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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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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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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4일(화) 16:17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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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어릴 적 물레방앗간의 물레를 타 본 적 있다. 동네 오빠들이 덜렁 들여다 놓고 발을 점점 세게 굴려서 빨라지는 쳇바퀴 속도에 기를 쓰고 뛰었다. 큰 물소리와 함께 이가 나간 판자 사이마다 물이 철철 떨어져 빠진 공간을 피해 필사적으로 건너뛰던 춥고 무서운 기억.
어릴 적 물레방앗간의 기억
언니들 따라 늦은 저녁 학교에서 돌아오던 논둑길, 양쪽 논의 물그림자가 붉은 햇살에 철렁거리고 앞서 지난 발자국은 따라가도 피해가도 딛는 대로 휘청거려 허물어졌다. 뒤 따라오며 숨소리로 채근하던 언니들, 한껏 벌린 팔에서 심하게 흔들리던 신발주머니.
긴 줄넘기 술래들의 노래가 짜증이 나도록 나는 쉽게 들어서지 못했다. 언제 들어가야 저 줄에 얼굴이 맞지 않을지, 어떻게 들어가야 줄을 밟지 않을지. 뒤로는 아이들이 기다려 섰고 숫자를 세다 노래를 따라가다 얼굴만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운동회 때가 되면 나는 늘 우울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 저만치 달려가 버린 먼 공간을 안간힘을 다 해 뛰어가던 혼자 남은 꼴찌의 달음질은 어른이 되어서도 웬만해서는 뛰려고 하지 않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여러 박자가 늦고 자리 없는 전철이나 시내버스에서도 온몸이 내린 빨판이며 뿌리로 버티며 간다.
씨앗이 떨어지고 제일 처음 싹을 틔워 세워 낸 어린 나무의 첫 번째 나이테. 다시 나이테 한 겹을 두르는 동안의 1년 내내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것은 뿌리에서 수액을 끌어올리며 끊임없이 제 안을 달려왔기 때문이리라.
나 이 테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작은 동그라미 하나밖에 그리지 못하는 나무
누가 베어냈을까
턴테이블 위의 선명한 레코드
긴 노래를 걸어두고
바람은 숲으로 갔다
-시집 『따뜻한 간격』에서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를 베어낸 자리, 흡사 레코드판처럼 수많은 동그라미 나이테의 세월은 얼마나 느리고 더디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무의 성장시간이 다르고 지구와 별들의 시간은 다르다. 강물과 바람, 사람과 사람, 우리의 시간은 모두 서로 달라서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나무의 나이테는 바람의 속도를 따라 달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와 체질과 품성으로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곁눈질 할 필요도 없이 내 갈 길을 내 걸음, 내 빛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의 기질에 대한 옳고 그른 정답 또한 있는 것일까. 어릴 적 논두렁길처럼 디딘 자리마다 자꾸 무너지고 바뀌는 정답. 세월의 눈치를 보며 나에겐 너무 빠른 속도를 따라가다 어긋나고 흔들리는 척추를 다독여 가며 이제는 내 방식으로 천천히 살아남기로 한다. 깊은 마음 속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그 마음위에 긴 노래를 걸어두고 숲으로 간 바람처럼.
마침내
멈춘 시간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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