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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고성김치 그 맛 기가 막히지?

우리 사는 이야기 / 김선경 간성읍 주민

2018년 11월 20일(화) 09:23 [강원고성신문]

 

얼마만일까, 내가 언니에게 편지를 쓰는 게. 벚나무 잎이 저리도 곱고, 들녘 벼 거두는 기계소리조차 연주로 들리는 이 가을, 이 아침에 언니를 부르는 건 딱하나 그리움에 관한 타임캡슐을 남겨놓기 위함이야. 어제 말이야, 언니. 내가 어딜 다녀왔느냐 하면. 고성군 여성농업인연합회에서 주관한 김장체험행사에 남편이랑 참여하고 왔거든.
우리 집 텃밭에 심은 배추는 거름도 약하고 집 앞 아파트에 가려진 햇살은 더 이상 푸성귀들의 밥이 되어주질 않아서, 핑계김에 서툰 솜씨로 담그는 김장은 작년 일로 그만두고, 마트표 김치 때마다 사먹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됐지 뭐야.
고성 바닷바람 맞고 자란 달디 단 배추를 해양심층수로 절이고, 미세먼지에도 끄떡없는 맑은 햇살아래 자란 고추 직접 갈아 준비한 고춧가루에, 영리 목적의 사업도 아닌 지역행사로 김장을 한다니 얼른 신청했지. 안그래도 몸도 좋지 않아 쉬고 있는 터라 무리하면 또 며칠 가족에게 걱정거리 던져줄 것 같기도 하여 여성농업인들의 능숙한 손맛을 빌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
그러다 보니 내내 김치 보내주고, 약 챙겨주는 언니 오빠 생각나서 선물로 김장 보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것까지 보태어 신청하고서는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행사장을 찾았어.
벌써 테이블 여러 개가 두터운 비닐에 싸여 길에 늘어져 있고, 나지막한 산을 이루고 있는 절임배추가 분주한 아낙네들 손에서 붉게 물들고 있었지. 인사를 드리고 앞치마와 장갑을 받고서 한 쪽에 자리 잡아 체험에 들어가려는데 그게 조금 어색하더라고.
‘곧 오십 바라보면서 아직도 김장 양념하나 자신 있게 못 버무리는데 흉보시겠다. 에고 그냥 신청하고 찾으러만 올걸….’
후회가 밀려오더라고. 삼남매 낳고 직장생활에 바삐 산다고 엄마김치 얻어먹은 이십 여 년을 남들이 알 리 없으니 말이야, 이런 낭패가…. 같이 따라가 준 남편은 또 어떻겠어. 집에서 늘 채소 다듬어 주고 애들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지만 장갑 끼고 달려들어 그 솜씨를 화려하게 보여 주는 게 아마 더 부끄러웠겠지?
그런데 어설픔도 잠시, “요즘 다 그래요. 바삐 사는데 서툴 수도 있지요, 뭐. 이렇게 천천히 하시면 돼요.” 내 속을 꿰뚫어 보셨는지 미소 띤 표정이 편안한 회원분이 친절히 안내해 주시는 거야. 맞아, 꼭 언니를 닮으셨더라, 정말.
“아, 이런 데 오면 남자들도 어쩌겠어. 자, 앞치마 두르고 이렇게 섞여서 해 보는거지 뭐. 그래야 아내가 집에서 이렇게 힘들게 먹을 걸 장만하는구나 알지. 자, 해봐요. 이리와요.”
내 주위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두리번거리던 남편을 잡아 끌어당기신 분은 그 중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분이셨어. 10년 차이나는 우리 큰언니보다 더 언니이신 것 같았어. 내가 외쳤지. “왕언니, 감사합니다. 오늘 제대로 걸렸네요!”
배추에 양념 바르는 일이 뭐 그리 힘든 일이겠어. 새벽부터, 아니 그 며칠 전부터 재료 준비하랴 장소 마련하랴, 당일 새벽잠까지 설치며 얼마나 일찍부터 서두르셨을텐데도 한결같이 신명나게 일들을 하시는데 저절로 우리 어릴 적 김장하던 날이 생각나지 뭐야.
참 어렵게 살던 그 시절, 김장은 왜 그리 많이 했는지, 비스듬히 기울인 그 큰 마루에 절여놓은 배추들이 뚝뚝 물기 떨어뜨릴 때 ‘저게 다 우리집 김치가 되는 거야?’ 놀랍고 두렵기까지 했었잖아. 그래도 힘들지 않았던 게, 어떻게 아셨는지 누구네 엄마, 누구 이모 어스름 초겨울 이른 아침에 이웃들은 또 얼마나 많이 거드는 손으로 달려오셨잖아.
그렇게 옛 추억 이야기 하며 조금씩 서툰 손이 익어갈 즈음, 왕언니가 국그릇에 막 익은 수육 썰어 담고 한 손엔 막걸리 들고서 한 바퀴 휘 돌아 다니시는 거야. 먹으면서 해야 힘들지 않다고. 즐거워야 김치가 더 맛나게 된다고.
얼굴에 양념이 묻던지 말던지, 처음 만난 분 다가오는 손길에 입을 한껏 벌리고 맛나게 받아먹고는 누군가 틀어주는 트로트 가락에 허리 돌리고 어깨 펴면서 엉덩이도 한번 흔들었지. 터져 나오는 웃음은 김장 양념에 베여 어디론가 배달되어질 김치 속으로 살살살 스며들고 말더라고. 아, 이렇게 여럿이 하하 호호 웃으며 햇살아래 일 해 본 게 얼마만인가 싶어 보약을 통째로 들이키는 마음까지 들더라고.
