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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사이 돌계단 밟으며 오르면 동해가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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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8] 관동팔경 수일경, 청간정
겸재 정선 ‘청간정’ 그림, 안축·정철 한시漢詩로 절경 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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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08일(수) 08:52 20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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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간정은 강원도 유명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책 60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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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간정 현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책 54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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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규하 전 대통령의 시문. 책 54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천진 바닷가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풍스런 정자가 솔숲 끝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동팔경의 수일경이라 지칭하는 청간정이다. 해안경계 철조망 곁으로 이어지는 데크로드는 청간천을 바로 건너지 못하고 제방에서 끊어진다. 동해대로로 돌아 나와 다리를 건너야 청간정을 오를 수 있다.
관동팔경 수일경, 청간정淸澗亭. 송강 정철 선생이 관동별곡에 소개한 관동팔경 중 두 곳이 고성지방에 있다. 북녘땅 북고성의 ‘삼일포’와 남고성 간성의 ‘청간정’이 그것이다. 청간정은 금강산 연봉連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미끈하고 길찬 금강소나무, 돌계단을 한 칸씩 밟고 산마루 끝에 올라서면 솔숲과 어우러진 고즈넉한 정각이 찾아든 나그네를 반갑게 맞는다. 현판 아래 계단을 딛고 다시 정각 마루에 오르면 푸른 동해바다가 중층정자에 안겨들고, 바다로 흘러드는 청간천 하구엔 갈매기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이 천하제일경이 아닐 수 없다. 쪽빛 해면 멀리 외딴 대섬이 낮달에 잠들어 있고 백두대간 설악산과 해발 1,205m의 금강산 신선봉이 노도처럼 달려와 고풍스런 처마 끝에 머문다. 금강산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한 미시령 고갯마루 주변 풍광은 천하의 산수와 어우러져 청간정을 감싸 안고 선 열두 폭 병풍이 된다. 아름다운 풍광, 세상 여느 그림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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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겸재 정선의 <청간정>. 정자와 바위가 우뚝 솟은 만경대의 경관을 그린 것으로 청간역, 만경루와 만경대, 청간정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만경대 꼭대기 천년 노송 아래 사람 셋을 깨알처럼 그려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해설을 보면 두 선비가 시동 한 명을 데리고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기이한 경관에 취 해 있는 모습이며, 그 중 한 명은 겸재 정선 선생이라고 한다. <간송미술관 소장>. 책 54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겸재 정선의 청간정
청간정 현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은 긴 주춧돌 12개로 받쳐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중층정자이다.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520년 중종 15년 간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1884년 고종 21년 갑신정변 때 타고 없어져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 선생의 발기로 오늘의 위치에 재건하였다.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은 조선후기 명필 전형윤 선생의 휘호이고 정각 내에 있는 현판은 1953년 동해안 순방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또 최규하 전대통령의 시문과 중수기 등의 액자가 정자 안에 걸려 있다.
원래 만경대와 만경루, 청간정이 지금의 청간부대 안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당대의 화가 겸재 정선과 허필의 수묵화가 옛날 청간역 만경루와 만경대, 청간정의 옛모습을 전해준다. 그 만경루와 청간정은 건립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소실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주둔부대 안의 정각 뒤편에 있는 만경대 위치로 추정되는 바위 암벽에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서 ‘萬景臺만경대’와 ‘淸澗亭청간정’의 음각된 휘호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지금의 자리에 복원된 청간정은 1997년 성대리 소재 군부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으로 인해 번져와 기둥과 난간 일부가 그슬렸지만 송림 속에서도 팔작지붕의 예스러운 고운 자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청간 정의 변천을 보면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가 새삼스럽다. 태어나고 늙 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이라는 법칙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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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축의 만경대 한시 영인본. 책 59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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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필의 관동팔경 중 간성의 청간정을 그린 서화다. 청간정 풍경을 시와 그림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다.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책 56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한시漢詩에 그려진 청간정 풍치
청간정의 절경을 읊은 한시가 여러 기록으로 남아 전해온다. 대표적인 것이 안축의 관동팔경과 송강 정철의 관동팔경이다. 본 저에서는 안축과 양사언의 한시를 소개해 옛 청간정 운치를 그려본다. 고문헌의 한시를 만나면 당시 그곳에 머문 흔적을 조금이나마 더듬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해변 푸른 바위가 겹쳐 대를 이루었고 / 만경대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눈에 들어오네 / 작은 고깃배는 어디를 향하는지 / 바람에 가벼이 출렁이는 것이 술잔 뜬 것을 닮았네
- 안축 <만경대>,《題淸澗驛萬景臺 次許獻納詩韻 二首》중에서
푸른 바다에서 둥근 해 반쯤 엿보이고 / 푸른 이끼 백사장엔 갈매기 짝을 짓다 / 금은대 위에서 글 홀로 읊조리니 / 호연한 천지가 창 앞에 열린다
- 양사언 <청간정>
가을날 만인대에 올라서 보니 / 이곳 풍경은 봉래보다 낫구려 / 출렁이는 바닷물이 눈과 같이 흩날리고 / 흥에 취해 있노라니 돌아갈 것 잊었네
- 조선 숙종 <청간정>
반도 동쪽에 땅이 끝난 곳 / 봉래와 가까워 선계가 여기구나 / 진시황은 그 옛날에 무슨 약을 구했으며 / 한제는 얼마나 선루를 꿈꾸었나 / 예맥의 청산이 이곳에 우뚝 솟아 / 부상의 붉은 해 난간에 떠서 들고 / 난중의 풍월을 보살필 이 없어 / 백구와 늙은 어부가 풍월의 주인일세
- 이승만 <청간정>
한국 현대사의 격랑이 일던 1981년 여름 청간정을 찾은 최규하 대통령은 주변의 빼어난 풍광에 한시를 지어 정각에 걸어 놓았다.
설악과 동해가 조화를 이루는 옛 누각에 오르니 / 과연, 관동지방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로구나
예나 변함없이 많은 문인과 풍류객들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음 풍농월을 하곤 했다. 필자의 시를 한 편도 곁들어 본다.
호젓한 산길 끝자락
바다 너머 물속까지
솔바람 소리 들릴까
신선봉 구름 지붕
천변川邊 솔향 기둥
들꽃향기 정자 마루
아버지 온기를 닮은 집
세월의 덫에 걸린 소슬한 누각
(중략)
- 이선국 <청간정에서> 중 일부, 『고성문학 제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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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암 송시열이 쓴 청간정 암각서. 책 54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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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서 萬景臺(만경대). 책 56페이지 | ⓒ 강원고성신문 | | 계단을 내려 데크로드를 따라 백사장에 들어서 고개를 돌아보면 옛 정각에서 풍류를 읊던 소리를 귓전에 들려온다. 정자의 전경 자체가 여전히 옛스럽다. 다시 청간부대 담장을 돌아가면 청간 마을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역이 있었던 마을이었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60년대까지 막걸리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있었다. 달콤하고 구수한 모주냄새가 배고픈 아이들의 허기 를 보챘다. 건물이 반쯤 허물어진 채 방치된 양조장은 언제부턴가 사람이 살 지 않은 폐가로 변해버려 을씨년스럽다. 처절했던 한국전쟁이 끝나고 수복 직후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던 정겨운 사람들의 미소가 세 월에 묻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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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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