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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③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07월 11일(수) 10:36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언 땅 위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잔설이 남아 있는 응달진 논길을 제겨디디며 길섶 비탈에 있는 생강나무를 건너다봤다. 새끼손톱만한 겨울눈이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듯 붉었다. 이른 봄 싹을 틔우는 괴불주머니도 올라왔고, 민들레도 꽃을 피웠다. 지금은 음력 섣달이고, 겨울 가운데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이었다. 꾸어다가도 하는 게 소한 추위라고, 소한 추위에 장독이 얼어터진다고 어머니한테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 싱거울 지경이었다.
지난 연말 소나기눈으로 나부랑납작해졌던 대숲이 다시 빳빳하게 키를 세웠다. 소나기눈은 낮 동안 가랑비로, 진눈깨비로 흩날리더니 해거름이 되자 소나기눈이 되어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다. 눈석임물이 흐르면서 눈이 내렸는데도 쌓인 눈이 무릎을 넘었다. 그러나 눈 더미에 묻혀 흔적조차 없었던 마른 갈대와 억새, 쑥대궁을 비롯한 키 작은 풀들은 어느 하루 볕이 뜨겁던 날 슬그머니 허리를 일으켰으며 발 디딜 틈 없었던 빽빽했던 수풀은 그 사이 헤싱헤싱해졌다.
눈 속에 묻힌 뒤 새떼들이 사라진 마을은 무서울 정도로 휘휘했다. 참새 떼들마저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눈 더미가 감쪽같이 녹아내리자 저물녘이면 대숲에서 분주탕이었던 물까치 떼가 홀연히 나타났고 찔레덩굴에 깃들어 살던 노랑턱멧새 떼도 돌아왔다. 역시나 왁자지껄 도깨비시장이 되었다. 고운 깃털을 가진 물까치 떼는 어치나 직박구리만큼 듣그럽게 울어댔다. 가슴을 쥐어짜듯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찌글찌글해지고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개울에서 시적서적 큰 걸음을 옮기곤 하던 백로도 돌아왔다. 눈이 쌓이면 홀연히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눈이 녹아 없어지면 어김없이 돌아와 노량으로 강물을 헤집었다. 여름이면 앞산 솔수펑이에 떼를 지어 살곤 하던 백로 떼와 다르게 마을 개울에 나타나는 백로는 매번 혼자였다.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를 읽다 문맥상으로는 분명 백로여야 하는데, 책에는 해오라기로 되어 있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야 노인들은 백로를 해오라기라고도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마을이 눈 더미에 갇혀 지내는 동안 노름판이, 술판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흘러넘쳤다. 마을 회관에서는 노인들이 하루 종일 십 원 내기 화투판을 벌이며 음식을 나눠 먹었고, 젊은 패들은 토끼고기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였다. 혼자 사는 노인은 혼자 살아서, 부부가 함께 사는 경우는 또 부부가 짝을 지어 아침이면 메뚜기 떼처럼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고, 저녁이면 콩알들처럼 흩어졌다. 무료할 만큼 한갓진 겨울을 지내는 방편이었다. 이곳 겨울은 말 그대로 농한기였고, 기껏 축사에 소여물을 주는 정도였다.
겨울잠을 자야 하는 개구리들 소식 또한 뜸했다. 기후 때문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참이었다. 어릴 때는 개울물 속 돌멩이, 바윗돌 아래 숨어들어 잠을 자는 개구리들을 들깨워 화톳불에 구웠다. 알가지라고 부르던 암컷 개구리는 새까만 알이 그득했고, 쫀득쫀득했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한 다릿살 또한 졸깃졸깃했다. 수컷 개구리는 먹을 게 보잘것없어 외면했다. 온몸이 춥고 시려도 그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노느라고 방학 숙제를 할 짬이 없었다.
비 오시는 해 질 녘 논들은 쓸쓸할 만큼 조용했다. 손에 든 우산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렸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산은 지팡이만큼 길었다. 긴 우산을 볼 때마다 영국에서 살해된 불가리아 작가를 떠올리곤 했다. ‘마르코프’는 아주까리 열매에서 추출한 ‘리신’에 의해 죽었으나 이 사건은 흔히들 ‘우산 암살’로 불렀다.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은 하나 물증은 없는, 영구 미제로 남은 사건이었다. 소련 케이지비와 불가리아 공산당이 합작했을 것이라는.
