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교육일반문화.스포츠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숲에서 숲으로 ②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06월 26일(화) 16:0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멧돼지였다. 흐린 하늘 속으로 말똥가리가 날아올랐으며 길섶에는 새매 주검이 버려져 있었다. 비꽃이 오락가락하는 해 질 녘, 손에는 펴지 않은 검은 우산을 들고 어정어정 숲 기스락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등마루를 깎고, 또 깎아 논을 뜬 자리였다. 논은 매우 넓었고, 매해 등성이를 깎으면서 흙을 실어내던 트럭들이 오가던 논길은 흔하지 않은 흙길이어서 퍽 아꼈다. 발씨 익은 길이었으나 어스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으며 바람소리조차 없이 사방이 고요했다. 그렇지만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는 선배의 이야기가 진눈깨비처럼 축진껍진하게 온몸에 들러붙고 있었다. 사위스러운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긴 우산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부스럭대는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닭알침을 꿀꺽 삼켰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췄다.
숲 기스락과 나 사이에는 논배미가 하나 있었고 기스락은 몹시 비탈졌으며 풀들은 시들었으나 덤부렁듬쑥한 곳이었다. 짐승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후다닥 비탈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내 키보다 컸다. 숲정이에서 또는 논/ 산길에서 숱한 짐승들 발자국 가운데 며느리발톱이 돋보이는 멧돼지 발자국을 따라 걸었으며 다람쥐 무늬가 있는 멧돼지 새끼를 본 적은 있었으나 다 큰 멧돼지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뉴스에 심심찮게 멧돼지가 출연하는 중이었다. 음식점엘 쳐들어가고, 사람들을 들이받았다는 흉흉한 소식이었다. 마을에서도 산짐승들 때문에 산 기스락 논밭에는 전기 울타리를 치고, 배동바지 무렵이면 밤마다 소리 폭탄을 터뜨리곤 했다.
한겨울이면 헛간 시렁에서 잠자던 설피를 꺼내고 창을 갈았던, 농부이면서 겨울철이면 잠시 사냥꾼이 되기도 했던 옛 멧돼지 사냥꾼들에 따르면 멧돼지만큼 영민한 동물도 없었다. 멧돼지는 전용 진흙 목욕탕이 있었고, 허술하게나마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잠자리도 있었으며 바람이 없고 따뜻한 남향받이, 볕바른 곳을 좋아했다. 새끼를 달고 다니는 새끼달이 멧돼지는 물론 홀로 다니는 수퇘지들은 줄곧 같은 길로 다녔다. 옥로라고 불리는 올무를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노상 같은 길로 멧돼지들이 지났기 때문이었고, 어른들은 이런 길을 ‘곧은목’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곬이 곧다는 의미일 듯했다. 쇠줄로 엮은 올무를 피할 줄도 알았으며 올무에 목이 걸렸다가도 뒤로 빠져서 내뛸 줄도 알았다. 올무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는 올무의 쇳내가 어느 정도 가신 뒤라고 했다.
복작노루라고도 불리는 고라니와 함께 멧돼지는 농민들로부터 원성을 듣는 대표적인 산짐승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멧돼지는 전기 울타리를 뛰어넘어 옥수수밭을 갈아엎었으며 감자밭과 고구마밭을 헤집었다. 멧돼지가 점찍은 논밭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초식동물인 고라니가 깻잎은 제쳐두고 콩잎과 고구마잎을 먹는 동안 잡식성인 멧돼지는 숲에서는 칡뿌리를 파먹고, 다래 열매를 먹었으며 마을에서는 옥수수든 고구마든 가리지 않았다. 고라니는 한국 토착종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위기 종 ‘적색 목록’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 땅에서 사라지게 되면 세계 동물 지도에서 멸종하는 것이었지만 농민들에겐 당장 작물을 망쳐 못쓰게 만드는, 해를 끼치는 짐승이었으므로 보는 족족 죽여 없애야 하는 몹쓸 것이었을 뿐, 연민 따위는 없었다. 멧돼지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골짜기 모퉁이로 사라지는 멧돼지를 건너다보았다. 비탈을 가로지르는 걸음걸이가 거칠고 사나웠으며 달아나면서 내뿜는 숨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한동안 숲정이는 침묵했다. 담비와 삵, 너구리들도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숲에서 멧돼지를 잡을 수 있는 짐승은 인간뿐이었다. 골짜기 뿌다구니 뒤로 솔수펑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 너머엔 큰 산 마루들로 첩첩했다. 숲은 민간인통제구역이었고, 또 그 너머는 민간인은 얼씬할 수 없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첩첩한 비무장지대가 가로놓여 있었다. 