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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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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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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7일(화) 10:48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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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노루궁뎅이버섯’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언젠가 가을 화진포 호숫가에서 마주쳤던 덩치 큰 노루 궁둥이가 떠오른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도 노루 볼기에 손바닥만 하게 난 하얀 무늬가 또렷했다. 노루궁뎅이버섯은 그와 빼닮았으니 사물과 이름이 이처럼 적절하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송이와 능이에 견주어도 사물과 이름의 닮은꼴이 여간 아니어서 볼 때마다 궁금증이 증폭하곤 했다. 그런데 왜 표준어인 ‘궁둥이’가 아니고 강원도와 함경도 등의 방언인 ‘궁뎅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가을 버섯 철이 당도했다고, 여기저기서 버섯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첫 산행 이후 며칠을 잠자코 있다가 드디어 어둑새벽에 일어나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이슬에 바짓자락이 무젖으면서 기어이 신발까지 질퍽거렸으나 산등성이를 향해 오르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자주 비가 내렸고, 그리하여 버섯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었다. 지난해는 버섯이 거의 돋지 않았으므로 숲 속 상태가 몹시 궁금했다. 올 여름은 전에 없는 폭염으로 사람도, 숲도 지칠 대로 지쳤으므로.
그러나 미처 숲에도 들기 전에 큰 산(건봉산)에 먼저 들어갔던 이들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9월 12일,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인 송강리와 건봉사 사이의 도로를 민통선에서 해제했다. 해제 전에는 송강리 군부대 앞에서 건봉사로 들어갈 때 한 번, 건봉사 입구에서 건봉사로 나갈 때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군부대 검문소에서 검문을 했다. 도보로는 아예 접근할 수 없었고,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데도 건봉사 입구에서 송강리로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길은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과 건봉사를 이어주는 길이었으며 군부대 뒤 길섶에는 이정표 역할을 했던 똬리소나무도 있었다.
언젠가 수덕사에서 진행된 만해학회 자리에서 뵈었던, 지금은 열반에 드신 박설산 스님께서도 말씀하셨듯, 그 길은 거진 읍내에서 송강을 거쳐 건봉사에 이르는 길이었다. 신작로가 생기면서, 또는 그 이전부터 늦가을이면 도지를 싣고 건봉사로 향하던 우마차 행렬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던 그 길은 해방 뒤 소련군정 때도 물론 인공 때도, 전쟁 중에도 이용하던 길이었다. 그러다 휴전이 되고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이른바 민간인들은 자유로이 오갈 수 없는 민통선이 되면서 그만 가로막히고 말았다
고성군은 2017년과 2018년에 이어 ‘6억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2.19km에 이르는 이 구간에 경계용 철조망을 설치하고, 가로수 1,125 그루를 심었다. 또 구간 양쪽 진출입로에 진출입 차량의 번호 촬영이 가능한 CCTV 4대와 방범용 CCTV 8대를 설치했다.’ 민통선에서 해제하면서 군(郡)은 ‘통제가 해제되면 지역 주민과 해당 구역 내 영농민들의 불편이 해소된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철조망이 산 기스락, 그러니까 송강저수지에서 시작된 도로 옆 수로를 따라 설치되었고, 이 길은 가을 버섯 철이 되면 마을 주민들이 버섯을 딴 뒤 하산할 때 이용하는 길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이 길을 이용하면 하산하는 걸음을 줄일 수 있었다. 사달은 버섯을 따라 들어갔던 주민들이 이 CCTV를 인지하지 못했고, 심지어 철조망 꼭대기에 매달린 공처럼 생긴 이것이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면서 CCTV 아래서 이 CCTV를 구경하는 모습이 바로 그 CCTV에 찍히면서 군(軍)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가을 버섯 철에 버섯을 따는 일은 오래 전부터, 가까이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란 나갔던 주민들이 마을에 돌아오면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져 온 일이었다. 산기슭에 군부대가 자리를 잡았어도, 큰 산(건봉산) 비탈에 대포 타깃장을 만들어 놓고 뻥뻥, 예고 없이 대포를 쏘아대도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일이었다. 90년 초 군(軍)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군부대 안 민통선에 출입할 수 있는 ‘영농출입증’을 발급한 뒤 다시 출입증을 갱신하겠다고 사진 등을 거둔 뒤로 유야무야, 여태껏 발급하지 않고 있었다.
