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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④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07월 24일(화) 16:2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하얀 강아지였다. 논들 수로에 빠진 강아지는 수로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갈팡질팡했다.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안 된 듯 보였다. 때마침 가을걷이 중이라 수로에는 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때 풍산개를 여러 마리 기르고 있던 이장이 떠올랐고, 전화를 했다. 이장은 무언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그곳은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강아지 스스로 걸어오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곧 오겠다는 이장의 말을 믿고, 강아지를 그곳에 두고 자리를 떠났다.
며칠 뒤 우리집 마당가에 강아지 한 마리가 폴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장에서 다시 전화했다. 이장은 자신이 기르는 풍산개 새끼가 아닐뿐더러 ‘발바리 잡종’이라면서 우리 앞집 아무개한테 주었다고 알려주었다. 강아지는 목줄이 없었고, 매일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혔다. 말 그대로 발탄강아지였다. 식물도 동물도 기르지 않는 나는 우리집과 앞집 사이를 폴폴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건너다볼 뿐, 간섭하지 않았다.
어릴 때 집에는 개가 마루 밑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고, 저녁이면 종일 어딘가를 헤덤벼치다 돌아온 고양이가 부뚜막에 웅크리고 누워 잠을 잤으며 외양간에는 소들이, 닭장에는 닭들과 병아리들이, 돼지우리에는 돼지들이 꿀꿀댔다. 개밥은 부엌을 맡고 있는 누군가 챙겼을 것이고, 나는 이따금 마당을 휩쓸고 다니는 닭들을 닭장으로 불러들일 때 모이그릇을 들고 할머니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마지못해 그 심부름을 했다. 마당에 아무렇게나 싸놓은 닭똥들 때문이었다.
어느 해에는 집에서 앙고라토끼를 기르기도 했다. 작은오빠 몫이었고, 작은오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토끼풀이며 칡덩굴을 끊어다 토끼들에게 주었다. 이따금 건너다볼 뿐, 가까이 가지 않았다. 작은오빠는 겨울이면 멧토끼도 열심히 잡았다. 그렇게 멧토끼도 잡고, 토끼도 길렀던 작은오빠는 지금도 도시에 살면서 고양이들을 기르고 있었다. 길에서 주웠다는 고양이들이 세 마리였고, 명절 때면 그 고양이들과 함께 귀향했다. ‘러시안 블루’는 작은오빠만큼 배가 나왔다. 그렇지만 작은오빠네 식구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고 그랬는지 고양이들을 본채에 들이지는 않았다.
아버지 또한 귀촌 이후 청둥오리는 물론 닭과 개들을 길렀다. 아내가 아파도 밥을 한 번 차리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청둥오리를 기를 때는 채소조차 칼로 다듬어 모이를 주었고, 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해, 새벽이면 개가 몹시도 서럽고 음산하게 울어댔다. 여느 때와 사뭇 그 울음소리가 달랐고, 어른들은 심상찮은 기미를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당장 개장수를 불렀고, 그 뒤로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았다. 그때도 그저 우리 집에 개가, 청둥오리가 있구나 했을 뿐 무덤덤했다.
내게 집에서 기르는 짐승은 여전히 애완(愛玩)이거나 반려(伴侶)의 의미가 없는 그저 가축(家畜)일 뿐이었다. 마을에는 개를 기르는 집이 꽤 많았다. 대부분 마당가에 개집을 지어놓고, 목줄로 묶어 놓았다. 개장수에게 팔려갈 때까지 개들은 한번도 목줄을 벗지 못했다. 이웃집에는 수시로 개들이 바뀌었다. 어느 해는 시추였고, 또 어느 해는 테리어였다. 까닭을 물으니 도시에 사는 딸들이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도시에서는 애완, 반려견이었겠으나 시골에 온 뒤로는 비루먹은 개와 다르지 않았다.