아무리 인간들이 멧돼지와 고라니들을 죽이고, 내쫓아도 이 짐승들은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었다. 남한은 그야말로 생태섬이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겹겹이 쳐 놓은 남과 북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길을 내준다면 산짐승들은 멀리 백두산을 지나 시베리아 벌판까지, 아니 그 너머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며 그만큼 넓은 영역에서 제멋대로 발 디디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시베리아에서 살고 있다는 호랑이들 또한 남북한으로 오고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길을 막아놓고서 그쪽으로만 몰아대면 그 짐승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늑대를 경외하면서도 미워하는 몽골 유목민들은 그 늑대들로 인해 생태계가 조절되고, 유지된다고 믿었다. 늑대가 자신의 가축을 물어 죽인 뒤 뼈까지 으적으적 씹어 먹을 때는 밉디미웠지만, 늑대 또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물로 여겼다.
어쩌자고 멧돼지는 십수 마리씩 새끼를 낳아 상징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현실 밖의 돼지꿈은 여전히 복권 판매점을 북적이게 하면서도 현실에서 멧돼지는 숫제 죽여 없애 멸종시켜야 할 원수가 되었다. 어릴 적 마당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돼지우리에는 노상 서너 마리의 돼지들이 있었다. 돼지우리에는 외양간의 구유보다 작은 밥통이 있었고, 밥통에는 부엌에서 나온 구정물을 비롯한 음식 찌꺼기들이 들러붙어 있었으며 노상 꿀꿀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등굣길 신작로에는 흘레붙이러 가는 암퇘지가 길을 가로막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꼬불거리는 짧은 꼬리와 뒤룩거리는 엉덩이와 종종걸음은 호기심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돼지 주인의 회초리는 돼지에겐 길 안내를 하는 표지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겐 경계의 신호이기도 했다.
가을 버섯철이 되면 마을 노인들은 큰 산에서 새끼들을 줄줄이 달고 달아나는 어미 돼지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하곤 했다. 다래나무 넝쿨 아래일 때도 있었고, 수풀 사이에서 만날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오금이 저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노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난생처음 만난 멧돼지는 혼자였다. 수컷일 것이었다. 암퇘지는 혼자 새끼들을 이끌고 돌보았다. 한겨울 짝짓기 철이 되어야 수퇘지들은 암퇘지들을 찾아 나설 뿐, 수퇘지는 대부분 단독생활을 했다. 다람쥐 무늬가 있는 멧돼지 새끼는 다른 짐승들 새끼와 다르지 않았다. 야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저 새끼일 뿐이었다. 말 새끼나 소 새끼 또는 호랑이 새끼처럼 따로 이름도 없었다.
장철문의 시 ‘유홍준은 나쁜 놈이다’(『비유의 바깥』, 문학동네, 2016)는 새끼 돼지를 때려잡아서 다음날 고깃점 먹을 궁리를 하는 유홍준을 줄곧 ‘나쁜 놈’이라고 구시렁댄다. 여간 못마땅한 눈치가 아니다. 그러나 사흘이 멀다 하고 고기를 자시는 우리 집 노인은 이상스레 멧돼지 고기만은 전혀 드시지 않았다. 고깃간에서 산 고기는 없어서 못 드시는 처지인데도 그랬다. 꺼리는 까닭을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 고기는 퍽퍽하다는 것이고, 돼지 축사에서 나온 고기는 촉촉하다는 차이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내가 어릴 때 노인은 집에서 기른 돼지를 잡을 때면 순대를 만들곤 했다.
옛 멧돼지 사냥꾼들에 따르면 올무에 걸려 죽은 멧돼지 쓸개는 사냥총으로 잡은 멧돼지보다 쓸개가 크다고 했다. 올무는 단박에 짐승을 죽이지 못했으므로 몸부림치며 애를 쓰는 동안 쓸개가 부풀어 오른다는 것이었다. 둥근 올무에 목이 걸리거나 다리나 몸통이 걸리면 질식해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또는 과다 출혈로 죽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하여 윤리적이지 않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었다. 올무는 죽어가는 짐승의 고통을 살피지 않았을 뿐더러 아예 모르는 척 했다. 창을 들었던 옛 사냥꾼들은 단숨에 짐승의 멱을 땄다. 그렇게 죽어가는/ 죽어야 하는 짐승들이 느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줄였다. 무엇이든 먹어야 하는/ 먹어야 숨 쉴 수 있는 인간으로서 가졌던 최소한의 예의였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강원선관위 공정선거지원단 집합교..

고성소방서 산림화재 취약지역 점..

농어촌공사 ‘1인1청렴나무 가꾸..

“물 걱정 덜고 안전은 높이고”..

제과·차체수리 분야 금메달 수상..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