 시인 최명길이 등단 전, 詩에 대해 고뇌했던 바로 그 마을, 그 해변이다. 해안을 돌아서면 하얀 파도가 안겨드는 바위가 만난다. 시인이 쓴 <해역에 서서>(1969)의 배경이 된 거북바위다. 무명 시인이었던 최명길 선생은 이곳 천진 해안에서 이 거북바위를 소재로 시를 써서 등단하게 되었다. 진정한 시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절망하고 고뇌하던 끝에 폭풍처럼 영감이 쏟아 오르게 되었던 순간이 이 천진 해안에 서려있다.

은유와 사유의 시인 최명길

시인은 천진마을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소회를 담은 글을 ≪고성문학≫ 창간호에 게재했다. 이 글을 접하면 등단작의 소재에 대한 감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해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도나 커 등짝이 꼭 섬 같았습 니다. 하루는 금은보화를 잔뜩 실은 해적선이 이 섬에 닻을 내리고 해 적들은 밥을 해 먹으려고 솥을 걸고 장작불을 지폈습니다. 화끈한 불 기운에 깜짝 놀란 이 거북이 그만 슬그머니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해적들은 그제서야 섬이 아니라 거북인 줄 깨닫고 발광하며 날뛰었으나, 금은보화도 해적들도 모두 그 대해가 삼켜버렸습니다.

천진에는 거북처럼 생긴 거북바위가 있습니다. 1969년 초가을 나는 이 거북바위에 엎드려 시를 썼습니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썼습니다. 북양의 갈매기가 바다의 하얀 배를 부비며 날아드는 정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몇 번 투고를 했으나 연거푸 감감무소식이었던 그 시절 나는 나를 원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 꿈틀거리는 바다와 휘몰려드는 내 내면의 폭풍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시가 튀어나왔더랬지요. 그런데 그 시가 덜컥 내 등단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성 천진 돌거북이가 물어다 준 시.

2013년 9월21일 나는 아내와 그 거북바위를 찾아갔습니다. 돌거북이가 궁금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거북이는 괴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쇠말뚝이 등짝을 뚫고 몸뚱아리는 철조망에 휘가며 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가여워 터벌어진 등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꺼질듯한 신음소리가 우주법계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새끼 거북이들이 어서 용궁으로 돌아가자고 괴물로 변한 즈이 에미 발등을 붙잡고 칭얼거렸습니다. 나도 덩달아 칭얼거렸습니다.

-최명길, <돌거북이가 물어다 준 시> 전문, ≪고성문학≫ 창간호.

시인 최명길 선생이 투병하면서 쓴 이 글은 자신의 시적 삶과 현재의 심상을 암시한 듯한 시감을 주고 있어 매우 의미 있음이 느껴진다.
최명길 시인은 1975년 등단 후 40여 년 동안 펴낸 시집이 명상시집과 유고시집을 포함해서 여덟 권에 이를 만큼 왕성한 시작활동을 했다. 작품성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서정성’으로 문단의 주목받았다. 사유의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최명길 선생은 다음과 같이 ‘사유’에 대해 사유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는 그를 절로 존앙하게 한다.

시는 사유가 자성에 부딪혀 일어나는 예리한 빛에서 촉발한다. 나는 이 극미묘한 현존재들에 감각의 촉수를 들이대고 사유를 했다. 내가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 것은 사유를 위해서였다. 사유가 깊어야 시 의 빛깔이 깊다. 절벽 같은 소슬한 정신의 깊이에서 태어난 시는 유현 하다. 내가 험준한 산에 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특히 절벽 난간에 서 있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사유와 시의 이런 관계를 알아챈 때문이었다.

그에게 시란 “사유를 건드려 지은 소슬한 언어의 탑”이며 “시의 돌팍길은 실로 미묘하고도 멀다”며 시적 고뇌를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정작 “시에서 나는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자신을 낮추었다. 자신이 “무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사실은 “조금 알록한 시가 튀어나오기를 바”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미미했다”며 시적 갈망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시인의 삶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당연히 컸으리라. “가장 오래 깊이 몰두했던 것도 시”였고, “제일 좋아한 것도 시”였으며, “고작 값지게 여긴 것 또한 시”였다고 고백한다. 최명길은 겸허함이 배어있는 진정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렇듯 시에 대한 고뇌도 많았지만 한편 후배 양성에 도 힘을 썼다.

문학의 대중화와 후배양성

최명길 시인은 1966년부터 천진마을의 천진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금강문학회 동인활동 등 문학적 열정을 불태우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또 고성 출신 시우 이성선과 함께 ‘설악문우회’ 창립(1969)에 참여했고, ‘물소리시낭송회(1981-1999)’를 이끌면서 강원지역에서 詩의 대중화와 후배 양성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그가 이십대 이후 타계하기까지 주로 활동한 곳은 속초였지만 그의 등단작 즉 시적 영감의 발로가 이곳 천진마을이었다. 따라서 이곳은 시인에게는 문학적 고향인 셈이다. 이 점은 고성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천진마을이 고 최명길 시인을 기리기 위해 고민해야할 이유는 또 있다.

천진마을은 예전에는 역驛과 5일장이 서던 곳으로 장날마다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옛 장터 이곳저곳에 2~3층짜리 주택들이 들어섰고, 겨우 비집고 다닐만한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낡은 방파제와 빈 포구, 텅 빈 백사장은 철지난 해변 그 자체이다.
해변마을의 진가는 제철에 발휘하기 마련이다. 여름은 이곳의 옛 명성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천진 해변의 여름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조용한 휴양지를 찾는 이들로 아주 잠깐 동안 모처럼 북적거린다. 인근 콘도단지에서 십분 거리이기 때문에 그곳 투숙객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매년 오징어맨손잡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사람들을 모으는 데 한몫을 거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 천진 해변에서 바라본 남쪽의 만곡 해안은 유럽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필자가 대형숙박업소보다 이곳에서 민박하기를 권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닷가에서의 민박문화는 자연친화적이고 아날로그적이며 푸근한 향수를 느끼길 원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진 거북바위에 엎드려 詩를 쓴 최명길 시인

ⓒ 강원고성신문

최명길(1940~2014)= 시인. 강원도 강릉 출생.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논문 <영랑 시에 나타난 마음 연구>으로 석사학위 취득. 2000년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 1975년 <해역에서>, <자연서경>, <은유의 숲>, <예감의 시> 등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화접사』(원간 문학사, 1978), 『풀피리 하나만으로』(스크린 영어 교재사, 1984), 『반만 울리는 피리』(동학사, 1991), 『은자, 물을 건너다』(동학사, 1995), 『콧구멍 없는 소』(시학사, 2006), 『하늘 불탱』(서정시학, 2012)이 있고, 명상시집으로 『바람 속의 작은 집』(나남, 1987), 디지털 영상시집 <투구 모과>(2013), 유고시집으로 『산시 백두대간』(황금알, 2014)이 출판되었다.
홍조근정훈장, 한국예술상(열린시학사 주관) 강원도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제5회 만해 ‘님’ 시인상(만해학술원 주관, 2014)에 선정된 바 있다.


필자 이선국 약력

ⓒ 강원고성신문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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