군부대 검문소를 통과하면 그만큼 빠르게 큰 산에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주민들은 굳이 그곳을 이용했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그러나 CCTV에 사람 모습이 찍히면서 군부대 영관급 장교들은 물론 산림청 관계자, 경찰 그리고 마을 대표와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CCTV에 찍힌 네 명 가운데 두 명의 신원 확인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혼비백산한 병사들은 산지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소식을 전해 들은 주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마을에서 큰 산(건봉산) 일부를 임대한 뒤 마을 바깥에서 들어온 버섯 채취꾼들 때문에 소란이 일기는 했었어도, 이처럼 군관민(軍官民)이 한자리에 모인 예는 없었다. 나중에 월북(越北)을 염두에 두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때는 매우 긴박하고 심각해서 아무런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월북이라니?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고 2018년인데. 민간인들 안전을 위해 통제하는 것이라는 건, 한국전쟁 이후 수복(收復)된 마을에 사는 주민들 누구라도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시도 때도 없이 큰 산에 쏘아대는 대포 소리도, 마을을 둘러싼 산기슭에 훈련 나온 병사들도 덤덤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신원 확인이 안 됐던 나머지 두 명은 이웃마을 주민들로 밝혀졌다. 모두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헤어졌다. 그쯤에서 끝났으면 그저 가을 어느 하루 벌어졌던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말았을 텐데, 그 뒤로 마을 주민들에겐 외려 입산 자체가 금지되었다. 며칠 간 유예를 두고 협의를 한다는 게 이유였으나 버섯 철이 끝날 때까지 입산은 허가되지 않았으며 하물며 검문소 밖, 영외에 군인들을 배치하여 주민들 입산을 막았다. 다시 말하면 마을 주민들 생활권이 차단되었다는 말이었다.
어느 해 버섯 철엔 군부대 검문소를 통과하는 일이 쉽게 이루어졌고, 또 어느 해는 아무도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고, 그때마다 달랐으나 가장 큰 이유는 민통선, 민북지역이라는 이유였다. 버섯 시장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에도 마을 주민들은 송이, 능이(향버섯), 꾀꼬리버섯, 달걀버섯, 밤버섯(벚꽃버섯), 싸리버섯 등을 따서 염장으로, 날것으로 때로는 장아찌로 식용했다. 지금은 버섯 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외부에서 채취꾼들까지 들어오면서 걸음이 느린 늙은이들은 버섯 구경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올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시작된 남북 정상 회담을 시작으로 지난 9월까지 벌써 세 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으르렁거리던 북한과 미국 수뇌들이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했다. 비무장지대(DMZ) 전사자들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GP(감시 초소) 22곳 중 시범철수하기로 한 20곳에 대한 철수 또한 시작되었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비무장지대로 전환 중이었다. 그동안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었다. 겨우내 언 땅이 녹으면서 봄꽃이 피듯이 오랫동안 꿈꾸고 염원하던 한반도 평화가 시나브로 이 땅에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2차 북미회담을 눈앞에 두고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를 논의하고 있는 이때, 휴전 이후 줄곧 민통선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이유로 ‘생활권’에 제약을 받았던 주민들은 이제 좀 마을에도 평화가 오려나 했으나 여전히 큰 산, 건봉산 타깃 장에는 대포 사격을 하고 있었으며 마을엔 훈련 나온 군인들이 오고갔다. 당장 종전선언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군(軍)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 군이 없어서도 아니 되겠지만, 민통선 인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들이 겪었던 소소한 불편들도 이제 좀 끝났으면. 손톱 밑에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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