목줄로 묶이지 않는 앞집 강아지는 시나브로 개가 되어 우리 집 오랍뜰을 제집처럼 돌아쳤다. 개는 온통 하얀 빛깔이어서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면 제일 먼저 달려왔다. 그런 뒤로 생선 대가리며 국물 우리고 난 멸치들을 먹기 좋게 모아서 버렸다.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지 않았다. 주둥이를 음식물에 쑤셔 넣고 무엇을 먹을 때는 옆에서 지껄여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름도 없었고, 목줄도 없었다. 그랬으므로 아무데서고 불쑥불쑥 나타났다. 수돗가에 서서 이를 닦다 이따금 발을 굴러 쫓으면 잽싸게 도망쳤다. 일 미터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왔다. 쫓아도 멀리 도망가지 않았고, 불러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어느 날은 큰 산 기스락에서 까마귀 떼를 쫓고 있었으며 또 어느 날은 논두렁에서 쥐들을 찾고 있었다. ‘멍멍!’이라고 부르면 힐끗 고개를 돌려 일 초쯤 쳐다보다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는 제 할 일을 했다. 온몸에 도깨비바늘을 잔뜩 붙이고 나타날 때도 있었고, 바람 없이 포근한 날은 남향받이 볕바른 곳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발을 구르며 불러 젖혀도 쓸데없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바람을 가르며 논둑길을 내달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멈춰 서서 바람결을 느끼는지 가만히 서 있곤 했다. 동쪽 난들까지, 서쪽 산 기스락까지 종횡무진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는 전력 질주하는 육상선수 같았고, 바람결을 느끼며 멈췄을 때는 명상하는 동자승 같은 표정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멈출 때도 마치 무엇엔가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개인지 알 수 없었다.
앞집엔 그와 다른 개들이 더 있었고, 그 다른 개들은 목줄에 묶여 개집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이 ‘멍멍’이만 예외였다. 마을에는 주인들이 잡아들이기를 포기한 떠돌이 개가 두 마리 있었다. 흔히들 발바리 잡종이라고 불리는 개였다. 꽤 오랫동안 이들은 꼭 짝을 지어 다녔고, 하루는 우리 동네 또 하루는 이웃 동네 사방팔방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쳤다. 마을에서는 집 주변에 똥을 싸놓는다고 원성이 자자했지만, 주인은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두었다.
이 떠돌이 개들 말고도 이따금 목줄이 풀린 개들도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이장 또한 풍산개 두어 마리를 풀어놓곤 했다. 하얀 풍산개들은 가끔 온몸이 피칠갑인 채 돌아다녔다. 그 옛날 호랑이 사냥에도 따라나섰다던 풍산개는 요즘도 너구리도 잡고 오소리도 잡았다. 어쩌면 그보다는 흔하디흔한 고라니를 따라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기척에 예민한 고라니는 앞뒤 없이 냅뛰다가도 어느 순간 제자리에 붙박여 가만히 서 있곤 했다. 사뭇 고요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앞으로 옆으로 겅중겅중 냅뛰었다.
‘멍멍’이는 떠돌이 개들이 낳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이 떠돌이 개들이 멍멍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면 앞집 개들은 제집에서 사정없이 짖어댔다. 나도 더불어 떠돌이 개를 쫓으면 지레 꼬리를 사리고 저 멀리 달아나서는 눈치를 봤다. 그러면 멍멍이는 멀뚱멀뚱 치어다보다가는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때는 또 떠돌이 개들과 함께 논들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개들이 나누는 의사소통을 알 수 없으니 가만히 그들을 바라다볼 뿐이었다.
그 사이 고양이들은 컨테이너 주변을 떠났다. 아무 색깔도 섞이지 않은 새까만 고양이는 만나면 반가워서 일부러 멸치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여태껏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와 고양이가 서로 뒤엉켜 싸운 흔적도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뒤로 멍멍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떠돌이 개들보다 덩치가 더 커졌다. 한동안 사납도록 집요하게 멍멍이 주변을 맴돌던 떠돌이 개들 또한 요즘은 뜨막해졌다.
개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 혀의 감각 따위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생각이 나면 음식물 찌꺼기를 정리해서 모아놓을 뿐 가까이 다가갈 이유도, 또 괴롭힐 이유도 없었다. 어쩌다가 산책길에서 마주치면 소리쳐 멍멍이를 불렀고, 멍멍이는 힐끗 고개를 돌려 잠시잠깐 나를 쳐다보다 그대로 제 갈 길로 갔다. 그것이 알은체였는지조차 긴가민가했다. 어쩌면 한번도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지 않은 데 따른 답례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 질 녘 부엉이가 울기 시작하고, 희미했던 낮달이 점점 밝아오면 곳곳에서 개들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허공을 물어뜯는 듯 하늘에 사무쳤다. 멍멍이는 오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먼 데를 바라다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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