마을 위해 일하시는 의원님들도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종종거리며 똑같이 거들어주시는 모습에 이 마을 참 잘 되겠다는 자랑스러움은 덤으로 느꼈지.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더라고. 회원님들이 입에 넣어준 맛보기 보쌈으로 부른 배는 살짝 숨겨두고 수육에 된장국에 갓 무친 겉절이로 또 맛난 한 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어.
이십 년보다 훨씬 더 오래된, 한 사십 년은 될 거라는 ‘고성 여성농업인협의회’ 회원들 사는 곳이 저마다 떨어져 있다 해도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 만큼 가족처럼 지내온 이야기를 들었어. 시집간 딸 손자 돌보느라 도시에 가 있는 동안인데, 마을동생들 고생하게 두면 안 된다고 한걸음에 달려오신 왕언니의 이야기는 그 넉넉함이 어디서 샘솟는지 담박에 알아차리게 되더라고.
아, 참 대단하신 분들이 하시는 일에 이렇게 우연히 참여하게 된 것이 큰 복이구나 여기게 되었지. 게다가 이번 행사 수익금이 마을 아이들이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되돌려진다고 하니, 나는 귀한 일에 거저 마음을 보태게 된 것이 참 감사한 일이지 뭐야.
그렇게 맛난 밥 먹고 있는데 낯선 젊은이들이 식당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오더라. 어여 많이들 먹으라고 챙겨주고, 거들어주시는데, 행사장 옆 운동장에서 대학 동아리 연합 축구대회에 참여한 이들이 화장실 다니러오던 길에 인심 좋은 어머니들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모양이야. 조금 있으니 아름아름 긴 줄 이루며 우리 수만큼 되는 젊은이들이 가족처럼 밥을 먹었지. 점심값? 당연히 받으시더라고. 비싸던데!
“잘은 못하지만….”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다시 쉬고….”
어머니들 좋아하는 최신 트로트를 박수소리 반주삼아 한 곡 불러주고는 감사합니다 인사 여러 번 남기고 이쁜 볼 발개지며 다들 잘 먹고 가더라고.
봐, 내가 사는 고성 참 좋지? 이거 봐. 어디, 통일 기대심리로 경제적 잇속이나 챙기려는 몇몇 도시사람들이 이런 풍경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나 진짜 좋은 곳에 살지 언니, 부럽지?
식사가 끝날 무렵, 4년 전 고성에 발령받고 급히 살 집을 알아보던 중에 이사 시기가 맞지 않아 발을 동동이던 나에게, 그럼 애들만이라도 보내라고 하시던 인심 좋은 용촌리 아주머니를 바로 앞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지 뭐야! 얼마나 반갑던지! 내가 사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의 인연으로 겹겹이 쌓여져 있는 시간인지, 멍하게 놀란 눈으로 덥석 잡은 손을 오래도록 놓지 못했어.
부엌을 보니 왕언니와 양념 바르는걸 알려주시던 고수님 두 분이 설거지 하고 계시더라고. 살짝 들어가 그릇을 헹구는데, 명예회원 삼아야겠다 하시는거야. 텃밭회원.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왕언니 품에 안겨 인사를 나누고 김장 속에 넣던 커다란 무 한 덩어리를 꽃다발 마냥 선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 아침 밥상에 썰어놓은 그 김치가 입에 닿는 순간 목구멍이 촉촉해지는 거야.
‘내가 먹는 게 김치가 아니라 추억이고, 정이고, 끝내 마르지 않는 그리움이 되겠구나…….’ 이 마음 잊기 전에 언니에게 들려주고 싶었어.
사람들 바쁜 세상속 지치고 외로울 때, 꼭 이맘때처럼 차가운 바람 들어 사람냄새 그리울 때, 땅 속 깊이 묻은 커다란 김장독에 김치 한포기 호호 손 녹여가며 꺼내어 뜨신 밥 위에 한 조각 올려 먹기만 해도 힘이 되던 마법의 그 반찬이 우리 집에 찾아 왔노라고.
언니, 나는 이렇게 고성애찬가를 부를 수 있는 오늘을 잊지 않을 거야. 나도 왕언니가 될 거야, 고성여성농업인 여러분들처럼 땅힘 품고 사람 속에 뿌리내리는 진짜 사람이 될 거야.
언니한테 보내준 김치가 도착하면 언니도 고성한번 마음에 품어 줄 거지? 내년에 이 편지가 또 어떤 향기를 품고 쓰여질 지 벌써부터 기다려지지 않아, 언니?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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