우산과 씨앗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까닭은 ‘벼’와 ‘쌀’을 구분하지 않았던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씨앗에 관한 책이었고, 문맥으로 보면 벼나 볍씨로 번역했어야 할 단어를 쌀알, 또는 쌀로 번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씨앗, 종자라면 벼나 볍씨여야 했다. 쌀은 벼의 껍질을 쓿은 또는 찧은 것을 이른다. 그리하여 벼는 쌀이 되고, 조와 수수 또는 옥수수들은 좁쌀과 수수쌀, 옥수수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쌀은, 쌀알은 씨앗이 될 수 없었다. 싹을 틔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음식이름을 다룬 책에서는 ‘모를 찌다’라고 해야 할 것을 ‘모를 찧다’라고 했다. 책을 덮었다.
마을에 있던 물레방아와 디딜방아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집안에 있던 절구와 맷돌이 자취를 감추었다.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절구와 절굿공이가 먼저 땔감으로 없어지고, 맷돌은 짝을 잃은 채 담 아래 버려졌다. 도구/ 농기구가 먼저 사라지고 그 다음 그것을 가리키던 말이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었다. 흔히 방앗간이라고 불렀던 곳은 이제 정미소가 되었고, 정미소에 가는 일이 불편해진 농가에서는 작은 정미기계를 집집이 들여놓았다. 길섶에 조를 심은 이웃집 노인은 믹서로 조 껍질을 벗겨 서너 되의 좁쌀을 얻었다.
흔히 논/밭에 단단한 흙을 부수거나 갈 때, 그리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로타리 친다’고 한다. 이때 ‘로타리’라는 단어 속에는 ‘써레’와 ‘번지’라고 하는 농기구와 ‘써레질’/ ‘번지질’이라고 농사 용어가 함께 들어 있다. 이 써레질과 번지질을 한데 모아 ‘논을 삶는다’라고 하는데, ‘로터리(rotary)친다’는 용어는 경운기와 트랙터가 등장하면서 함께 나온 용어로 논/밭에 흙을 갈아엎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가리킨다. 트랙터에 다는 써레 역할을 하는 작업도구는 통칭 ‘로터베이터(rotavator)’라고 하는데, 그냥 로터리라고 부른다.
이 로터리가 써레와 번지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따로 또 ‘번지’라고 하는 작업도구가 있다. 이 번지 역할을 하는 작업도구를 농민들은 그저 ‘오리발’이나 ‘번지날’ 이라고 부른다. 나무로 된 ‘써레’와 ‘번지’, 또는 ‘나래’가 쇠로 된 ‘로터베이터’로 바뀔 때 미처 다 바뀌지 못하고 한데 뒤섞여서 로터리가 되고, 오리발이 되었다. 논/밭을 갈고 고를 때 트랙터에 다는 부속 도구로 ‘플라우(plow)’, ‘로터리(rotary)’, ‘해로우(harrow)’ 들이 있다.
소의 목에 멍에를 걸고, 이 멍에에 다시 써레의 줄, 즉 봇줄을 잡아맨 뒤 소가 써레를 끌면 사람은 그 써레를 눌러 밀면서 소와 함께 논을 삶았다. 먼저 쟁기로 논을 갈아엎고, 그다음 논에 물을 대서 써레로 쟁깃밥을 부순 뒤, 번지 또는 나래로 무논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논을 삶는 것이었다. 논을 삶은 뒤 땅을 안정시킨 다음 모내기를 했다. 기계가 등장했다고 해서 논을 삶는 순서가 뒤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경운기와 트랙터가 등장한 뒤 그 용어가 바뀌었다. 이를테면 ‘논을 간다’라고 하면 트랙터 쟁기로 논을 갈아엎는 것이고, ‘논을 만든다’라고 하면 트랙터 ‘로터리와 번지’로 논을 삶는 것이었다.
‘써레’는 조선시대 농사 책에도 등장한다. ‘로터리’가 등장하면서 ‘써레’라고 하는 용어 자체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용어가 사라지고 없다고 해서 역할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벼를 쌀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쓸모없다고 다 버려야 하는 것인가.
비 그치고 나니 남서쪽에 떠오른 초승달과 샛별 사이가 조금 더 멀어졌고, 동남쪽에 뜬 오리온자리 삼태성이 매우 또렷해졌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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